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한국은행에서 이상형 부총재보가 금융안정보고서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다. /연합
22일 한국은행에서 이상형 부총재보가 금융안정보고서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다. /연합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한번에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올리는 자이언트스텝을 밟을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한국은행도 빅스텝 단행 여부를 선택해야 할 상황에 맞닥뜨리게 됐다.

이미 시장의 관심은 7월 13일로 예정된 금융통화위원회의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에서 기준금리를 올릴지 말지가 아니라 0.5%포인트 인상할지 말지로 옮겨간 상태다.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빅스텝에 나선 적이 없는 한국은행으로서는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무엇보다 우려되는 것은 경기둔화 가능성이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17일 발간한 ‘최근 경제동향 6월호’에서 이를 공식으로 언급했다. 대외여건 악화로 높은 물가 상승세가 지속되는 가운데 투자 부진 및 수출 회복세 약화로 경기둔화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앞서 기획재정부는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치를 기존 3.1%에서 2.6%로 하향 조정했다.

코로나19 이후 급격히 늘어난 가계부채도 문제다. 올해 1분기 기준 가계부채 규모는 1860조원에 달한다. 지난해 8월부터 이번 달까지 기준금리가 5차례에 걸쳐 1.25%포인트 급등하면서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8%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한국은행이 올해 연말까지 기준금리를 1%포인트 올릴 경우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8%에 진입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이럴 경우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4년 만에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하게 된다.

한국은행의 추산에 따르면 기준금리가 0.25%포인트 오를 때마다 가계대출 이자부담은 연간 3조3000억원씩 늘어난다. 한국은행이 현재 연 1.75%인 기준금리를 올해 연말까지 2.75%로 올리면 대출자 1인당 이자부담은 64만원 넘게 추가된다.

한국은행이 다음달 0.5%포인트 기준금리를 올리면 당장 가계대출 이자부담은 연간 6조6000억원 늘어난다. 특히 빅스텝으로 기업 대출금리도 급격히 상승한다면 경영의 어려움이 가중돼 실물경제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 국내 500대 기업 중 273개 제조업 기업을 대상으로 올 1분기 기준 차입금 규모를 조사한 결과 총차입금은 840조8481억원이고, 이 중 1년 이내에 상환해야 하는 차입금은 293조6929억원에 달한다.

그럼에도 한국은행이 빅스텝을 염두에 둘 수밖에 없는 것은 치솟는 물가 때문이다. 지난 5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5.4%로 2008년 8월의 5.6% 이후 가장 높았다. 월별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2000년 이후 처음으로 6%대에 진입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실제 한국은행은 "6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석유류·가공식품과 외식물가 오름폭이 확대되면서 5월보다 높아질 것"이라며 "하반기에도 원유·곡물 등을 중심으로 해외 공급요인의 영향이 이어지면서 상반기보다 오름폭이 확대될 전망"이라고 밝혔다.

기대인플레이션 역시 걸림돌이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2년 5월 소비자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5월 기대인플레이션율은 전월보다 0.2%포인트 오른 3.3%로 집계됐다. 이는 2012년 10월에 3.3%를 기록한 이후 9년 6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물가가 더 오를 것이라는 인식이 퍼지면 경제주체들은 임금 인상을 요구하고, 비용 부담을 제품 가격에 전가하면서 2차 파급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한미 간 금리역전도 감안해야 한다. 미국의 현행 기준금리 상단은 우리와 같은 1.75%다. 미 연준이 다음달 0.75%포인트 기준금리를 올리면 2.25~2.50%로 높아진다. 만일 한국은행이 7월 기준금리를 0.25%포인트만 올려 2.0%가 되면 금리가 역전된다. 금리역전이 발생하면 금융시장에 긴축발작을 일으켜 외국인 투자자금이 급격히 유출될 수 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21일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회의에서 올해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008년 수준인 4.7%를 넘어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한국은행은 지난달 26일 수정 경제전망을 발표하면서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기존 3.1%에서 4.5%로 대폭 올렸다. 그런데 한 달도 되지 않아 또다시 상향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다.

특히 이 총재는 가파른 물가 상승 추세가 바뀔 때까지 물가 중심의 통화정책을 운영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를 두고 시장에서는 한국은행이 빅스텝 단행을 위한 ‘명분 쌓기’에 나선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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