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인에게 들려주는 지구인의 세계사] ⑥ 지구인은 왜 두 발로 걷는가?

수없이 넘어진 끝에 두발 걷기 익혀...원시 대초원 먹이사슬 꼭대기에 올라
그 과정서 땀샘 늘어나 털 빠지고 뇌가 커지며 말도 늘면서 사지 균형 발달

남아프리카 지역에서 수렵·채집의 생활을 영휘하는 산(Saan)족 혹은 부시맨(Bushmen) 사냥꾼. 2017년 9월 5일. 앤디 마아노(Andy Manno) 촬영. /공공부문
남아프리카 지역에서 수렵·채집의 생활을 영휘하는 산(Saan)족 혹은 부시맨(Bushmen) 사냥꾼. 2017년 9월 5일. 앤디 마아노(Andy Manno) 촬영. /공공부문

지구인의 몸뚱이에 아로새겨진 역사

지구인의 조상이 나무에서 내려와 사바나의 넓은 풀숲에서 땅을 딛고 살게 되면서 세 가지의 커다란 진화적 특징을 발현하게 되었다. 1) 털을 벗고 맨몸의 벌거숭이로 거듭났고, 2) 침팬지보다 두 배 더 큰 성능 좋은 뇌를 갖게 되었으며, 3) 두 발을 땅에 딛고 날렵하게 걷고 뛰며 살아가도록 몸이 바뀌었다. 이 세 가지 특징이 지구인을 가장 지구인답게 만들었다.

모든 생명체가 그러하듯 지구인의 몸에도 진화의 역사가 아로새겨져 있다. 이미 살펴봤듯, 과일과 이파리를 먹고 살다가 사냥꾼으로 변모하면서 지구인은 치솟는 체열을 낮추기 위해 필사적으로 털을 벗고 맨몸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게 되었다. 온몸에 고르게 퍼져 있는 200만 개에서 400만 개의 에크린땀샘이 바로 그 증거이다. 지구인의 두 번째 진화적 특징은 두 발로 땅을 딛고 허리를 곧게 편 채로 걷거나 뛰면서 살아간다는 점이다. 발은 땅을 딛고 정수리는 하늘로 향해 있다. 지구인은 대체 언제부터 왜 네 발 대신 두 발로 땅을 딛고 걷게 되었는가? 

두 발 동물의 우두머리

사자, 호랑이, 곰, 치타 등 야생의 포획자에 비하면 지구인은 연약하기 짝이 없다. 날카로운 송곳니도 발톱도 없다. 근력도 약하고 발걸음도 느리다. 피부도 섬약할뿐더러 겁도 많다. 고릴라 한 마리는 1.8톤의 역기를 너끈히 들 수 있을 만큼 힘이 세다. 지구인 스무 명이 맞들어도 고릴라 한 마리를 당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지구인은 먼 옛날부터 자연계 먹이사슬 맨 꼭대기에 우뚝 서서 살아왔다. 그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이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선 지구인의 피부에 숭숭 뚫린 무수한 땀샘 못잖게 지구인의 발을 유심히 관찰할 필요가 있다. 지구인이 두 발을 땅에 딛고서 상체를 곧게 편 채로 정수리가 하늘을 향하도록 고개를 들고서 팔을 흔들며 걸어가는 두 발 동물(biped)이다.

물론 모든 영장류는 대부분 ‘두 발 걷기(bipedalism)’를 할 수 있다. 영장류뿐만 아니라 ‘사지동물(tetrapod)’ 중에서 두 발 걷기에 능한 동물들이 꽤 있다. 북미와 중미 서부지방의 주로 사막이나 반사막 기후에서 서식하는 캥거루쥐는 설치류 중의 대표적인 두 발 동물이다. 전 지구 두 발 동물 중에서 빠르기로는 땅 위의 새 타조와 호주의 붉은 캥거루가 으뜸이다. 이들은 네 발 걷기보다 두 발 걷기가 더 편한 두 발 동물로 분류된다.

반면 영장류 대부분은 두 발 걷기를 할 수 있다. 침팬지, 고릴라, 긴팔원숭이(gibbon), 마카크(macaque), 거미원숭이, 꼬리감는원숭이(Capuchin) 등등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대륙에 퍼져 있는 영장류 대다수는 허리를 펴고 곧게 서서 팔을 쓰지 않은 채로 꽤 많이 걸을 수 있다. 침팬지가 걸어갈 때 무게 중심은 땅을 온전히 딛고 있는 뒷발에 쏠려 있다. 이때 침팬지는 다리보다 긴 두 팔을 죽 아래로 뻗어 손가락 둘째 마디로 땅을 짚고서 몸의 균형을 잡는다. 필요할 때면 침팬지는, 심지어 새끼들까지도, 손을 땅에 대지 않고 두 발만 써서 수십 걸음, 많으면 수백 걸음까지도 걸어갈 수가 있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이들을 두 발 동물이라 부른다면 어불성설이다. 평상시 걸을 때는 그들은 팔다리를 거의 함께 써서 네 발로 걷기 때문이다.

