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하게 금지조항으로 둔 군형법을 사실상 무력화시킨 것”
“사회적 분위기 따라 판단 내린다면 법의 수호의지 없는 것”
“사적공간 강제 성추행·성폭행 면죄부 줄 수 있는 위험한 판결”

대법원. /연합
대법원. /연합

대법원이 남성 군인 두 명이 근무시간 외 영외에서 합의 하에 성행위를 한 것을 군형법 제92조의 6에 따라 처벌할 수 없다고 판결한 것을 두고 기독교계와 시민단체들이 “군 특수성을 간과한 판결이며, 동성애 합법화 수순”이라며 일제히 규탄에 나섰다.

지난 21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동성 군인 사이의 성행위로 유죄를 선고받았던 A중위와 B상사의 상고심에서 일부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고등군사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이들은 2016년 근무시간이 아닌 때 영외에 있는 독신자 숙소에서 서로 합의하고 성행위를 한 혐의를 받았다. 이들에겐 군형법 92조의6(추행) “군인 등에 대해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는 조항이 적용었다.

하지만 대법원은 사적 공간에서 상호 합의 하에 이뤄진 남성 군인 간의 성관계를 군형법으로 처벌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 또 동성 간 성행위가 일반인에게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는 ‘추행’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동성 군인 사이의 항문성교나 이와 유사한 성행위가 사적 공간에서 자발적 의사 합치에 따라 이뤄지는 등 군이라는 공동사회의 건전한 생활과 군기를 직접적·구체적으로 침해한 것으로 보기 어려운 경우에는 현행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법적판단 아닌 사회적 분위기 따라 판단 내린다면 법의 수호의지 없는 것”

‘군형법 92조 6 합헌 판결 촉구 기자회견’이 열린 지난 2016년 4월 20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 /유튜브 영상 캡처
‘군형법 92조 6 합헌 판결 촉구 기자회견’이 열린 지난 2016년 4월 20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 /유튜브 영상 캡처

이번 판결에 대해 기독교계는 군대와 군인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못한 판결이라며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한국도 이제 동성애 합법화의 길이 열리게 됐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동성애동성혼반대국민연합 운영위원장 길원평 한동대 교수는 “군대의 특수성을 생각하지 않은 판결”이라며 “지금까지 군대는 수직 관계로 이뤄져 있어서 상호 ‘합의’를 본다는 것이 사실상 어렵다고 보고 이를 보호했던 것인데 빗장이 풀린 거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또 “군대 계급이 낮은 약자에 속하는 이들에겐 동성애자인 상급자의 요구를 거부하기 어려운 만큼 이번 판결은 약자를 위한 것이 아닌 약자를 더 불리하게 만든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김영길 바른군인권연구소장도 “군인은 사생활 영역에서도 군인 신분이 유지된다는 점을 망각한 판결”이라며 “일반인은 처벌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군인은 그 특성상 신분의 주체가 중요한 문제인데 행위의 주체를 빼고 그저 행위만 보고 판단하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법적 판단의 최고 권위자라 볼 수 있는 대법관이 법적 판단이 아니라 사회적 분위기에 따라 판단을 내린다면 법의 수호 의지가 없는 것”이라고 했다.

김 소장은 “이번 판결이 헌재 판결에도 당장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해당 군형법이 위헌 결정이 나서 법을 수정해야 한다면 사실상 우리나라가 동성애를 합법화한 나라로 가는 문이 열렸다는 걸 의미한다”고 우려했다. 이번 판결에서 쟁점이 된 군형법 제92조의 6은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헌법재판소(헌재)는 2002년과 2011년, 2016년 합헌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이후에도 법원의 위헌법률심판 제청 2건, 헌법소원 10건이 이어져 헌재 심리 중이다.

한국기독교군선교연합회 관계자는 “소수의 인권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군대라는 특수성 즉, 국가안보를 책임져야 하고 엄격한 규율이 유지돼야만 하는 군대에서 동성애 문제는 보편적인 윤리와 가치관에서 벗어나는 행위”라면서 “이번 판결은 이 같은 점을 도외시한 지극히 비상식적인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사적 공간 강제 성추행·성폭행에 대한 면죄부 줄 수 있는 위험한 판결 내린 것”

/반동성애기독시민연대 홈페이지 캡처.
/반동성애기독시민연대 홈페이지 캡처.

시민단체들도 일제히 성명을 내고 이번 판결에 대해 규탄에 나섰다. 반동성애기독시민연대(반동연)와 자유인권실천국민행동은 21일 성명을 내고 “어떻게 편향된 대법원 판사들이 ‘성적 자기결정권’과 ‘사적 공간’을 사유로 국민상식에 벗어나는 판결, 수많은 군인 인권피해자를 양산시킬 군형법 92조6 무력화 판결을 내릴 수 있단 말인가”라고 라고 반문했다.

이들은 “징병제로 유지돼온 대한민국 군대에서 군형법92조6(항문성교·추행죄)은 반드시 존치돼야 하는 헌법 가치에 부합하는 조문이었다. 그런데 이를 일거에 뒤집는 판결을 내린 대법원 판사들에게 심한 분노를 금할 수 없다”며 “동성 간 성행위가 객관적으로 일반인에게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고 선량한 성적 도덕 관념에 반하는 추행에 해당한다는 판단은 이 시대 보편 타당한 규범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따라서 동성 간 성행위가 그 자체만으로 추행에 해당한다는 종래 해석은 더 이상 유지하기 어렵다”고 우려했다.

또한 “대한민국에서 일반국민들의 성적 자기결정권은 누구에게나 허용돼 있지만, 군대라는 특수집단에서는 예외를 두고 있다. 일반인이 아닌 군인은 형법이 아닌 군형법을 적용받고 있다. 그러기에 군인인 것”이라며 “그런데도 대법관들은 이러한 기본 전제를 무시한 채 군인들에 대해 일반인과 동일한 시각에서 군형법이 아닌 형법의 잣대로 판단하는 우를 범했다. 이는 명백히 잘못된 전제 하에서 이뤄진 판결이기에 원천적으로 무효라고 본다”고 했다.

이어 “이번 판결로 군대·군인이라는 특수집단에 대한 고려 없이 편향된 인권논리에 치우쳐 일반 하급군인이 ‘사적 공간’에서 강제 성추행·성폭행당할 수 있는 위험성을 고조시켰고, ‘사적 공간’에서 증인 없는 강제 성추행·성폭행범에 대해 면죄부를 줄 수 있는 위험한 판결을 내린 것”이라며 “지금껏 대한민국은 미국과 서유럽처럼 어느 국민도 동성애에 대해 어떤 법적 처벌을 받은 적이 없다. 그러나 그들의 성적 자기결정권이 군대라는 특수집단 내에서 이뤄질 때 이는 차원이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고 했다.

이들은 “명령복종, 상하관계가 엄중한 계급으로 이뤄진 집단 내에서 하급자가 상급자로부터 언제든지 부당한 명령을 받을 수 있는 것”이라며 “그들의 부당한 요구가 강제적 성관계로까지 이어질 경우,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하급자들에게 쏟아지는 것이다. 그러한 부당한 성관계 요구 명령이나 강제 성추행·성폭행을 당했을 때 하급자의 침해받은 인권은 어떻게 보상받을 것인가”라고 했다.

끝으로 “결코 국민들이 용납할 수 없는 위험하고 잘못된 판결이며, 자녀들을 강제로 군대를 보내야 할 부모들을 불안케 만들고, 신성한 군복무에 대해 저항운동을 촉발시키는 우를 범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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