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김상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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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은행들이 이번주 일제히 임시 이사회를 열어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의 대규모 투자 손실 사태와 관련한 자율배상 방침을 확정한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과 SC제일은행이 이사회를 통해 올해 1분기 실적에 반영할 배상금 관련 손실 규모는 최소 2조 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사회의 승인이 마무리되면 은행권은 다음달부터 개별 투자자들과 배상비율 관련 협의를 시작할 예정이다. 홍콩H지수 ELS 손실 사태가 본격적인 배상 실무 단계로 전환되는 셈이다.

지난해 말 기준 홍콩H지수 ELS 판매 잔액은 18조 8000억 원, 계좌 수는 39만 6000개에 이른다. 배상비율은 판매사 요인 23~50%를 먼저 확정한 뒤 개별 투자자 요인 ±45%포인트와 기타 조정 요인 ±10%포인트를 가감해 산정한다. 다수 사례가 20∼60% 범위에 분포할 것으로 추정된다.

금융당국은 홍콩H지수 ELS 손실 사태 후속 조치로 고위험 금융상품 판매제도와 관행 전반을 뜯어고친다는 방침이다. 은행 등에 조건부로 고위험 금융상품 판매를 허용하거나 판매사의 성과평가지표에 고객 수익률을 연동하는 방안 등에 대한 전방위 검토를 거쳐 내달 중순까지 개선책을 마련한다는 것이다.

24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NH농협·SC제일은행은 이번주 잇따라 이사회를 소집해 홍콩H지수 ELS 손실 사태와 관련한 자율배상안을 확정할 예정이다. 지난 11일 금융감독원이 제시한 분쟁조정 기준안을 바탕으로 각 은행이 추정한 배상 규모를 보고하면 이사회는 배상 관련 손실을 충당금 등의 방식으로 1분기 실적에 반영하는 것을 승인하게 된다.

은행들이 3월 안에 자율배상을 매듭짓기 위해 서두르는 것은 경영실적의 회계처리는 물론 여러 가지 정무적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앞으로 홍콩H지수 ELS와 관련한 손실과 배상액이 계속 확정될 텐데, 그때마다 이사회를 열어 승인받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일단 배상액 추정치를 최대한 1분기 실적에 충당금 등으로 반영한 뒤 향후 가감하는 방식을 택할 수밖에 없고, 그러려면 3월 말까지는 이사회 결의를 마쳐야 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자율배상이 지체될 경우 과징금 등 행정제재에 따른 부담이 가중될 수 있는 만큼 신속한 배상 결정이 오히려 은행에게 득(得)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아울러 금융당국의 압박과 은행권의 일사불란한 후속 조치는 다음달 총선 등 정치 일정과 무관하지 않다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은행권의 배상 절차 돌입이 임박하면서 각 은행이 추정하고 있는 배상 규모의 윤곽도 드러나고 있다. KB국민은행의 경우 이번 이사회를 거쳐 1분기 실적에 약 1조 원의 홍콩H지수 ELS 배상 관련 충당금을 반영할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전수조사를 통해 홍콩H지수 최고점 전후 기간인 2021년 1∼7월 판매액이 5조 2000억 원 정도로 파악됐고, 현재까지의 손실률 50%와 평균 배상률 40%를 적용해 추산한 결과다.

물론 현시점에서 정확한 배상 규모를 확정할 수는 없다. 개별 투자자들과의 협의 결과, 홍콩H지수 추이 등에 따라 배상액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1분기 실적에 직접 손실 인식은 불가능하고, 일단 1조 원을 충당금 형태로 쌓아둔 뒤 실제 배상액이 이를 초과하면 다시 이사회 결의를 거쳐 충당금을 추가할 수 있다.

KB국민은행을 포함해 홍콩H지수 ELS 투자 손실이 집중적으로 발생한 2021년 1∼7월 판매분, 즉 올해 1∼7월 만기 도래분을 중심으로 은행권의 손실과 배상 규모를 따질 경우 6개 은행의 1분기 충당금 적립 규모는 2조 원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이들 은행의 올해 1∼7월 홍콩H지수 ELS 만기 도래 규모가 10조 483억 원에 달하고, 절반의 손실액 5조 242억 원 중 평균 40%를 배상하는데 2조 97억 원 정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22일 내부 협의체를 구성, 고위험 금융상품 판매제도와 관행 개선에 대한 검토에 나섰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ELS 같은 고위험 금융상품의 판매를 무조건 금지하는 것이 능사가 아닌 만큼 판매를 허용하되 조건을 부여하는 방식을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이어 "판매사 이익이 아닌 고객 이익을 중심으로 상품을 팔아야 한다"며 "상품의 만기때 고객 수익률에 따라 성과를 평가토록 하는 등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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