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중국은 1992년 8월 24일 수교관계를 맺었다. 24일은 한중 수교 30주년이다. 한국과 중국은 비밀리에 수교 작업을 벌여야 했다. 북한이라는 존재 때문이었다. 애초 계획은 1991년 8월 양국이 공식 외교관계를 체결하기로 했다. 그러나 당시 물밑 한중 수교 작업을 눈치 챈 김일성이 등소평에게 통사정을 했다. 중국은 어쩔 수 없이 1년을 연기하여 이듬해인 1992년 8월 한중은 수교에 성공했다.

한중 양국 관계는 경제 분야에서 급속도로 발전했다. 양국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한국과 중국은 정경 분리 원칙을 준수했다. 당시 중국은 구동존이(求同存異·공통점은 추구하고 차이점은 뒤로 미룬다), 도광양회(韜光養晦·강대국이 될 때까지 힘을 감춘다)를 추구했다. 양국이 공동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실용주의적 접근을 한 것이다. 미국도 중국을 WTO(세계무역기구) 체제에 끌어들였다. 미국 주도의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중국의 경제도 급성장했다.

하지만 시진핑 체제가 들어서면서부터 중국은 ‘도광양회’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중화패권주의로 발걸음을 옮겨갔다. 중국의 역사왜곡 프로젝트인 동북공정이 한중 양국관계를 망가뜨리기 시작했다. 결정적으로 2016년 사드 갈등으로 인해 양국관계는 급격히 나빠졌다.

2021년 국내 여론조사에서 ‘중국은 한국에 위협이 된다’는 응답 비율이 69.2%에 달했다. 중국의 한국에 대한 인식도 나빠졌다. 연상모 성신여대 동아시아연구소 연구위원의 조사에 따르면, 2017년 여론조사에서 중국인들의 한국에 대한 이미지는 3.40점(10점 만점)으로 조사 8개국 중 최저로 나타났다. 최근 중국의 한 여론조사에서 중국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국가 순위로 한국은 북한(5.2%)보다 낮은 4.6%. 조사대상 11개국 가운데 10위였다. 일대일로(一帶一路) 등 중화패권주의로 인해 중국의 이미지가 많이 나빠졌지만 한중 관계는 나빠지는 속도가 빠른 편이다.

한국의 대중(對中)관계도 새로운 프레임이 요구되고 있다.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안미경중(安美經中) 노선을 폐기하고, 등가적(等價的) 실용주의 노선을 추구할 때가 된 것이다. 이를 위해 미국은 물론 일본·유럽·호주 등과의 긴밀한 협력이 더욱 중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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