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 김효근, 이대 교수로 일하며 작품활동…'첫사랑' 9월 초연
"예술·대중성 갖춘 아트팝...타이틀곡, 아내 위해 만든 프러포즈곡"

뮤지컬 '첫사랑'의 김효근 작곡가(오른쪽)과 이진욱 음악감독이 지난 28일 서울 마포구 마포아트센터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
뮤지컬 '첫사랑'의 김효근 작곡가(오른쪽)과 이진욱 음악감독이 지난 28일 서울 마포구 마포아트센터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화내지 마…'

푸시킨의 널리 알려진 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에 음을 붙인 김효근의 가곡은 장장 35년의 고민 끝에 탄생했다.

"가사 없이 선율만 들어도 시어의 정서가 그대로 느껴질 때까지 계속 작업해요.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는 그 작업을 가장 길게 한 작품이었죠."

'눈', '내 영혼 바람 되어', '첫사랑' 등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아 온 김효근의 가곡들이 뮤지컬 노래로 무대에 오른다.

오는 9월 2일부터 4일까지 서울 마포아트센터 아트홀맥에서 초연하는 뮤지컬 '첫사랑'은 작곡가 김효근의 대표 가곡 13곡으로 만든 창작 뮤지컬이다.

마포문화재단이 처음으로 제작하는 뮤지컬로, '라흐마니노프', '안나, 차이코프스키' 등으로 호흡을 맞춰온 극작가 겸 연출가 오세혁과 음악감독 이진욱이 김효근 가곡의 감성을 뮤지컬 무대로 옮기는 데 함께 한다.

가사의 정서를 음악으로 그려내는 데 공을 많이 들이는 김효근의 작품들은 마치 처음부터 뮤지컬을 위해 만들어진 듯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들린다.

지난 28일 마포아트센터에서 만난 음악감독 이진욱은 "선생님의 가곡은 전주만 들어도 벌써 장면이 그려지고 아이디어가 저절로 떠오른다"며 "편곡을 맡고 있지만 내가 할 일은 많지 않다"고 말했다.

"억지로 다른 선율을 붙일 필요 없이 선생님의 음악 안에서 찾아지는 게 정말 많아요. 사람들 감정에 잘 녹아드는 음악이라 들을수록 좋다는 생각이 들죠."

이번 뮤지컬에서 예술감독을 맡은 김효근은 뮤지컬 작업을 하게 된 것이 운명적으로 느껴진다고 했다.

"제가 지난 15년간 시도해 온 '아트팝 가곡'은 가곡이 기존에 가진 예술성에 대중성까지 갖추는 것을 추구했어요. 그렇게 만들어진 노래들이 자연스럽게 사랑받는 뮤지컬 노래들의 특징과 비슷해진 것 같아요."

10년 전 두 번째 앨범 '사랑해'를 발매했을 때도 그의 가곡들은 '뮤지컬 넘버로 만들어져도 좋겠다'는 평을 많이 들었다. 김효근의 노래들이 널리 사랑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경영학 교수기도 하다는 특별한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서울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미국 피츠버그대학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은 김효근은 현재 이화여대 경영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 곡을 탄생시킬 때 저는 '제품 출시 기준'을 적용해요. 이 제품, 즉 이 노래가 시장에 나가 손님들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겠다는 기준을 충족시켜야 노래를 내요. 가장 중요한 기준은 가사 없이 선율만으로도 그 시의 내용이 떠오를 정도로 음악과 시가 딱 붙어야 한다는 거예요."

 

김효근은 데뷔작 '눈'이 1981년 제1회 MBC대학가곡제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작곡가로서 이름을 세상에 알리기 시작했다. 이번 뮤지컬 제목이기도 한 노래 '첫사랑' 역시 20대 때 지금의 아내를 위해 만든 프러포즈 곡이다.

모두 30여 년 전에 만들어진 노래들이지만 뮤지컬 '첫사랑'의 제작진은 이 노래들을 통해 세대를 넘어선 교감을 시도한다.

"'첫사랑'이 작곡됐던 시기는 고백에서 첫 '뽀뽀'까지 1년 이상 걸리던 시절이에요. 그때의 감성이 후배분들께 잘 전달될까 걱정했는데 공감해줘서 안심했죠."

옆에 있던 이진욱 음악감독은 "선생님의 얘기를 들으면 안 풀리던 것 잘 풀린다"고 거들었다.

뮤지컬에 들어가는 노래 중 '가장 아름다운 노래'의 합창 연습이 잘 풀리지 않았을 때 김효근은 담담히 노래에 담긴 자신의 얘기를 출연진과 제작진에게 들려줬다고 한다.

"이 노래는 제가 젊은 시절에 성공하기 전 뭐든 시도만 하면 부딪히고 잘 안되던 상황을 담은 노래에요. '지금 여기 온 배우들 모두 뮤지컬 배우가 되기로 했을 때 주변에서 박수만 받고 온 분들은 많이 없을 거다. 이 노래는 바로 배우들 본인의 노래'라고 말씀드렸죠. 그러자 노래하는 에너지가 달라지더라고요."

"최근 한국 뮤지컬 시장에는 '단짠단짠', 즉 달고 짠 음식처럼 자극적이고 강렬한 작품들이 대부분이었다"는 김효근은 "뮤지컬 '첫사랑'은 심심하지만 깊은 맛을 내는 평양냉면처럼 자극보다는 감동이 삶에 녹아드는 뮤지컬"이라고 소개했다.

뮤지컬 작업을 오래 해 온 이진욱 음악감독 역시 "일반 제작사에서는 만나기 힘든 소재의 뮤지컬"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누가 언제 만든 음악이든 그 노래와 이야기가 '진짜'라고 느껴지는 순간 세대를 가리지 않고 모두에게 가 닿는 것 같아요. 인생의 무거움을 조금이라도 힐링할 수 있는 판타지를 무대 위에서 만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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