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훈이 만난 사람]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전 일본 총리

"尹 대통령의 '미래를 보자'는 한일관계에 대한 기본 인식에
日은 '과거 잊고 미래만 말하겠다'는 식으로 받아들이면 안 돼"
"양국은 과거사 문제에 한발씩 양보해 타협할 수밖에 없어
냉각된 한일관계 지속 땐 자칫 군사적 긴장 국면 올까 걱정"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 총리는 8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한일 양국은 과거사 문제에서 한발씩 양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석구 기자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 총리는 8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한일 양국은 과거사 문제에서 한발씩 양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석구 기자

1955년 이후 장수 집권당이던 자민당을 야당으로 끌어 내렸다. 그리고 민주당 정권의 초대 총리에 오른 신사 정치인. 본지는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전 일본 총리와 방한 직후인 8일 밤 시내 호텔에서 인터뷰했다. 그는 "일본은 ‘미래를 보자’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인식에 대해 과거사를 잊고 미래만 말하겠다는 식으로 받아들이면 결코 안 될 것"이라며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진지한 반성부터 이뤄져야 한일 관계가 진정으로 개선될 수 있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 참석차 부인 미유키 여사와 함께 온 하토야마 전 총리에게 덕담부터 건넸다. "2015년 8월 방한 때 서대문형무소 추모비 앞에 무릎을 꿇고 사죄한 게 인상적이었다." 동방정책의 빌리 브란트 전 독일 총리가 폴란드의 게토에서, 아우슈비츠에서 히틀러가 저지른 전쟁범죄에 대해 무릎 꿇고 사죄한 역사적인 장면도 상기시켰다. "그렇게 봐줘서 대단히 감사하다. 그곳에는 한국 독립투사들의 피와 땀이 서려있지 않은가"라며 미소지었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일본이 가해자로서 과거사에 대해 진지하게 사과해야 한다’는 소신을 인터뷰 중 여러차례 언급했다.

"과거보다 미래를 지향하겠다는 윤 당선인의 생각은 옳다. 일본은 한국의 새 대통령 취임을 계기로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과거사 문제) 해결이 끝났다’는 경직된 입장을 수정할 용의를 한국에 전해야 한다. 잘못된 역사 인식을 지닌 일본을 감정적으로 비난하는 한국, 양국 간 날선 공방이 거듭돼 결국 선린 관계가 무너졌다. 앞으로 이런 잘못을 되풀이하지 말자. 미중 간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이를 헤쳐 나가려면 전략적으로 한일 관계는 필수적으로 개선돼야 한다."

하토야마는 윤 대통령 취임 후 한일 관계가 개선되리라는 기대를 감추지 않았다. 과거사 문제에서 일본의 반성을 촉구해 온 지한파 정치인이라서 더욱 그랬을 테다. 꽁꽁 얼어붙은 한일 관계에 전기가 마련되는 기류 변화에 만족감을 표했다. 실제 윤 당선인의 취임을 앞두고 한국 측 대표단이 방일해 대화의 실마리를 풀기 시작했다. 양국 간 ‘관계 개선을 꾀하자’는 인식의 공유는 여러 곳에서 엿보인다.

3·9 대선 승리 후 윤 당선인은 조 바이든 미 대통령에 이어 두 번째로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와 통화했다. 그때도 "한일 양국은 동북아 안보와 경제 번영 등 미래 과제가 많은 만큼 우호협력 증진을 위해 함께 협력해 나아가자"고 화답했다. 윤 당선인과 기시다 총리는 "빠른 시일 내에 만나자"는 뜻도 공유했다.

그러나 교도통신, NHK의 여론조사에서 일본 국민 70% 이상은 여전히 ‘윤 대통령 취임 이후에도 한일 관계가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고 응답하며 부정적인 생각을 바꾸지 않고 있다. 과거사 문제, 지소미아(무역 분쟁) 등으로 겹겹이 쌓인 양국 간 갈등이 쾌도난마(쾌도난마)로 단번에 풀리진 않을 것임을 웅변한다.

