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6월 4일은 텐안먼(天安門) 사태 33주년이다. 1989년 6월 4일 베이징대 학생들을 주축으로 텐안문 광장에서 민주화를 요구하자 중국 당국이 무력으로 진압한 사건이다. 당시 진압용 탱크 앞을 홀몸으로 버티며 저항한 사진과 동영상이 유명하다.

중국 당국은 텐안먼 사태 기념일이 오면 바짝 긴장한다. 이유가 있다. 제1차 텐안먼 사태는 1976년 4월 5일에 있었다. 당시 마오쩌둥(毛澤東) 체제 말기에 사망한 저우언라이(周恩來)를 추모하기 위해 모인 군중들이 테안먼 광장에서 소요를 일으켰다. 이 사건으로 덩샤오핑(鄧小平)이 실각하고 화궈평(華國鋒)이 총리가 됐다. 89년 제2차 텐안먼 사태 때는 자오쯔양(趙紫陽) 당 총서기가 실각하고, 장쩌민(江澤民)이 총서기로 선출됐다. 두 차례의 텐안먼 사태가 중국공산당 권력을 바꾼 것이다.

89년 텐안먼 사태 때 중국 당국은 집회 해산 요구에 불응한 군중을 상대로 전차·장갑차를 동원해 최루가스를 살포하고 실탄을 쏘았다. 수천 명의 사상자가 나왔다. 때마침 소련공산당 고르바초프 총서기가 중국을 방문 중이었기 때문에, 이를 취재하던 각국의 기자들이 텐안먼 유혈사태를 TV로 생중계했다. 전 세계가 충격을 받았다. 이 때문에 ‘텐안먼 사태’라고 하면 89년 제2차 텐안먼 사태를 지칭한다.

베이징대 학생들은 매년 6월 4일이 가까워 오면 은밀히 집회 준비를 한다. 공안당국은 감시·통제, 색출에 나선다. 지난 17일 베이징대 학생들이 교내 코로나 방역 정책에 항의하며 한밤중 시위를 벌였다. 당국이 기숙사 주변에 울타리를 세워 출입을 봉쇄조치를 강화하자 시위에 나선 것. 학교 측은 학생들을 기숙사 바깥으로 나갈 수 있게 허용했지만, 한밤중 시위가 외부에 알려질까 휴대폰 촬영을 극구 통제했다.

올해 텐안먼 사태 33주년이 특히 주목되는 이유는 2014년 이후 홍콩 민주화 시위의 영향과 우크라이나 전쟁 탓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전 세계가 ‘자유냐, 독재냐’로 확연히 갈라지고 있다. 바이든 미 대통령은 지난 3월 폴란드-우크라이나 접경지역을 방문,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텐안먼 사태에 비유한 바 있다. 텐안문 사태 33주년을 맞아 세계의 시선이 베이징을 향하고 있다.

저작권자 © 자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