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8일 만에 광주를 찾아 5·18 민주화운동 정신을 "국민 통합의 주춧돌"이라고 선언했다. 우파 정부 최초로 국립 5·18 민주묘지 입구인 ‘민주의 문’을 지나 200m를 걸어 들어갔으며, 수십 년간 우리 사회에 생채기를 냈던 논란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었다.

윤 대통령은 18일 오전 대통령실 참모진과 장관, 집권 여당인 국민의힘 국회의원 전원과 함께 제42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했다. 이날 윤 대통령의 기념식 참석은 불과 수년 전만 해도 5·18 민주화를 둘러싼 치열한 대립이 있어 왔지만 국민 단결을 위해 ‘광주의 눈물’을 닦는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또 우파정권 최초이자 유례없는 정부 여당의 대규모 참석으로 진영 간 오랜 갈등에 종지부를 찍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윤 대통령은 이날 박해숙 5·18 유족회장, 황일봉 5·18 부상자회장, 임종수 5·18 공로자회장 등 유족 및 학생들과 만나 추모탑으로 향했다. 지난해 11월 유족들의 반발로 민주묘지 추모탑에 헌화하지 못하고 묵념으로 끝낸 ‘반쪽 참배’ 때와는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다. 윤 대통령은 방명록에 "오월의 정신이 우리 국민을 단결하게 하고 위기와 도전에서 우리를 지켜줄 것입니다"라고 썼다.

윤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5·18민주화운동의 정신이야말로 우리 모두가 공유해야 할 보편적 가치이며 이를 통해 국민통합을 이뤄나가겠다고 강조했다. 특히 오월의 정신을 자유민주주의 헌법 정신 그 자체라고 역설했다.

윤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는 우리 국민을 하나로 묶는 통합의 철학"이라며 "그러므로 자유민주주의를 피로써 지켜낸 오월의 정신은 바로 국민 통합의 주춧돌"이라고 말했다.

이어 "오월이 품은 정의와 진실의 힘이 시대를 넘어 영원히 빛날 수 있도록 우리 함께 노력하자"며 "오월의 정신이 우리 국민을 단결하게 하고 위기와 도전에서 우리를 지켜줄 것이라고 저는 확신한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또 이날 기념사에서 사전 배포된 원고에 없던 "자유와 정의, 그리고 진실을 사랑하는 우리 대한민국 국민 모두는 광주 시민입니다"라는 말로 기념사를 마무리했다. 이는 1963년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이 동서 냉전의 상징인 베를린 시청 앞에서 "모든 자유인들은 그들이 어디에 살든지 베를린의 시민입니다. 나는 베를린 시민입니다(Ich bin ein Berliner)"라며 용기를 줬던 연설에서 모티브를 따온 것으로 국민 통합을 다시 한번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윤 대통령은 이번 기념사에서 국정운영의 핵심 가치로 내세웠던 ‘자유’를 상기시키며 자유을 향한 시민 저항의 상징인 5·18민주화운동의 정신을 거듭 강조했다. 특히 취임사에 빠졌던 ‘통합’에 대한 강력한 메시지를 기념사에 강조하면서 이를 둘러싼 논란도 잠재운 것으로 풀이된다.

윤 대통령은 "우리 모두가 자유와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당당하게 누릴 수 있어야 한다"며 "그 누구의 자유와 인권이 침해되는 것도 방치돼서는 안 된다. 우리 모두 함께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윤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당선인 시절부터 줄곧 외쳤던 ‘호남의 발전’을 이뤄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이제 광주와 호남이 자유민주주의와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 위에 담대한 경제적 성취를 꽃피워야 한다"며 "AI(인공지능)와 첨단 기술기반의 산업 고도화를 이루고 힘차게 도약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윤 대통령과 여당 의원들은 참석자들과 손을 잡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했다. 이는 5·18 민주화운동을 두고 진영 간 정치적 대립이 난무했던 시대를 넘어 새로운 역사의 출발을 알렸다. 국민의힘도 5·18 기념식에 적극 참가하며 참회와 협치로 불가역적인 역사를 만들어가겠다고 다짐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이날 기념식 참석 이후 밝힌 소감대로 "절대 퇴행하지 않는 불가역적인 변화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이날 윤 대통령은 기념사를 직접 쓴 후 퇴고를 반복한 것으로 알려졌다. 광주로 향하는 KTX 특별열차에서도 기념사를 살피며 수차례 고쳐 썼다고 대통령실은 전했다. 국민의힘은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위해 참석 의원들에게 악보도 배포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