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량용 강판 가격의 인상으로 완성차업계의 수익성에 빨간불이 켜졌다. 완성차업체들이 수익 보전을 위해 신차 출고가를 인상할 가능성이 높아 올해도 ‘카플레이션’이 이어질 전망이다. 울산시 북구 현대자동차 출고센터. /연합
차량용 강판 가격의 인상으로 완성차업계의 수익성에 빨간불이 켜졌다. 완성차업체들이 수익 보전을 위해 신차 출고가를 인상할 가능성이 높아 올해도 ‘카플레이션’이 이어질 전망이다. 울산시 북구 현대자동차 출고센터. /연합

차량용 반도체 공급난과 중국의 도시봉쇄로 인한 부품 수급 차질로 고난의 행군을 이어가고 있는 국내 완성차 업계가 국제 원자잿값 폭등의 충격파를 맞으며 올해 수익성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지난해 두 차례나 오른 차량용 강판 가격이 다시 두자릿수 인상을 앞둔 까닭이다. 완성차 5사는 당장 1조원이 넘는 수익이 증발할 처지다. 이에 완성차 업계가 신차 가격 인상에 나서면서 ‘카플레이션(자동차+인플레이션)’이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24일 철강업계에 따르면 연초부터 지속된 포스코 등 철강업체들과 현대차·기아의 차량용 강판 공급가 협상이 사실상 타결돼 계약서 사인을 앞둔 것으로 나타났다. 인상 규모는 톤당 15만원으로 알려졌다.

당초 철강업계는 톤당 15~20만원의 인상안을 제시했지만 협상 끝에 최소폭에서 합의가 이뤄졌다. 이로써 국내 차량용 강판 가격은 기존 톤당 115만∼125만원에서 130만∼145만원으로 상승하게 된다. 완성차 업계의 맏형 격인 현대차·기아와의 협상이 마무리되면서 르노코리아·쌍용차·한국지엠(르쌍쉐)도 곧 유사한 수준의 인상이 결정될 전망이다.

앞서 철강업계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국제 철광석과 제철용 원료탄 가격이 치솟고 있어 강판 공급가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피력해왔다. 한국자원정보서비스에 의하면 지난해 11월 톤당 87.2달러였던 중국산 철광석 가격은 이달 23일 150.5달러로 4개월새 73%나 올랐다. 원료탄도 지난 22일 톤당 530달러로 연초 360달러보다 47% 뛰었다.

이번 강판 가격의 추가 인상은 완성차 업계에 큰 원가부담 압박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중·대형차 1대에 1톤가량의 강판이 쓰인다는 점을 감안하면 단순계산으로도 지난해 389만981대를 판매한 현대차는 5836억5000만원, 277만7056대를 팔은 기아는 4165억6000만원의 수익이 사라진다. 양사의 합산 피해 예상액만 1조원이 넘는다. 르쌍쉐 3사 역시 지난해 판매고 총 45만4309대 기준 681억원의 수익이 공중 분해될 수 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 관계자는 "현대차·기아의 수익 상실분 1조원은 작년 별도기준 합산 영업이익 3조4808억원의 28.7%, 당기순이익 2조8765억원의 34.7%에 이른다"며 "르쌍쉐의 경우 2년 연속 영업손실을 기록 중이라 채산성 악화가 더욱 뼈아플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완성차 업계가 이 같은 규모의 제조원가 상승을 경영 효율화 등 자체 노력으로 상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자동차 가격 인상을 통해 소비자에게 부담을 전가할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이때는 차량용 반도체 대란의 점진적 완화 기대에도 불구하고 올해 카플레이션이 오히려 가속화될 수 있다.

실제 지난해 국내 신찻값은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의 ‘2021년 자동차 신규등록 현황’ 자료를 보면 지난해 국내서 판매된 신차의 평균가격은 4420만원을 나타냈다. 대당 평균가의 4000만원 돌파는 이번이 처음으로 완성차업체들이 반도체 부족에 의한 판매량 감소와 그에 따른 수익 저하를 막고자 마진율 높은 스포츠유틸리티차(SUV)나 프리미엄 차종의 생산 비중을 키운 결과다. 한국자동차연구원 관계자는 "현대차·기아의 영업이익률이 5%대라는 점에서 적정 수익을 위해선 출고가 인상 외에 뚜렷한 대안이 없을 것"이라며 "신규 계약 물량부터 강판 가격 인상분이 본격 반영될 개연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한편 자동차업계에 더해 한국조선해양·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 등 조선 3사도 현재 철강업체들과 선박의 강재로 쓰이는 후판의 가격 인상을 협상 중에 있다. 하지만 입장차를 좁히지 못한 채 샅바싸움만 치열하다. 자동차업계는 비용 전가라도 가능하지만 조선업계는 수년전 수주한 물량을 올해 납품하는 구조여서 즉각적 납품가 반영이 어려운 탓이다. 특히 후판 가격은 선박 원가의 15~20%나 차지해 철강업계에서 요구하는 두자릿수의 인상율이 관철된다면 3사는 4조4000억원 규모의 추가 영업손실이 예상된다.

저작권자 © 자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