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에 따라 발언하는 것에 대한 위험성 깊이 생각하게 돼”

2018년에 발표된 영화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의 한 장면. 이 영화는 구소련 시절 루마니아에 파견된 러시아 군인들을 전도하기 위한 루마니아의 리처드 웜브란트 목사의 노력을 상세히 그린다.  /순교자의소리

최근 러시아의 새 법률 ‘20.3.3조’로 인해 러시아 목회자들이 자국이 우크라이나에서 자행하고 있는 행동에 대해 공개적으로 설교하거나 기도하는 활동들이 위축되고 있다. 지난 4일 제정된 이 법률로 인해 ‘러시아 연방군의 사용을 비난하는 취지의 대중적 행위’가 범죄로 규정됨에 따라, 러시아 기독교인들이 양심에 따라 발언하는 것도 위험해지게 됐다.

23일 순교자의소리(Voice of the Martyrs Korea)에 따르면 러시아에서 이번달 20.3.3조 법률로 인해 400명 이상의 러시아 교회·신학교 지도자가 러시아의 한 소규모 기독교 웹사이트에 국가 차원의 회개를 촉구하는 글을 게시했다가 신속히 삭제했고, 러시아의 한 변호사는 예배 시간에 평화를 위해 기도할 때 문제를 피하는 방법을 페이스북을 통해 러시아 교회들에 알려줬다. 또 대중에게 잘 알려진 러시아의 한 목회자는 전쟁 종식을 위해 개인적으로 기도하는 것이 기독교인의 영적 책임을 이행하는 것이라고 러시아 기독교인들에게 확신시키기도 했다.

이미 러시아의 목회자 한 명이 새로운 법에 따라 기소될 위기에 처했다. 영국 BBC에 따르면, 코스트로마에 있는 위치한 부활교회의 이오안 보르딘 목사는 설교 중 반군사적 발언을 하고, 전쟁에 반대하는 온라인 청원서를 유포했다는 혐의로 기소될 예정이다.

순교자의소리 현숙 폴리 대표는 “러시아에서 더 많은 사람이 고발당하고 더 많은 사건이 기소되기 전까지는 목회자와 교회에게 허용되는 것은 무엇이고, 범죄로 규정되는 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 수 없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순교자의 소리

현재 페이스북을 통해 러시아 목회자·교회에 조언을 하고 있는 러시아인 변호사 세르게이 추구노프에 따르면, 평화를 위한 기도조차 상황에 따라 법률 위반이 될 수 있다. 추구노프 변호사는 최근 페이스북에서 “우리가 ‘최근에 바뀐 법률에 비추어 볼 때 교인들에게 평화를 위한 기도를 요청해도 되는가?’라는 질문에 답해야 하는 시대에 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러시아 목회자와 교회들은 ‘전쟁 반대‘ 같은 문구를 게시하거나 공개적으로 선언할 경우 기소될 것을 예상해야 한다”고 전했다.

추구노프 변호사는 또 “러시아 목회자들과 교회들이 이 전쟁에 관한 공식적인 성명을 신중하게 발표해야 한다”며 “교회는 평화를 위한 광범위한 기도를 계획하고, 함께 기도할 것을 권유할 때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에 따라 러시아 교계도 위축되는 분위기다. 최근 러시아 침례교회와 오순절 교회와 신학교 지도자 400명은 이달 초 평화를 위한 기도를 요청하는 수준을 넘어 ‘동포들께 호소합니다‘라는 제목의 공개 서한을 상트페테르부르그의 작은 기독교 출판사 웹사이트에 잠시 게시했다가 자발적으로 삭제한 것으로 알려졌다. 삭제된 전문은 다음과 같다.

“내가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뽑거나 부수거나 멸하려 할 때에 만일 내가 말한 그 민족이 그의 악에서 돌이키면 내가 그에게 내리기로 생각하였던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겠고”(렘 18:7-8) 

 

친애하는 동포 여러분!  

 

우리나라 군대가 지금 이웃 우크라이나의 도시들에 폭탄과 로켓을 투하하며 총력적인 군사작전을 펼치고 있습니다. 기독교인으로서 우리는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을 형제 살해죄라는 중죄, 즉 형제 아벨을 살해한 가인의 죄로 간주하는 바입니다.  

