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티 브라운의 사진작품 ‘외계인’. 인도 영화감독의 각본을 2006년 무대로 연출해 일부러 사진으로만 남겼다. 영화화되지 못한 각본 ‘외계인’이 미술작품으로 생명을 얻었다. /마티 브라운 웹사이트

독일 작가 마티 브라운(Matti Braun 54세)의 아시아 첫 개인전 ‘Ku Sol’이 열렸다(내달 23일까지 갤러리현대).

브라운은 인류가 오래 사용해 고전적 소재(유리·실크)를 활용해 이질적이면서도 우주적인 이미지를 구현했다. 이번 전시에서 실크 추상화 연작, 유리 조각품, 실험적으로 제작한 공연 사진 등 대표작 총 50여 점을 선보였다.

테이블에 놓인 색색깔의 유리알에 반질반질한 광택과 함께 감상자의 모습이 반사돼 맺힌다. 윤기 있는 실크에 염료를 먹인 추상화 작품엔 무지개인 듯 오로라인 듯 오묘한 빛의 파장이 담겼다. 핀란드어로 달을 뜻하는 단어 ‘kuu’와 라틴어로 태양을 가리키는 ‘sol’을 합쳐, 완전히 다른 두 존재를 빛이라는 공통점으로 묶어 동일선상에 올린 것이다.

인도 영화감독 사트야지트 레이의 공상과학(SF) 각본 ‘외계인’에서 큰 영감을 받은 뒤 인식과 초월적 존재에 대해 생각해 온 작가의 고민이 녹아 있다. 빛나는 유리구슬들이 마치 외계인의 눈동자를 연상케 한다. 실크에 입힌 색깔들 또한 초자연적인 강렬한 빛의 스펙트럼이나 우주망원경으로 엿본 풍경에 가깝다.

재료가 주는 역사성과 특징에도 주목했다. 브라운에 따르면 유리 조각품 모두 독일 남부에서 전통 유리공예 기법으로 만들어졌으며, 실크 작품은 인도네시아로부터 직물업자 지인을 통해 실크를 들여 와 작업했다. 실크란 어떤 ‘빛’을 만들어 낼 것인지가 중요하다. 색을 계속 더해 화면이 어두워지고 탁해지는 가운데, 그 밑에 ‘은은한 빛’(glow)이 남는다. ‘어둠 속에 익어가는 빛’인 셈이다.

영화화되지 못한 각본 ‘외계인’은 브라운에 의해 미술품으로서 영원한 생명을 얻었다. 그가 2006년 영국 런던에서 각본 줄거리를 무대에 옮겨 사진으로 남겼다. 공상과학(SF)영화의 고전 ‘E.T’(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1982)를 연상시키는 각본 ‘외계인’을 연극 무대처럼 연출해 사진을 찍어 둔 것이다. 일부러 동영상 기록물을 남기지 않았다고 한다. "미술가에겐 영상보다 사진이 더 시적(詩的)인 작업"이기 때문이다. 브라운은 "미술이란 무엇인가를 찾아가는 행위"라며, "이번 전시를 통해 관객들이 다양한 요소를 스스로 찾아내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달 21일부터 갤러리현대에서 열리고 있는 독일 미술가 마티 브라운의 아시아 첫 개인전. 유리와 실크를 소재로 한 작품들이다. /갤러리 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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