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바지’를 ‘미 제국주의 상징’으로 간주하는 북한이 국영방송을 통해 외국 프로그램을 방영하면서 출연자가 입은 청바지를 검열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흐릿하게 가려진 외국인 출연자의 청바지. /연합
‘청바지’를 ‘미 제국주의 상징’으로 간주하는 북한이 국영방송을 통해 외국 프로그램을 방영하면서 출연자가 입은 청바지를 검열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흐릿하게 가려진 외국인 출연자의 청바지. /연합

북한의 ‘청바지’ 단속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19세기부터 유행한 ‘청바지’를 북한은 ‘미 제국주의 상징’으로 간주하며 1990년대부터 착용을 엄격히 금지해왔다.

다만 북한을 방문하는 서방 관광객에겐 이런 조치가 적용되지 않았다. 북한이 국영방송을 통해 방영하는 외국 프로그램에서도 청바지를 입은 출연자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 북한이 외국 프로그램 속 외국인 출연자 청바지도 검열하기 시작한 것으로 나타났다.

26일(현지시간) 영국 언론에 따르면 조선중앙TV가 25일 방영한 영국 BBC방송의 TV 프로그램 ‘정원의 비밀’을 보면 출연자인 앨런 티치마쉬가 정원의 흙바닥 위에 무릎을 꿇은 채 식물을 가꾸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이때 그의 허리 아래 바지 부분이 이미지 변조 기술인 블러(blur) 처리를 통해 흐릿하게 뭉개져 보인다. 다만 바지의 파란색은 그대로 드러나 그가 청바지를 입었다는 점은 식별이 가능하다.

북한은 2010년 영국에서 처음 방영된 ‘정원의 비밀’을 지난 2022년부터 조선중앙TV를 통해 여러 차례 방영해왔다. 하지만 청바지를 흐릿하게 뭉갠 것이 언론에 포착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에 대해 가디언은 북한의 청바지 검열이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절부터 시작한 ‘악성적 서구 문화’ 퇴치 캠페인의 하나로 보인다고 짚었다.

북한 전문가인 피터 워드는 NK뉴스 인터뷰에서 북한 당국이 수년간 관광객에게 거의 모든 서양식 의상을 입는 것을 허용해왔다며 북한이 "TV에 나오는 외국인이 입은 청바지를 검열한 것"은 이례적이라고 평가했다.

북한은 최근 몇 년간 외국 문화의 영향력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는 추세인 것으로 전해졌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부르주아 문화’와 ‘반사회주의적 행위’를 자본주의 국가들이 북한을 약화하기 위해 사용하는 무기라고 지목하기도 했다.

실제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은 2022년 북한 정권이 ‘자본주의’ 패션과 헤어스타일을 단속하고 있다며 외국어가 적힌 스키니진과 티셔츠, 염색한 머리나 긴 머리를 표적으로 삼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당시 익명의 북한 소식통은 이 방송에 "주로 20~30대 여성을 (단속) 대상으로 한다"며 만약 순찰대에 잡히면 단속 대상은 그들이 해당 지역에 대한 단속을 모두 마칠 때까지 길가에서 기다려야 한다고 전했다.

통일부가 지난달 공개한 ‘북한 경제·사회 실태 보고서’에도 스키니진 등을 입을 경우 바지를 찢기거나 잘리고 벌금을 내야 한다는 탈북민의 전언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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