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에게 받은 반도체 포토마스크를 살펴보고 있다. 반도체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이 장관은 이날 ‘반도체 이해 및 전략적 가치’를 주제로 강연을 했다. /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에게 받은 반도체 포토마스크를 살펴보고 있다. 반도체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이 장관은 이날 ‘반도체 이해 및 전략적 가치’를 주제로 강연을 했다. /대통령실

전 세계적 반도체 공급난 심화로 반도체가 새로운 국가전략자원으로 떠오른 가운데 국내 기업들이 전문인력 부족에 발목이 잡혀 기술패권 경쟁에서 밀릴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대학이 양성한 인력의 수와 역량이 기업의 요구를 크게 밑도는 불균형이 수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탓이다. 이에 정부가 윤석열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에 따라 만성화된 인력난을 해소할 특단의 대책 마련에 나서면서 기업들의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12일 한국반도체산업협회에 따르면 국내 반도체 업계가 일선 생산라인부터 연구개발에 이르기까지 전 분야에 걸쳐 매년 3000여명에 이르는 인력 부족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도체 산업의 빠른 성장에 따른 공장 신·증설로 인력 수요가 급증했지만 반도체 직종에 대한 대학 내 인기는 오히려 후퇴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전자공학과를 포함한 국내 4년제 대학의 반도체 관련학과 선발인원은 연간 6500여명 수준이다. 하지만 한해 배출되는 반도체 전공자는 전문대·대학원을 더해 교육부 추산 2000여명에 불과하다. 빅테크 등 정보기술(IT) 업계의 처우가 대기업을 능가하면서 학습량이 많은 반도체 전공이 기피되고 있다는 게 학계의 분석이다. 대다수 반도체 공장이 지방에 위치하고 3교대 근무가 기본인 점도 MZ세대 취업준비생들이 달가워하지 않는 요인으로 꼽힌다.

올해만 삼성전자 5000명, SK하이닉스 1000명 등 1만여명의 인력이 필요한 반도체 업계는 시름이 깊을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가 연세대·카이스트·포스텍·성균관대, SK하이닉스가 고려대·서강대·한양대 등과 자사 취업을 보장한 반도체 계약학과 개설에 힘을 쏟는 이유다.

반도체 전공 기피는 ‘대학원 진학 감소→우수 교수진 부족→인재 역량 저하’라는 악순환을 이끈다는 점에서도 심각성을 더한다. 전체 수출액 중 반도체 비중이 20%나 되는 우리나라가 꼭 해결해야 할 큰 숙제가 아닐 수 없다. 박재근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장은 "지난해 반도체 업계가 채용한 대졸 신입사원 중 반도체 전공자는 20% 미만"이라며 "인력난이 지속되면 기술 초격차는커녕 반도체 강국의 위상이 무너질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다행스런 사실은 윤석열 정부가 이 문제를 반드시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연일 피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교육부·산업통상자원부·기획재정부 등 5개 부처가 원팀을 꾸려 반도체 핵심 인재 양성 방안 마련에 착수한 상태다. 윤 대통령도 취임 직후 반도체 인력난 해소를 강력히 주문한데 이어 지난 7일 국무회의에서 반도체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에게 ‘반도체 특강’을 열도록 했을 만큼 높은 관심을 쏟고 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 이창양 산업부 장관 등이 최근 SK하이닉스·서울대 반도체 공동연구소·카이스트 등을 잇달아 찾아 반도체 인력과 관련한 간담회를 가진 배경이다.

한덕수 국무총리 등이 언급한 정부 대책의 핵심은 반도체 관련학과의 획기적 정원 확대다. 강폭을 넓혀 많은 물이 흐르도록 하면 바다에 더 많은 물이 유입되는 원리다. 이를 위해 정부는 ‘수도권정비계획법’의 손질도 검토 중이다. 수도권 인구집중을 막고자 1982년 제정된 이 법에서 대학을 인구집중유발시설로 규정해 입학정원 총량을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산업협회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가 반도체 인력난 해소에 실패한 것도 수도권정비계획법 때문이었다"며 "윤 정부가 문제의 본질을 정확히 본 것"이라고 기대감을 전했다.

다만 법 개정을 통한 정원 확대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한가지 걸림돌을 넘어서야 한다. 여소야대의 상황에서 예상되는 야당의 몽니가 그것이다. 여당의 한 인사는 "정부는 수도권 대학과 지방대의 비등한 정원 증원을 추진할 방침이지만 유명대학에 인재가 몰려 지방대 공동화를 부추길 수 있다는 일각의 우려가 있다"며 "야당이 이를 걸고넘어져 법 개정을 막는다면 지난한 싸움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에 정부는 반도체 인력난 해소의 시급성과 필요성을 감안해 법 개정 없이 관계부처 간의 협의로 정원을 늘릴 수 있는 B안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학 입학정원 총량 자체를 확대하는 방안, 현행 11만7000명의 입학정원 총량 중 남아있는 8000명의 여유분을 반도체 관련학과에 적극 배당하는 방안 등이 유력하게 오르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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