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직속 ‘진실화해위원회’는 6·25전쟁 당시 북한군에 희생된 전남 영암 주민 133명에 대해 우리 정부도 책임이 있다며 23일 진실 규명과 유가족 지원을 권고했다. 만시지탄(晩時之歎)이지만 진실화해위의 이같은 판단은 옳다.

서울신학대 박명수 교수팀의 연구에 따르면, 6·25전쟁 당시 북한군이 퇴각하는 과정에서 학살한 기독교인은 1026명, 천주교인은 119명이다. 도합 1145명. 특히 전남북·충남 지역에서 피해가 컸다.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 직후인 1950년 9월 26일 북한 당국은 "반동 세력 제거 후 퇴각하라"는 명령을 내렸는데, 이 시기에 한 달여간 전국적으로 피비린내 나는 학살이 이뤄진 것이다. 북한군은 전북 정읍교회에서 장로와 우익 인사들 167명을 불태워 죽였고, 충남 논산 논산 병촌교회에서는 신자와 가족 66명이 삽·몽둥이·죽창 등으로 살해됐다.

이번에 진실화해위원회가 국가책임을 인정한 전남 영암 염산교회 77명과 구림교회·매월교회 신자 등은 북한군이 이들의 목에 맷돌을 달아 바다에 빠뜨려 수장하는 등 끔찍한 ‘킬링필드’을 자행했다. 북한군의 기독교인에 대한 살해는 일시적·우발적 사건이 아니라 ‘계획된 집단학살’이었다는 점에서 반인도 범죄에 해당한다. 국제법에서는 반인도 범죄에 대해서는 공소시효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번에 진실화해위원회는 영암 학살 사건 피해자 133명에 대해 우리 정부가 책임이 있다며 진실 규명을 결정하고 유가족 지원을 권고한 것이다.

지금까지 진실화해위원회는 미군·국군에 의한 희생자와 주로 반(反)대한민국 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정부 보상을 권고해왔다. 하지만 이번에 북한군에 의한 기독교인 희생자들에 대한 조사와 국가책임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비로소 진실화해위원회의 활동 방향이 제대로 설정된 것으로 평가된다. 진실화해위원회 김광동 상임위원은 "지금까지 북한 책임이라는 이유로 배·보상에서 빠져 있었는데, 국가는 전쟁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해야 하고 보상의 책임이 당연히 있다"며 국가책임 인정 배경을 설명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오는 12월 9일까지 과거사 진실규명 추가 신청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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