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간첩 김수임 사건’은 아직도 진행중
‘여간첩 김수임 사건’은 아직도 진행중
  • 유진
  • 승인 2018.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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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좌절된 대남정보수집 공작
김수임과 이강국
김수임과 이강국
<15>이강국과 김수임은 오히려 CIA 요원이었을 가능성...AP통신

한국판 마타하리 김수임은 1950년 3월에 체포되어 6월 10일 처형되고, 그 애인 이강국도 박헌영, 이승엽과 함께 김일성에 의해 미제의 고용간첩으로 찍혀 1956년 처형되었다. 그러나 ‘여간첩 김수임 사건’은 아직도 진행중이다.

지난 2008년 8월 미국 AP통신은 그동안 비밀로 지정되어 있다가 해제되어 미 국립문서보관소에 보관되어 있는 1950년대 비밀자료 기록들을 분석한 결과 이전에 알려졌던 '김수임 사건'과는 차이가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미국 국립문서보관소. 위키피디아
미국 국립문서보관소. 위키피디아

AP통신이 입수한 국립문서보관소 비밀자료 기록에 따르면, 당시 김수임과 동거하면서 미군철수 계획과 같은 중요한 기밀을 넘겨준 것으로 알려졌던 미군 헌병대장 존 베어드 대령은 민감한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이 없어 김수임에게 넘겨줄 기밀도 없었다는 것이다.

또한 AP통신은 존 베어드 대령과 다른 미 육군 장교들이 김수임을 변호할 수 있었지만 자신들의 난처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 서둘러 한국을 떠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고 전했다. 이를 바탕으로 김수임이 결국 한국 경찰의 고문에 의해 하지도 않은 일을 허위 자백한 것으로 미군 관계자들은 결론 내렸던 것이 확실하다고 분석했다.

그리고 1956년 미 육군정보국 비밀자료에 의하면, 이강국은 CIA의 비밀조직인 JACK(Joint Activities Commission, Korea) 즉 '한국공동활동위원회'에 고용되어 있던 것으로 나와 있다고 전했다. 그렇기 때문에 남한에서 공산주의자로 활동하다 북한에 들어가 초대 외교부 부상으로 발탁되었던 김수임의 애인 이강국도 사실상 미 중앙정보국(CIA) 요원이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AP통신은 분석하였다.

이러한 AP통신의 분석대로라면 김수임이 미군철수 계획과 관련된 중요한 기밀을 제공할 수도 없었고, 공산당원이 아니라 CIA 요원인 이강국을 도와주다가 한국 경찰에 체포된 후 고문에 못 이겨 자신이 '북한간첩'이라는 허위 자백을 해서 처형된 인물이라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이강국 보성고보 동문들. 왼쪽 위부터 이상, 이강국, 김유영, 김기림, 오른쪽이 임화.
이강국 보성고보 동문들. 왼쪽 위부터 이상, 이강국, 김유영, 김기림, 오른쪽이 임화.

이 글을 쓰는 필자로서도 의문점과 궁금증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여기에 적어보려고 한다.

김수임과 동거했던 존 베어드 미 육군 대령은 '미군철수 계획'을 작성한 부서에 근무하지 않고 한국 수사기관의 고문으로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미군철수 계획을 수립하는데 직접적으로 개입하거나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미군철수 계획에 따라 움직여야 할 당사자(미군)라는 점, 특히 그의 계급이 대령이었기 때문에 미군철수 계획을 보고받거나 적어도 통보받을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는 것이다.

또한 존 베어드 대령이 한국 수사기관인 서울경찰청의 최고 고문으로 근무하면서 미군 측과 늘 교류하는 위치에 있었고 미군 고위급 장교로 한국에 와있던 자신의 동료들과도 접촉하고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당시 주한미군에서 계획되거나 진행되고 있던 문제들에 대해서는 더 잘 알고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미군철수 계획이 실행되면 자신도 미국으로 돌아가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고, 그래서 자신의 향후 계획에 대해 동거인인 김수임에게 이야기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는 것이다. 아울러 존 베어드 대령을 비롯한 미 육군 장교들이 김수임을 변호할 수 있었지만 자신들의 난처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 서둘러 한국을 떠난 것이 존 베어드 대령이 김수임 사건에 연루되어 있었다는 반증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또 김수임의 애인이었던 이강국이 북한에서 '미국의 고용간첩'으로 몰려 숙청당했는데, 그가 진짜 미국에 고용된 간첩이었는지 아니면 북한 수사당국의 혹독한 고문에 못 이겨 허위자백을 한 것인지도 지금으로서는 정확하게 알 수 없는 일이다.