-윤 대통령 취임 후 한일관계를 어떻게 보는가.

"여소야대의 의회 상황이 아닌가? 대통령 취임 이후에도 한국 내 지지 기반을 다져가면서 정책을 펼치고 정치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개인적으로 만난 일은 없지만 검찰총장 때 펼친 맹활약은 일본에도 잘 알려져 있다. 1965년 이후 최악의 한일 관계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대통령에 취임하는 그의 리더십에 기대가 크다."

그는 지한파 정치인답게 기자에게 3.9 대선 이후의 한국 정치지형의 변화와 6.1 지방선거 결과에 대해서도 질문을 하며 깊은 관심을 표했다.

-총리 재임 때는 한일 관계가 어땠는가?

"총리 시절인 2009년에도 이명박 대통령(MB)과, 지금 윤 당선인처럼 ‘미래 지향’이라는 화두를 공유했다. 윤 당선인이 ‘과거보다는 미래에 어떻게 하는 것이 양국에 이익이 되는지 잘 찾아 나가야 한다’고 말한 것은 전적으로 옳은 방향이다." 그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도 만나 대화를 한 일이 있다. 그러나 물러나는 문재인 대통령과는 만난 일이 없다고 했다.

"문 대통령이 북한 비핵화 문제에 나이브(naive)하게 접근했다"는 비판이 많다고 기자가 지적했다. 그러자 하토야마는 ‘문 다이또료(대통령)’라는 말과 함께 리버럴(liberal)한 자신의 정치적 속내를 드러냈다. "비핵화를 위해 미국과 함께 공동보조를 취하며 김정은을 설득하려 한 그 방향은 옳다고 본다. 그러나 트럼프 정부가 독주하며 ‘탈선’하는 바람에 결국 결실을 맺지 못하고 좌절해 아쉬움도 크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취임 1개월만인 2009년 10월 방한해 MB와 첫 정상회담을 했다. 당시 일본에서 핫(hot)했던 막걸리를 공식 건배주로 테이블에 올리기도 했다. 배우 이서진의 광팬인 부인 미유키 여사는 일본 프로야구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활약한 이승엽을 초대해 저녁식사를 할 정도로 한류를 좋아했다. 격세지감이 느껴질 정도로 당시 한일 관계는 따듯했다.

한일 관계에서 실용적 접근을 한 MB와 하토야마는 퇴임 후 2015년 11월 서울에서 다시 만났다. 두 사람은 비록 전직이었지만 "한일 관계가 지속적으로 발전하는 게 동북아 평화에 도움이 된다"고 의견을 교환했다. 하토야마는 지금도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도모하기 위해 한 중 일 3국 인사들이 참가하는 단체를 이끌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 외빈으로 참석한 하토야마 유키오(왼쪽) 전 일본 총리가 8일 숙소인 서울 강남의 한 호텔에서 본지 최영훈 주필과 대담을 나누고 있다. /김석구 기자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 외빈으로 참석한 하토야마 유키오(왼쪽) 전 일본 총리가 8일 숙소인 서울 강남의 한 호텔에서 본지 최영훈 주필과 대담을 나누고 있다. /김석구 기자

-‘미래를 보자’는 윤 당선인의 생각을 일본은 어떻게 읽고 있나.

"현재와 미래는 과거의 토대 위에 있다. 윤 당선인의 한일 관계 인식에 일본이 ‘과거는 잊고 미래만 말하겠다’는 식으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역사 인식, 특히 침략한 쪽(일본)의 진지한 반성 없이는 미래로 나아갈 수 없다. 한일 양국의 날선 공방이 거듭되고, 그 결과로 반한 감정이 생기다보니 지금은 한일 관계의 토대가 상당부분 무너져내린 것만 같아 안타깝다."

-결국 역사 문제가 최대 쟁점이 될 텐데….

