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한미약품그룹의 임종윤 전 사장(왼쪽 두 번째)과 임종훈 전 사장이 경기 화성시 수원과학대학교 신텍스에서 열린 그룹 지주사 한미사이언스의 제51기 정기 주주총회가 끝난 후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
28일 한미약품그룹의 임종윤 전 사장(왼쪽 두 번째)과 임종훈 전 사장이 경기 화성시 수원과학대학교 신텍스에서 열린 그룹 지주사 한미사이언스의 제51기 정기 주주총회가 끝난 후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

‘이종(異種) 결합’으로 관심을 끈 제약·바이오 기업 한미약품그룹과 소재·에너지 전문 OCI그룹의 통합이 결국 무산됐다. ‘캐스팅보터’ 역할을 맡은 그룹 지주사 한미사이언스의 소액주주들이 통합 반대파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통합 반대파는 고(故) 임성기 한미약품그룹 창업 회장의 장남인 임종윤 전 한미약품 사장과 차남 임종훈 전 사장 형제가 이끌고 있다.

28일 한미사이언스는 경기도 화성시 수원과학대학교 신텍스에서 정기 주주총회를 열고 임종윤·종훈 형제 측이 제안한 후보 5명을 신임 이사로 선임하는 안건을 의결했다. 이로써 임종윤·종훈 형제는 한미사이언스의 사내이사, 권규찬 디엑스앤브이엑스 대표이사와 배보경 고려대 특임교수는 기타 비상무이사, 사봉관 변호사는 사외이사로 그룹 경영에 참여하게 됐다.

당초 이날 오전 9시 시작 예정이던 주총은 의결권 집계 및 위임장 확인 문제로 3시간 이상 지연돼 개최됐다. 통합 반대파에선 임종윤·종훈 형제가 모두 참석했지만, 찬성파 측에선 이우현 OCI홀딩스 회장만 모습을 드러냈다. 그동안 통합 찬성파를 이끌었던 송영숙 한미약품그룹 회장과 장녀 임주현 부회장 모녀는 건강상 이유로 불참했다.

주총 전날까지 누구도 형제와 모녀 중 어느 측이 승리할지 예측하지 못했다. 양측이 확보한 우호 지분 차이가 2.1%포인트 수준으로 모녀 측이 소폭 앞서며 박빙의 상황이 연출됐기 때문이다. 이를 구체적으로 보면 모녀 측은 송영숙 회장 11.66%, 임주현 부회장 10.2%, 친족 및 재단 13.15%, 국민연금공단 7.66% 등 모두 42.67%를 확보했다. 형제 측은 임종윤 9.91%, 임종훈 10.56%, 친족 및 디엑스앤브이엑스 7.95%,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 12.15% 등을 합쳐 40.57%를 우호 지분으로 끌어들였다.

결국 한미약품그룹의 경영권은 물론 OCI그룹과의 통합 성사 여부는 한미사이언스 소액주주의 결정에 따라 갈렸다. 이번 주총의 의결권을 가진 소액주주 수는 3만 8470명으로, 이들이 차지하고 있는 한미사이언스 지분율은 약 17%다. 한미사이언스에 따르면 주총 당일 12시 24분 기준 주총에 출석한 주주는 본인 및 대리인을 포함해 2160명으로 이들이 소유한 주식 수는 5962만 4506주다.

이번 주주총회 결과에 따라 한미사이언스는 기존 4명에 신규 5명의 이사가 추가된 총 9명의 이사진이 꾸려졌다. 새로운 이사회는 기존 구성원인 송영숙 회장, 신유철 사외이사, 김용덕 사외이사, 곽태선 사외이사 등 통합 찬성파 4명과 이날 주총에서 새롭게 선임된 임종윤·종훈 형제 5명 등으로 구성된다. 통합 찬성파 측 이사와 반대파 측 이사가 4대 5로 나뉜 만큼 OCI그룹과의 통합은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주총 직후 OCI그룹도 양사 간 통합 중단을 알렸다. OCI그룹 측은 "한미사이언스 주주들의 뜻을 겸허히 받아들여 통합 절차를 중단한다"면서 "앞으로 한미약품그룹의 발전을 바란다"고 밝혔다.

한미약품그룹의 균열은 지난 2020년 8월 임성기 창업 회장이 별세한 이후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후계 구도가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창업 회장이 남긴 1조 원가량의 유산이 가족 간 경영권 분쟁의 시초가 된 것이다. 송영숙 회장과 자녀 3명이 내야 할 상속세는 현재 540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송영숙 회장과 세 자녀는 그동안 주식담보대출 등을 통해 상속세를 충당해 왔다. 하지만 고금리 기조가 이어지면서 이자부담이 커졌고, 결국 송영숙 회장·임주현 부회장 모녀는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라데팡스파트너스에 일부 지분 매각을 추진했다.

모녀의 예상과는 달리 라데팡스에 지분을 매각하는 과정은 녹록지 않았다. 주요 출자자인 MG새마을금고가 지난해 7월 부실 논란으로 ‘뱅크런’ 사태를 맞으며 무산된 것이다. 이어 라데팡스는 제약·바이오로 사업 확장을 꿈꾸는 OCI그룹을 모녀에게 소개했고, 모녀는 한미사이언스와 OCI홀딩스와의 통합을 결정했다.

하지만 임종윤·종훈 형제가 자신들의 의견이 배제됐다는 이유로 법원에 신주발행 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며 양사 통합은 암초를 만났다. 더구나 한미사이언스의 2대 주주인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까지 형제들의 편에 서면서 경영권 다툼의 무게추는 점점 형제 측으로 기울었다.

주총 직전 형제가 낸 신주발행 금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이 기각한 데 이어 국민연금도 모녀 지지를 선언하면서 양사 통합의 불씨가 살아나는 듯했지만, 결국 소액주주들이 형제의 손을 들어주면서 이종 그룹 간 통합은 물거품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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