아마도 이러한 궁금증들은 이미 통일을 이룩한 독일처럼 남북이 통일되고 난 후 남과 북에서 예전부터 보관하고 있던 기밀문서들을 모두 들여다보면 속이 시원하게 풀리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래서 '여간첩 김수임 사건'은 여전히 '진행형'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독자들의 현명한 판단과 이해를 바랄 뿐이다.

세브란스 시절 치과과장 부스 박사의 팔짱을 끼고 있는 김수임
세브란스 시절 치과과장 부스 박사의 팔짱을 끼고 있는 김수임

좌절된 대남정보수집 공작

북한의 정보수집 공작은 내무성 정보처가 주로 담당 수행하였는데, 동 부서가 감행한 대표적인 공작이 1949년 1월 변기학 등 대남정보공작대 요원들이 활동하다 검거된 '내무성 정보공작대 사건'이다.

1947년 3월부터 활동을 시작한 북한 내무성 정보처 직속 대남정보공작대 총책 서완석(당시 40세)은 먼저 변기석, 김연진 등 2명을 포섭하고 이들을 통해 고려통신사 정치부장 최명소, 사회부장 유동열 등 고려통신사 직원들과 함께 부인신문사 기자, 중학교 교사, 회사원 등을 포섭하여 간첩조직을 구축하는데 성공하였다.

이들은 서완석의 지시 하에 자신들이 직업을 적극 활용하여 남한 각 기관의 기밀과 함께 독립촉성국민회와 한국민주당, 대동청년단 등 정당, 사회단체의 구성 및 동향 등을 수집해 북한에 보고하여 왔다. 이들이 북한에 보고한 정보 가운데는 국회의사록과 서북청년단 명단도 있었다.

이러한 활동을 벌이던 중 당시 서울 마포경찰서에서 변기학이 남로당 중앙위 조사부원으로서 남한 정보를 수집하여 북로당에 보고한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내사를 벌여 변기학과 김연진, 윤도명, 김용진 등 4명을 검거하는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조직책임자인 서완석을 비롯한 유동렬, 방석남, 김신기, 최명소 등 5명은 도주하였다.

남로당 간부들
남로당 간부들

여기에 등장하는 서완석은 앞에서 언급한 성시백 조직에 소속된 조직원이었으며, 따라서 이들이 수집한 정보는 서완석과 성시백을 통해 북한에 보고되었던 것이다.

해방공간에서 북로당이 직접 정보수집에 나섰다가 수사당국에 의해 적발된 '북로당 직계 남한정보공작대 사건'도 있다.

북로당 직속 남한정보공작대는 위에서 언급한 바 있는 내무성 정보처 직속 대남정보공작대 총책 서완석이 만든 조직이었다. 서완석은 내무성 정보처 직속의 정보공작대를 운영하다 1949년 1월 변기석 등 조직원들이 적발 검거되면서 도주한 바 있다. 수사기관이 '북로당 직계 남한정보공작대 사건'이라고 발표한 것은 서완석이 신분을 감추기 위해 의도적으로 자신의 소속을 '북로당 직속'이라고 조직원들에게 말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도주에 성공한 서완석은 1949년 4월 대구사범학교 출신 송남헌(당시 36세)과 1949년 1월 이혁기(당시 29세)에 의해 포섭된 평북 신의주 출신의 박석삼(당시 28세), 1949년 1월 이혁기와 박석삼에 의해 포섭된 김한제(당시 28세) 등으로 조직을 만들었다.

여기에는 1948년 10월 조선통신사 기자 김용종에 의해 포섭된 후 북한 내무성 보위국 정보처 직속 남한정보공작대원으로 활동하다 1949년 3월 북로당원 안효성(남한정보공작대원, 당시 36세)의 권유로 동 공작대에 가입한 연희전문 출신의 유동렬(당시 30세)도 있었다.

