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4대 은행(신한금융, KB금융지주, 우리은행, 하나금융). /연합
국내 4대 은행(신한금융, KB금융지주, 우리은행, 하나금융). /연합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대선 기간 중 대출규제 완화를 강조했다. 대출규제를 완화하려면 가계대출 총량관리부터 손 봐야 하는데, 은행들은 이미 대출 빗장 풀기에 본격 나서고 있는 모양새다.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은행은 이날부터 전세계약 갱신에 따른 전세자금 대출 한도를 전세보증금 증액 범위 내에서 갱신 계약서상 전세보증금의 80% 이내로 변경했다. 예를 들어 전세보증금이 4억원에서 6억원으로 2억원 오른 경우 기존 전세대출이 없는 차주는 최대 2억원만 빌릴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전세보증금 6억원의 80%인 4억8000만원까지 대출받을 수 있다. 다만 기존 전세대출이 있다면 4억8000만원에서 그만큼 뺀 금액까지만 빌려 준다.

전세대출 신청기간도 늘어났다. 신규 계약서상 잔금 지급일 이전에서 잔금 지급일 또는 주민등록 전입일 중 빠른 날로부터 3개월 이내로 바뀐 것이다. 잔금 지급일 이후 대출을 받으면 차주 입장에서는 자금의 활용도가 높아지는 효과가 있다. 계약시 전세대출을 받지 않고 지인 등으로부터 돈을 빌리거나 자력으로 전셋값을 낸 차주라도 입주 후 3개월 이내에 대출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부부 합산 1주택자의 경우 비대면으로 대출을 신청할 수도 있다.

앞서 은행들은 지난해 10월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총량관리 기조에 맞춰 대출수요 억제를 위한 3가지 자율규제 대책을 마련했다. 전세계약 갱신시 전세대출 한도를 전셋값 증액분까지로 제한하고, 잔금 지급일 이전까지만 대출 신청이 가능하도록 했다. 또 부부 합산 1주택자의 경우 대면으로만 대출을 받을 수 있게 했는데, 5개월 만에 이같은 자율규제가 무력화된 것이다. KB국민은행, 신한은행, 하나은행 등 주요 은행도 전세대출 규제 완화 시기와 세부 내용을 내부적으로 조율 중이다.

주택담보대출 금리 인하와 신용대출 한도 확대도 이어지고 있다. KB국민은행은 지난 7일부터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최대 연 0.2%포인트 인하했고, 마이너스통장의 한도 역시 5000만원에서 1억5000만원으로 상향 조정했다. 하나은행 역시 마이너스통장의 한도를 5000만원에서 1억5000만원으로 올렸고, NH농협은행은 신용대출 한도를 최대 2억5000만원으로 상향 조정했다.

은행들이 잇따라 가계대출 규제를 완화하고 있는 것은 올들어 대출금리 상승,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강화, 부동산·주식·암호화폐 등 자산시장 침체 등이 맞물리면서 대출수요가 꺾이고, 이는 곧장 수익 악화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은행의 한 관계자는 "가계대출은 안정적인 성장세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데, 강력한 대출규제에

금리인상까지 본격화되면서 지금은 마이너스 성장을 걱정해야 할 판"이라며 "이자이익 등 영업실적을 고려하면 활발한 대출 영업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금융당국 내부에서도 지난해와 달라진 자산시장 기류와 통화정책 정상화 등을 이유로 가계대출 총량관리를 어느 정도 푸는데 큰 무리는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금융위원회는 올해 가계대출 총량 증가 목표율을 4∼5%대로 제시했다. 이같은 목표에 따른 월간 대출액 증가 상한은 7조원가량이지만 올들어 두 달간 가계대출 규모는 6000억원이 되레 줄었다. 2월 말 기준으로는 15조원가량 대출 여력이 있다.

이에 따라 금융소비자의 관심은 주택담보대출비율(LTV) 규제 완화로 옮겨가고 있다. 윤 당선인은 LTV를 전체적으로 70%로 상향하고, 생애 최초 주택 구매는 80%로 올려준다고 공약한 바 있다. 현재 LTV는 규제지역 여부, 집값, 주택 보유 여부 등에 따라 20∼70%로 운영된다.

관건은 DSR 규제 완화다. 올해 1월부터 총대출 규모가 2억원을 초과하면 차주단위(개인별) DSR 규제를 적용받고 있다. 연간 원리금 합계가 소득의 40%(2금융권은 50%)를 초과한 경우 신규 대출을 받지 못한다. 올해 7월부터는 DSR 규제 대상이 대출액 합산 1억원이 넘는 차주까지 확대된다.

인수위원회에서는 가계대출 총량관리나 LTV 규제 완화에 따른 효과가 크지 않을 경우 DSR 규제 완화도 검토할 수밖에 없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DSR 규제의 현행 유지, 심지어는 강화를 주문하고 있다. LTV와 DSR 규제를 한꺼번에 풀 경우 우리 경제의 최대 ‘뇌관’이 된 가계부채 문제가 다시 심각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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