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 대통령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EPA=연합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 대통령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EPA=연합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지난 2월 26일 나토정상회의에서 제기한 나토의 우크라이나 파병 가능성과 관련해 프랑스군 배치 시나리오 5가지를 가정해 볼 수 있다고 프랑스의 대표 일간지인 인 르 피가로紙(1826년 창간)가 23일(현지 시간) 보도했다.

르 피가로紙는 첫 번째 시나리오로 프랑스가 우크라이나에 군수품 생산 공장을 설립하는 안을 꼽았다. 우크라이나에 현지 법인을 설립한 영국 방산업체 BAE 시스템스 또는 우크라이나 내에서 기갑차량을 수리할 계획을 세우고 있는 독일 라인메탈처럼 프랑스도 직접 현지에서 무기 생산이나 유지 보수 작업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공장 설립은 군대가 직접 나서기보다 민간 업체방위산업체에서 수행할 가능성이 높다고 르 피가로紙는 지적했다. 앞서 세바스티앙 르코르뉘 국방부 장관도 이달 8일 유럽지역의 佛語권에서 영향력 높은 라디오 RMC(French-Monegasque Radio Station, 1943년 개국)에 출연해 "프랑스 기업들은 우크라이나 기업들과 파트너십을 맺어 우크라이나 땅에서 부품이나 심지어 탄약까지 생산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두 번째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는 지뢰 제거나 군대 훈련을 위해 현지에 주둔하는 방식이다. 르코르뉘 장군은 앞서 같은 방송에서 "지뢰 제거나 우크라이나 군인들을 자국 영토에서 훈련하는 방법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2월 우크라이나 정부와 10년간 유효한 양자 안보 협정을 승인한 바 있는 프랑스 정부는 이미 프랑스와 폴란드에서 우크라이나 군인을 훈련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 소식통은 "기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이런 훈련방식이 러시아군의 약화를 가속할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프랑스 하원은 지난 2월 12일 오후 안보 협정에 대한 토론 후 표결 끝에 찬성 372 대 반대 99표로 협정을 승인한 바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 2월 16일 파리를 방문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과 향후 10년간 유효한 양자 안보 협정을 맺었다. 당장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에 올해 30억 유로 규모의 군사 지원을 추가로 제공하고, 방산 분야와 군대 훈련, 정보 공유 등에서 협력하기로 했다. 프랑스 정부가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의회에 우크라이나 지원안에 대한 토론과 표결을 요청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세 번째 예상할 수 있는 시나리오는 프랑스군이 우크라이나의 흑해 항구 도시이자 곡물 수출 통로인 오데사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군대를 배치할 가능성이다. 앞서 르 몽드紙(1944년 창간)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지난달 2월 21일 국가 행사 뒤 엘리제궁에 모인 일부 손님들에게 "어쨌든 나는 내년에 오데사에 사람들을 보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프랑스 주간지 르 카나르 앙셰네 보도에 따르면 마크롱 대통령은 러시아의 오데사 항구 정복 시 곡물 가격이 급등하고 몰도바로 전선이 확대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 시나리오에 대해 파리정치대학의 니콜라 텐제르 교수는 프랑스군이 오데사에 배치될 경우 "러시아가 오데사를 손에 넣을 방법은 없겠지만, 미사일 공격을 늘릴 수는 있다"며 러시아군과 직접 대치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네 번째 시나리오는 프랑스군이 우크라이나 일부 지역에서 보호 구역을 설정하는 경우다. 벨라루스와의 국경이나 헤르손, 하르키우 같은 수복 지역에 프랑스군을 배치해 러시아군이 진격하지 못하도록 방어선을 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러시아군이 자주 공격하는 민간 지역을 보호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그러나 군 관계자들은 "우크라이나 중심부에서 보호 구역 작전은 현재로선 꿈같은 이야기"라거나 "우리 군이 공격받을 경우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라는 반응을 보인다.

세바스티앙 르코르뉘 프랑스 국방장관(좌)과 보리스 피스토리우스 독일 국방장관. /AFP =연합
세바스티앙 르코르뉘 프랑스 국방장관(좌)과 보리스 피스토리우스 독일 국방장관. /AFP =연합

다섯 번째 시나리오는 프랑스군이 우크라이나군과 함께 러시아에 맞서 싸우는 가설이다. 군사 전략 연구원인 줄리아 그리뇽은 "이 경우 프랑스는 전쟁의 당사자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고, 국방부와 가까운 한 군사 전문가 역시 "이는 러시아에 전쟁을 선포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전투 병력을 투입할 경우 무기 생산을 급격히 늘려야 하고, 현장에선 서로 다른 방식을 가진 두 나라 군대가 언어 장벽을 넘어 협력해야 하는 문제도 있다고 피가로는 지적했다. 아울러 동맹국의 지원 없이 프랑스 혼자 전투 병력을 파병할 수는 없다는 점도 지적된다.

가장 뜨거운 논쟁거리는 역시 마크롱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파병 가능성 발언이었다. 피가로는 이런 모든 시나리오에 공통으로 수반되는 건 마크롱 정부가 짊어지게 될 엄청난 정치적 부담이라고 꼬집었다.

프랑스군을 파병하려면 여론을 설득해야 하고, 만일의 경우 프랑스군 측에서 사상자라도 나올 경우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취지다. 지난달 26일 마크롱 대통령이 처음 서방 군대 파병 가능성을 언급한 직후 유럽1과 쎄뉴스(CNews) 등의 의뢰로 여론조사 기관 CSA가 프랑스 국민 1천14명을 상대로 설문한 결과 76%가 프랑스군 파병에 반대한다고 응답했다.

르 피가로지의 시나리오 중에서 실현성 있는 정책이 최근 AFP, 블룸버그 통신 보도에서 밝혀졌는데, 보리스 피스토리우스 독일 국방장관은 독일 베를린에서 세바스티앙 르코르뉘 프랑스 국방장관과 회담 후 공동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우크라이나에서 무기와 군수품을 생산하기 위해 협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차 생산이 주력인 프랑스-독일 합작 방산업체 KNDS가 우크라이나에서 군사 장비와 군수품을 생산할 것이라고 양국 국방부 장관이 최근 22일(현지 시간) 밝혔다. 르코르뉘 장관도 "우크라이나에 (KNDS) 자회사를 설립할 것"이라며 초기 목표는 "우크라이나 인력을 교육하고 이미 납품된 장비의 예비 부품을 신속히 생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르코르뉘 장관은 구체적 일정은 언급하지 않으면서 KNDS가 "현지 지사를 통해 우크라이나에 발판을 마련할 것"이라며 "생산 능력이 최전선에 더 가까워져 물자 보급에 유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발표는 최근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와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내 군수품 생산을 약속한 데 따른 후속 조치다.

우크라이나는 탄약과 무기 부족을 호소하며 서방에 더 많은 지원을 요청해 왔다. KNDS는 독일의 방산업체인 크라우스-마파이 베크만(KMW)과 프랑스 방산업체 넥스터 시스템스(Nexter Systems)가 2015년 7월 합병계약을 맺어 그해 말 설립된 회사로, 탱크, 장갑차 및 포병 장비를 주로 생산한다.

르 피가로紙는의 첫 번째 시나리오인 프랑스가 우크라이나에 군수품 생산 공장을 설립하는 안이 구체화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현지에 민간 방위산업체 법인을 설립하여 (나토)軍이직접 나서기보다 민간 방위산업체에서 수행할 가능성이 높다고 르 피가로紙는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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