그리고 1949년 4월 송남헌에 의해 포섭된 서울대 출신의 이응규(당시 39세)와 송남헌의 권유로 민족자주연맹에 가입하여 활동하다 1949년 4월 동 조직에 가입한 경성제대 출신의 이본영(당시 37세) 등도 있었다. 이외에도 김철구, 오영주, 박상호, 백일환, 남충렬, 문일민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서완석은 동 조직을 총무부, 행동대, 연락부, 재정부 등으로 편성하고 북한 내무성 보위국 정보처 직속 남한정보공작대와 병행하여 남한 내 각종 기밀을 탐지해 북로당에 보고하는 임무를 수행하였다. 한편 안효성을 책임자로 하고 유동렬, 송남헌, 이본영, 이응규 등을 대원으로 하는 정당, 사회단체 공작대를 별도로 구성하고 이들이 정당, 사회단체 내부에 직접 들어가 활동하면서 관련 정보를 수집하는 등 일종의 '프락치' 활동을 하도록 하였다.

이들이 입수해 북한에 보고한 정보 가운데는 남한의 각 기관 내부의 중요기밀은 물론 남북협상 이후 각 정당, 단체의 동향과 활동 내용 등도 있었다. 이와 같은 활동을 하던 중 1949년 5월 박석삼, 유동렬, 김한제, 송남헌, 이본영, 이응규 등 6명이 검거되고 나머지는 도주하였다.

당시 북한이 감행하다 적발된 대남공작 사건 중에는 '북한 대남정보원 사건'도 있었다. 이 사건은 1946년 9월 남한 정부 각 부처의 기밀과 우익 및 정당, 단체의 동향 등과 관련된 정보를 수집 보고하라는 임무를 받고 단신으로 남파된 김기환(당시 37세)이 현덕환, 엄경선, 김영균, 최옥순 등을 조직원으로 포섭한 후 이들을 통해 정보를 수집하다 양심의 가책을 느낀 조직책임자 김기환이 1949년 1월 자수함으로써 알려지게 된 사건이다.

이들이 북한에 보고한 정보 가운데는 5.10선거에 대한 법규와 함께 이청천, 김성수, 조소앙 등 유력인사들의 동향도 있었다.

남로당이 유격대를 양성하여 조직적으로 남파하기 위해 북한 평양시 강동군에 세운 ‘강동정치학원’ 출신의 빨치산 육철식(본명 이영식)이 저술한 책 표지
남로당이 유격대를 양성하여 조직적으로 남파하기 위해 북한 평양시 강동군에 세운 ‘강동정치학원’ 출신의 빨치산 육철식(본명 이영식)이 저술한 책 표지

또한 '강동정치학원 출신자 남파사건'도 있었다. 이 사건은 경남 창원 출신으로 1947년 7월 월북한 후 8월 초에 강동정치학원에 입학하여 11월 중순까지 약 100일 동안 사상교육과 훈련을 받고 11월 25일 남파된 김준덕(당시 25)이 서울에서 접선을 시도하던 중 12월 6일 경찰에 검거된 사건이다.

이외에도 남한에서 좌익 활동을 하던 강준수, 오학진, 이귀석 등이 월북해 평양(강동으로 예상)정치학원에서 교육을 받고 당조직 확대강화를 통한 인민공화국 수립 여건 조성 등의 임무를 받은 후 1948년 12월 31일 38선을 넘어 침투하다 파주경찰서 경찰관의 불심검문에 의해 검거된 '북한 대남공작대 사건'이 있다.

이와 함께 '대남정보공작 기도사건'도 있는데 이 사건은 남로당 경북 포항지구당 조직책으로 활동하다 1948년 8월 북한이 주도한 소위 '8.25 남북총선거'에 포항 대표로 월북해 남한대표자대회에 참석했던 이상갑(당시 49세)이 북한 정치간부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내무성으로부터 남한의 각종 정보를 수집해 보고하라는 임무를 받고 1949년 7월 남파되어 활동하다가 8월에 검거된 사건이다.

yj@jay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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