하버드 의대 매사추세츠 종합병원(MGH) 카와이 타츠오 박사, 나헬 엘리아스 박사팀이 유전자 편집·변형 돼지 신장을 성공적으로 이식했다. 사진은 수술팀의 외과의사들이 이식수술 전 돼지 신장을 준비하고 있는 모습. /MGH
하버드 의대 매사추세츠 종합병원(MGH) 카와이 타츠오 박사, 나헬 엘리아스 박사팀이 유전자 편집·변형 돼지 신장을 성공적으로 이식했다. 사진은 수술팀의 외과의사들이 이식수술 전 돼지 신장을 준비하고 있는 모습. /MGH

미국 연구팀이 사람에게 다른 종의 장기를 이식하는 이종이식의 새 장을 열었다. 유전자 편집·변형 돼지의 신장을 말기 신장 질환(ESKD) 환자에게 성공적으로 이식한 것이다.

지금껏 이종이식을 통한 인간의 생존 가능성을 평가하기 위해 뇌사 후 사망한 인간에게 돼지의 신장을 이식한 사례는 있었지만 살아있는 사람에게 이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하버드 의대 매사추세츠 종합병원(MGH)은 신장이식 전문의 카와이 타츠오 박사와 나헬 엘리아스 박사가 이끄는 의료진이 지난 16일(현지시간) 세계 최초로 살아있는 환자에게 돼지의 신장을 이식하는 수술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고 발표했다.

카와이 박사는 "돼지 신장과 환자의 혈관을 연결하자마자 신장에 핏기가 돌면서 소변을 만들기 시작했다"며 "이 모습에 15명의 이식팀이 박수를 터뜨렸다"고 말했다.

수술을 받은 사람은 62세의 남성 ESKD 환자인 리차드 슬레이먼으로, 2018년에 이식받은 신장이 지난해 문제를 일으켰고 투석 치료마저 불가능해지면서 최후의 수단으로 이종이식을 택했다. 병원측은 환자는 현재까지 양호한 상태로 회복 중이며, 곧 퇴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식된 신장이 체내 수분과 미네랄의 균형 유지, 소변을 통한 노폐물 배출 등을 장기적·안정적으로 수행하며 투석의 필요성을 없애준다면 이번 이종이식 수술은 최종 성공으로 귀결된다.

MGH 신장이식 책임자인 레오나르도 리엘라 교수는 "첫 번째 신장 이식 후 70년이 지나 우리는 이식 기술의 기념비적 돌파구 앞에 서게 됐다"며 "이종이식은 장기 부족 위기를 해소하고 이식 대기자의 생명을 구할 유망한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수술에 쓰인 신장(모델명 EGEN-2784)은 생명공학기업 e제네시스가 인간 대상 장기이식을 위해 특수한 조건에서 격리해 키운 돼지로부터 얻었다. e제네시스 팀은 면역거부반응과 합병증 최소화를 위해 유전자가위(크리스퍼-Cas9)로 이 돼지의 유전자 69개를 편집 및 변형했다. 여기에는 돼지 탄수화물 항원 등 거부반응을 유발하는 3개의 유전자 제거, 염증·면역 등에 관여하는 7개 인간 형질전환 유전자 삽입, 돼지 내인성 레트로 바이러스 비활성화 등 59개의 유전자 변형이 포함됐다.

e제네시스 웨닝 진 수석부사장은 "이번 수술은 생명이 위험하고 다른 치료법이 없을 때 승인되는 미 식품의약국(FDA)의 ‘동정적 사용(compassionate use)’ 허가로 진행됐다"며 "긍정적 결과가 확인된 만큼 정식 임상시험 승인을 FDA와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앞서 MGH-e제네시스 공동연구팀은 작년 10월 네이처에 발표한 논문에서 이 신장을 이식 받은 원숭이가 최장 758일까지 생존했다고 밝힌 바 있다. 임상은 이번이 첫 시도인 만큼 어떤 결과가 나올지 알 수 없지만 전임상 연구 결과에 기반해 환자가 2년의 삶을 더 누리게 되는 것이 수술팀의 목표다.

아직 인간의 신장만큼은 아니지만 의학계는 이종이식이 아무런 대안 없이 평생 투석의 고통 속에 살아가는 ESKD 환자의 생명줄이 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ESKD 환자수에 비해 신장 기증자가 턱없이 적기 때문이다. 실제 전 세계 ESKD 환자는 수백만명에 달한다. 반면 신장 이식 건수는 연 10만2000여건에 불과하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에 따르면 2023년 9월 기준 신장 이식 대기자수는 3만2754명인데 지난해 1~9월 누적 이식 건수는 단 1594건뿐이다.

이로 인해 환자들은 자신에게 적합한 신장이 나올 때까지 기약 없는 기다림을 이어가야 한다. 평균 대기기간이 5~6년이나 되지만 매년 수만명이 끝내 수술을 받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다. 우리나라 역시 신장 이식 평균 대기기간이 2275일(6.2년, 2021년 기준), 대기 중 사망자 수는 2022년에만 1506명에 이른다.

리엘라 교수는 "매년 장기 기증 비율이 증가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수백만 개의 신장이 필요하다"며 "우리의 궁극적 목표는 최적의 유전자 편집 조합을 찾아 환자들이 면역억제제 복용 없이 이종이식을 받고 정상적 삶을 영위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수술팀의 일원인 멜리사 마톨라-클라토스 간호사가 보관상자에서 이식용 돼지 신장을 꺼내고 있다. 이 신장은 유전자가위(크리스퍼-Cas9)를 이용해 69개의 유전자를 편집·변형한 돼지로부터 얻었다. /MGH
수술팀의 일원인 멜리사 마톨라-클라토스 간호사가 보관상자에서 이식용 돼지 신장을 꺼내고 있다. 이 신장은 유전자가위(크리스퍼-Cas9)를 이용해 69개의 유전자를 편집·변형한 돼지로부터 얻었다. /M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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