"최대 현안인 징용공 문제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와 있다. 대통령에 취임해도 (판결을) 무시할 순 없다. 양국이 한발씩 양보해 타협할 수밖에 없다. 청구권 문제도 국가 간 조약만으로 소멸시킬 수는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아베 정권 후 일본은 ‘1965년 협정으로 모두 해결됐다’고 여긴다. 일본 주장에 무조건 양보하는 건 불가능할 거다. 윤 대통령 취임을 계기로 일본이 완고한 입장을 수정할 수 있다는 신호부터 보내는 게 좋을 거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일본이 반성해야 한다’는 소신을 견지한다. "역사 인식에서도 과거를 직시할 수 있는 정부가 돼야 한다"며 전향적이었다. 2019년 10월 직전 방한 때 그는 부산대 강연에서 "피해자가 더는 사죄하지 않아도 된다고 할 때까지 가해자는 사죄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며 일본의 맹성을 촉구했다. 하토야마 전 총리의 생각은 그러나 자민당 체제가 견고한 일본에서 소수파에 그칠 뿐이다.

-미·중 대립 격화, 중·러와 미·EU간 격돌로 국제정세가 재편되고 있다.

"동아시아는 물론 세계가 미중 대립의 한복판에 서있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러시아를 편드는 중국이 서방세계와 일전이라도 치를 듯한 위기다. 한일 양국이 ‘중러와 미·EU 가운데 어느 한편에 서야 한다’는 강요를 받는 건 국익 관점에선 최악이다. 국제사회의 긴장 억제와 관리에 한일의 공통 이익이 달려있다. 미중에 대해, 러시아와 EU에 대해 발언권을 가져야 한다. 전략적 의미에서 한일 관계 개선은 시급하고 필수 불가결이다. 북한에도 양국이 같은 말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미일 동맹 강화와 군사력 증강에 힘을 쓰려는 일본 내 움직임이 강해진다"고 우려를 표해봤다. 하토야마는 "중국의 위협이 잠복한 상황에서 대응 논리로 그럴 거다. 냉각된 한일 관계가 지속되면 자칫 미래에 한일 양국이 군사적으로도 긴장 국면이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진단했다. "이런 시기에 새 대통령이 한일 관계를 반전시켜 새로운 화해와 협력의 시대를 만들길 기대한다"고 덕담도 했다.

"두어달 전, 만난 일본 주요 신문의 특파원이 ‘한일 관계는 북한이 핵실험을 하면 바로 좋아질 것’이라고 죠크를 하더라"는 말을 건네봤다. 그러자 그는 심각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그런 농담은 북한 리스크와 동북아의 위험한 정세를 반영하는 것이긴 하지만, 아무리 농담이라도 그런 말은 하지 않는 게 좋다"고 했다.

부인 미유키 여사는 9일 오전 배우 이서진의 모친 집을 방문해 식사를 함께 했다. 그 자리에는 이서진도 와서 광팬인 미유키 여사를 위해 팬서비스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하토야마와 미유키, 두 사람의 러브 스토리는 일본 열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배석한 하토야마의 비서실장(재선 의원)은 "주간지에도 나왔다"며 미소지었다.

다카라즈카 가극단 배우 출신인 미유키는 무용을 공부하러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갔다. 1975년 스탠퍼드 공학박사 하토야마와 극적으로 결혼에 골인했다. 하토야마보다 3살 연상인 미유키는 연예인답게 쾌활한 편이다. 하토야마는 모범생 스타일이다. 하토야마의 모친이 둘의 혼사를 위해 미유키 전 남편에게 무릎꿇고 죄송하다는 사죄까지 했다고 한다.

 

#하토야마 유키오

하토아먀 전 일본 총리.
하토아먀 전 일본 총리.

전후 단독으로 첫 정권교체를 이끈 정치인으로 과거사 문제 해결에 진정성을 보인 지한파. 1947년 도쿄에서 정치 명문가의 후예로 태어났다. 도쿄대 공학부를 졸업하고 미국 스탠퍼드대 박사가 됐다.

1984년 자민당 소속으로 정계에 입문했으나 1993년 탈당 후 민주당을 결성했다. 2009년 8월 총선 승리로 최초의 민주당 출신 총리에 올랐다. 오키나와 미군기지 이전 논란 등으로 비판받다 이듬해 총리에서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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