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 외교부 장관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1박2일 양자회담을 가졌다. 한국 외교의 중요한 자리였다. 우리 입장에선 지난 5년간 문재인 정권이 망가뜨린 한·중 관계를 정상으로 돌려놓는 회담이었다. 문 정권의 돌이킬 수 없는 한·중 관계 실패가 주권 국가간 평등한 외교관계를 상하(上下) 관계로 만든 것이다. 우리 스스로 중국을 ‘높은 봉우리’로, ‘대한민국을 소국(小國)’으로 규정했으니, 문재인 전 대통령은 거의 ‘이완용급’에 비교할 ‘매국노’나 다름없었다.

이번 박진-왕이 양자회담은 상하 관계를 평등 관계로 회복하는 첫 만남이었다. 특히 한중수교 30주년을 맞아 양국의 현안과 난제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새로운 한중관계의 초석을 놓는 자리였다.

왕이 부장은 모두(冒頭)발언에서 "한국과 중국이 원활한 공급망과 산업망을 수호하고, 서로의 내정에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한국을 중국 편으로 당기면서 동시에 미국 주도의 ‘반도체 공급망 협의체(‘칩4’·한국 미국 일본 대만)를 중국에 대한 ‘내정 간섭’으로 공격한 것이다. 이같은 말(言)의 테크닉은 중국의 ‘자기중심 외교’의 주요 특징이다. 중국은 스스로 만들어놓은 틀(frame)에 상대방을 몰아넣은 다음,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것을 먼저 추구하고 다른 것은 뒤에 가서 보자’(求同存異)는 식의 외교책략을 구사해왔다. 지난 30년간 우리뿐 아니라 여러 나라가 중국의 이 책략에 당했다.

현재 우리로선 ‘칩4 동맹’이 중국에 대해 우위에 있는 외교 어젠다(agenda)다. 중국이 수세에 있다. 박진 장관은 왕이 부장에게 "우리가 칩4에 참여하는 것이 중국을 배제하려는 의도가 아니다"며 "향후 칩4 가입국이 늘어날 수 있으며, 한국이 초기 단계부터 적극 참여해 중국이 우려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도록 ‘룰 메이커’(rule maker) 역할을 하겠다"고 응수했다. 우리의 전략적 가치를 높이면서 동시에 중국의 협조를 끌어내는 화법이다. 이같은 화법이 각국이 추구하는 ‘국익 중심의 표준 화법’이라 할 수 있다.

박진 장관은 외교가에서 잔뼈가 굵은 외교통이다. 한중 관계는 마땅히 재설정돼야 한다. 우리 스스로 실천함으로써 새 원칙을 만들어가는 이신작칙(以身作則)의 자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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