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달 대중(對中) 무역수지는 5억7천만달러 적자로, 3개월 연속 적자가 지속된 것은 1992년 10월 이후 처음이다.
1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달 대중(對中) 무역수지는 5억7천만달러 적자로, 3개월 연속 적자가 지속된 것은 1992년 10월 이후 처음이다.

한국 경제의 방파제 역할을 해온 무역수지가 4개월 연속 적자의 수렁에 빠졌다. 이는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4년 만의 일이다.

이 같은 추세라면 2000년대 기준 최대 무역적자 연속행진 기록을 깨뜨릴 수 있다. 지난 2007년 12월부터 2008년 4월까지 기록한 5개월 연속 무역적자가 2000년대의 최대 연속 기록이다.

올들어 지난 7월까지 무역적자는 총 150억2500만 달러에 달한다. 이에 따라 연간 기준으로도 역대 최대 무역적자를 기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지금까지 기록한 역대 최대 연간 무역적자는 1996년의 206억2000만 달러다. 당시 무역적자 상황에서도 일일 환율 변동폭을 10% 내외로 유지하는 시장평균환율제도를 위해 외화를 쏟아부었고, 결국 이듬해에는 국제통화기금(IMF)에 외화를 빌리는 상황까지 처하게 됐다.

정부는 지난달 46억7000만 달러의 무역적자를 기록한 것에 대해 에너지와 원자재 가격 급등을 요인으로 꼽았다. 하지만 주요 에너지와 원자재 가격이 내림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최근 가파른 원화약세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도 연속적인 무역적자 원인을 좀 더 근본적으로 들여다봐야 할 이유로 부상하고 있다. 원화가치는 올들어 지난 7월까지 달러 대비 9.2% 하락했다. 통상 원화가치 하락은 수출가를 낮추고 수입가를 높여 무역수지를 개선하는데 일조한다. 그럼에도 1~7월 무역적자는 벌써 2008년 한해 무역적자인 132억7000만 달러를 넘어섰다.

이 때문에 지금은 우리나라 무역에 구조적 변화를 야기한 원인, 다시 말해 근본적인 수출 경쟁력 약화 요인을 점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중 하나가 최대 교역국인 중국과의 무역에서 3개월 연속 적자를 낸 것이다. 3개월 연속 대중 무역적자는 중국과의 무역통계를 내기 시작한 2000년 이후 한 번도 없던 일이다.

정부는 중국의 경기둔화와 코로나19 차단을 위한 도시 봉쇄 여파에 따른 일시적 현상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수출의 25%를 차지하는 중국과의 무역이 흔들리고 있는 것은 구조적 변화도 한몫 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우리나라의 10대 수출 품목을 기준으로 지난달 1~25일 대중 수출액 증감률을 보면 반도체만 10.9% 증가했을 뿐 나머지 품목들은 정체 또는 감소했다. 반면 대중 수입은 섬유(25.6%), 반도체(25.1%), 일반기계(14.4%), 컴퓨터(6.4%) 등을 중심으로 크게 늘었다. 섬유를 제외하면 첨단 기술력이 필요한 품목들이다.

이로 인해 일각에서는 우리나라의 대중 무역이 구조적 적자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중국의 기술 경쟁력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인데, 반도체를 제외한 상당수 첨단산업에서는 중국이 이미 우리나라를 위협하거나 추월하고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산업연구원은 지난달 27일 내놓은 ‘디스플레이산업의 가치사슬별 경쟁력 진단과 정책방향’ 보고서를 통해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분야에서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지만 중국의 적극적인 투자로 초격차 유지가 위협받고 있다고 진단했다.

중국의 기술 경쟁력은 반도체를 비롯해 전기자동차·배터리·디스플레이 등 우리나라의 미래 주력산업을 위협할 정도로 성장했다는 관측도 있다. 중국 정부는 오는 2025년까지 반도체 자급률을 70%까지 높인다는 목표를 세웠는데, 현재로서는 목표 달성이 무리라는 진단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중국 반도체 굴기 프로젝트를 떠받치는 60조원 규모의 국가 펀드인 ‘대기금’ 조성 이후 8년 간 이루어낸 성과도 상당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실제 파운드리 분야에서 중국 정부가 전폭적으로 밀어주는 SMIC(中芯國際)는 지난해 첨단 반도체의 관문으로 여겨지는 14㎚(나노미터=10억분의 1m) 공정 제품의 양산을 시작했다. 미국의 제재를 우려해 공표만 하지 않고 있을 뿐 이미 7㎚ 공정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는 관측도 있다.

세계무역기구(WTO) 중심의 자유무역주의 퇴조와 동맹국 간의 공급망 구축 전략인 프렌드 쇼어링이 맞물리면서 우리나라의 수출 하락세가 장기화될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중국의 기술 경쟁력 강화는 대중 무역적자를 고착화시키는 위험 요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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