지구인은 두 발로 걷는 동물이다. 토마스 로랜드슨(Thomas Rowlandson, 1757-1827)의 "행진 훈련(An Early Lesson of Marching)." 1794년 작.
지구인은 두 발로 걷는 동물이다. 토마스 로랜드슨(Thomas Rowlandson, 1757-1827)의 '행진 훈련(An Early Lesson of Marching)'. 1794년 작.

침팬지가 두 발 걷기의 잠방이라면 지구인은 두 발 걷기의 달인들이다. 지구인은 타조나 캥거루처럼 빨리 뛸 순 없지만, 꾸준히 장거리를 쉬지 않고 갈 수 있는 놀라운 지구력을 갖고 있다. 지구인의 두 발 걷기는 여타 영장류와는 비교되지 않을 만큼 안정되고, 능숙하고, 자유롭고, 효율적이다. 지구인은 두 발 걷기를 완성하는 과정에서 먹이사슬의 꼭대기로 꾸준히 올라갔다. 그 과정에서 땀샘이 늘어나고, 털이 빠지고, 뇌가 커지고 말이 많아졌으며, 무엇보다 두 팔과 두 손과 열 손가락이 사지를 가진 그 어떤 척추동물의 앞다리와 앞발보다 정교하게 발달하기 시작했다. 두 발 걷기가 이동(移動, locomotion)에 사용되던 지구인의 두 팔을 자유롭게 풀어줬다. 두 팔의 해방은 두 손의 발달을 촉진했고, 덕분에 지구인의 열 개의 손가락을 자유롭게 쓰게 됐다. 두 발과 두 팔이 각각 딴 일을 하면서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동시적 신체 움직임(synchronous body movements)이 가능해졌다.

지구인의 두 발 걷기: 다섯 가지 이론

지구인은 과연 왜 두 발로 걷게 되었냐는 질문에 관해서 오늘날 지구인들은 의견이 분분하다. 널리 알려진 설명은 사바나 이론이다. 사바나에서 사냥꾼이 되어서 살아가는 과정에서 지구인은 주위를 더 높은 지점에서 더 멀리 내다볼 필요가 생겨났다는 이야기이다. 그럴싸하지만 최근에 발굴된 화석을 살펴보면 사바나 생활 이전 숲속 나무 위에서 이미 두 발 걷기가 완성된 정황이 읽힌다. 그래서 사바나 이론 대신 "과일 따기(fruit-picking)" 이론을 제시하는 학자들이 있다. 밀림 속 나무 위에서 과일 위주의 섭생으로 살아가던 지구인의 조상이 두 발로 중심을 잡고 서서 높은 가지에 달린 열매를 따야 하는 필요 때문에 자연스럽게 나무 위에서 두 발 걷기의 동물로 진화했다는 설명이다.

사바나 이론을 살짝 수정한 위협 이론(the threat theory)도 꽤 설득력이 있다. 열린 공간에서 맹수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서 전후 사방을 멀리 내다봐야 하는 긴장감 속에서 두 발 걷기가 완성됐다는 주장이다. 넷째는 체온 조절 이론이다. 두 발 걷기는 신체를 지열에서 떨어뜨리고 바람에 피부를 노출하여 체온을 낮춘다는 생물학적 설명이다. 다섯째는 약점 보완 이론이다. 이 설에 따르면, 약하고 느린 지구인은 손, 손목, 어깨를 자유롭게 써서 외부의 공격을 물리치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먹이 공급 이론(provisioning theory)’이 있다. 지구인은 짝을 지어서 가족을 이루며 살아왔으며 그 과정에서 남자는 먹이를 사냥하고 여자는 자녀의 양육을 책임지는 분업이 일어났고, 남자가 포획한 먹이를 멀리 집까지 옮겨가려면 두 손으로 날라야 했기에 부득이 두 발로 걷게 되었다는 인류학적 설명이다.

이 모든 이론을 종합하면, 지구인은 두 발로 서게 되면서 두 팔의 자유를 얻었고, 그 결과 두 손의 열 손가락 모두 정교하게 발달했으며, 손가락과 연결된 두뇌의 용량이 커지는 진화 과정을 거쳐 갔다. 결국 지구인의 이야기는 두 발 걷기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다.

대지에 두 발을 딛고 끊임없이 걷고 또 걷는 장구한 시간을 거쳐 가며 지구인은 막강한 사냥꾼이 되었고, 최강의 싸움꾼으로 거듭났고, 지구상에서 두뇌가 가장 크고 말이 제일 많은 생명체로 진화했다. 지구인은 누구인가? 두 발로 걷는 자다. 수천 번 넘어지며 걸음마를 익힌 아기는 돌이 지나면 껑충껑충 뛰어다닌다. 지구인에게 걸음은 최고 명약이다. 수백만 년 지구의 대지를 두 발로 쉼 없이 걸어 다니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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