 

어떤 정치적 이익이나 목표도 무고한 시민의 죽음을 정당화할 수 없습니다. 노인과 여자, 아이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양쪽 군인들도 죽어가고 있고 도시와 기반시설이 파괴되고 있습니다. 포탄과 폭탄은 군사 목표물뿐 아니라 병원과 민간 건물과 주택을 파괴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난민이 되었고 전쟁 지역은 인간적인 삶을 유지하기 위한 기본적인 공급조차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이러한 유혈사태 외에도, 러시아가 주권국가인 우크라이나를 침략했다는 사실은 우크라이나 국민의 자결권의 자유를 침해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러시아 정부는 우리 두 나라의 국민들 사이에 증오의 씨앗을 뿌리고 있습니다.  이 씨앗은 다음 세대에서는 소외와 적대감으로 자라날 것입니다. 이 전쟁은 우크라이나 뿐만 아니라 러시아, 즉 러시아 국민, 경제, 도덕성, 미래를 파괴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악에서 손을 떼고 평화의 길을 구하라”(시 34:14)고 촉구하며, “악을 뿌리는 자는 재앙을 거두리니”(잠 22:8)라고 경고합니다. 영적 가치를 진정으로 의지하고자 한다면,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마 26:52)는 말씀을 청종하는 것이 정말로 중요합니다. 또한 성경은 “악한 일에 관한 징벌이 속히 실행되지 아니하므로 인생들이 악을 행하는 데에 마음이 담대하도다”(전 8:11)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판단은 공정하고 피할 길이 없습니다.   

 

지금은 우리 각자가 옳은 말을 해야 할 때입니다. 하나님의 징벌을 피하고 우리나라의 멸망을 막을 수 있는 기회가 아직 우리에게 남아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나라가 저지른 일을 회개해야 합니다. 우선은 하나님 앞에서, 그 다음에는 우크라이나 국민 앞에서 회개해야 합니다. 거짓말과 증오를 버려야 합니다. 이 무의미한 유혈사태를 중단할 것을 우리나라 당국자들에게 요청하는 바입니다! 

 

러시아의 복음주의 교회 목회자들 

2021년, 한 지역 교회의 건물이 몰수된 사건에 관하여 의논하는 러시아 목회자들의 모습.  러시아 기독교인들은 교회 건물 사용, 복음전도, 외국인 선교사와의 접촉뿐 아니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시작한 전쟁에 대한 발언과 관련하여 점점 더 많은 제약을 받고 있다. /순교자의소리
2021년, 한 지역 교회의 건물이 몰수된 사건에 관하여 의논하는 러시아 목회자들의 모습.  러시아 기독교인들은 교회 건물 사용, 복음전도, 외국인 선교사와의 접촉뿐 아니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시작한 전쟁에 대한 발언과 관련하여 점점 더 많은 제약을 받고 있다. /순교자의소리

그러나 현재로서는 침묵도 러시아 교회의 신실한 증언의 일부라는 입장도 나온다. 현숙 폴리 대표는 “교회가 취할 수 있는 침묵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두려움에서 오는 침묵으로, 이것은 죄다. 다른 하나는 침묵의 기도로, 이것은 교회의 사역에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대중에게 잘 알려진 러시아의 한 목회자는 러시아의 개신교 신자가 워낙 소수이므로 시위행진이나 공개성명을 통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자행하는 행위를 변화시킬 가능성은 없겠지만, 침묵의 기도로 하나님께 호소하는 그 성도들의 힘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될 것이라는 내용의 글을 이번 달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리기도 했다. 그는 “하나님은 전쟁을 중단시킬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부르짖는다. 세상의 그 어떤 법률도 성도의 기도를 막지 못한다”고 전했다.

한편 순교자의소리는 러시아 기독교인들이 지하 기독교인으로서 신실한 증인의 사명을 감당하도록 돕고 있다. 순교자의 소리와 러시아 기독교인들이 동역하는 지하 양육 사역에 관한 내용은 아래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안내받을 수 있다. www.vomkorea.com/en/project/russia-ministry

또한 우크라이나 기독교인을 위한 긴급 구호 프로젝트에 동역하고자 하는 한국교회·성도들은 아래 두 가지 방법 중 하나를 이용할 수 있다. 

웹사이트: www.vomkorea.com/en/donation (납부 유형 ‘우크라이나’ 선택)
계좌이체: 국민은행 463501-01-243303 예금주: (사)순교자의 소리 (본인 성명 옆에 ‘우크라이나’라고 기입. 그렇지 않으면 일반 후원금으로 사용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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