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김상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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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중국의 초저가 제품이 쏟아져 나오면서 중국발(發) 디플레이션 수출에 대한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심각한 내수 부진을 겪고 있는 중국이 재고를 헐값에 해외로 밀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해외 시장에 풀어버린 초저가 제품은 단기적으로 소비자의 호감을 살 수 있다. 하지만 기업에겐 재앙이 될 수 있다. 초저가의 중국산 제품과 경쟁하려면 기업은 수익을 포기한 채 밑지는 수준으로 가격을 낮춰야 한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부채가 늘어난 기업은 도산할 수 있다.

산업 경쟁력 약화도 불가피하다. 중국 주도의 경제 협력체 브릭스(BRICS)의 일원으로 친중 행보를 보여온 브라질이 중국산 제품에 대한 반(反)덤핑 조사에 나선 것이 대표적이다. 중국산 제품의 약탈적 공세에 맞서 국내 산업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중국산 제품이 가격 경쟁력은 물론 품질 경쟁력까지 갖추고 있어 대응하기가 녹록치 않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중국산은 싼 맛’이라는 공식이 깨지고 있는 것은 물론 중국에 포위 당한 국내 산업은 경제안보 측면에서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경고를 내놓고 있다.

27일 중국 세관 당국인 해관총서의 올해 1~2월 수출입 통계를 보면 중국의 총 수출입액은 6조 6100억 위안(약 1210조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8.7% 늘었다. 특히 수출액은 3조 7500억 위안(약 686조 원)으로 10.3%나 증가했다. 수출 폼목도 의류와 섬유 등 노동집약적 제품은 물론 컴퓨터·집적회로 등 첨단 제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중국이 ‘세계의 공장’으로 급부상한 1990년대 후반만 하더라도 값싼 중국산 제품은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의 인플레이션을 누르는 효과를 내면서 전례 없는 장기 호황을 만들었다. 하지만 이면에서는 각국의 제조업 기반 붕괴가 이어졌다. 최근의 디플레이션 수출은 각국의 장기적 경기침체를 유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위험하다. 당장은 값싼 제품을 소비하는 장점이 있지만 경쟁에서 밀린 자국 기업과 산업이 무너지면 고용 감소, 소비 부진의 악순환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시장에 과잉 공급된 철강은 24억 9000만 톤으로 이 가운데 아시아 비중이 절반을 넘는 53.3%를 차지했다. 이는 중국이 자국은 물론 동남아 생산기지에서 철강 제품을 덤핑하고 있다는 의미다.

배터리도 상황은 마찬가지. 중국의 공급과잉 물량이 수출을 통해 해외로 밀려나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중국은 이 같은 공급과잉을 일종의 전략으로 활용하는 모양새다. 최근 전기차의 보편화 전 일시적 수요 침체, 즉 캐즘 진입으로 배터리 성장세가 주춤한 틈을 타서 초저가 제품으로 배터리 시장을 완전 장악하려는 시도가 바로 그것이다.

앞서 리창(李强) 중국 총리는 이달 초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배터리와 전기차를 신성장 동력으로 삼겠다"며 "이들 품목의 수출 성장률을 30%까지 끌어올리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따라 CATL은 세계 평균가의 56% 수준으로 배터리를 공급할 계획이며, BYD는 저가의 전기차 가격을 5% 추가 인하했다.

국내 시장도 중국산 초저가 제품의 공습을 받고 있다. 지난해 국내 로봇청소기 시장점유율 35.5%로 1위를 차지한 기업은 중국의 로보락이다. TCL은 국내 프리미엄 TV 시장을

노리고 있다. 실제 TCL의 C845 시리즈는 2022년 3월 쿠팡에서 처음 출시 당시 55인치부터 85인치까지 전 제품이 5분 내 품절되는 진풍경이 벌어진 바 있다.

주요국은 자국 기업과 산업의 붕괴를 우려하며 규제를 서두르고 있다. 미국은 지난 1월부터 중국산 철강에 120% 이상의 관세를 부과하는 등 대응을 강화하고 있고, 멕시코 등 제3국 공장을 통한 중국산 제품의 유입도 규제할 태세다. 지난해 9월 "중국산 전기차가 막대한 정부 보조금으로 가격을 낮춰 유럽 시장을 왜곡하고 있다"며 불법 보조금 조사에 착수했던 유럽연합(EU)은 올해 하반기 중국산 전기차에 대해 관세를 부과할 방침이다.

브라질 정부도 자국 산업계의 요청에 따라 지난 6개월 사이 철강, 화학제품, 타이어 등 최소 6개 분야에서 반덤핑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포스코와 현대제철 등 우리나라 철강업계는 초저가의 중국산 철강 제품이 시장질서를 교란해 피해를 보고 있다며 반덤핑 제소를 검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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