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고물가·고환율의 3고(高)로 TV·컴퓨터 등 전자제품의 판매가 크게 줄면서 전자제품에 들어가는 반도체 수요가 급감했다. 삼성전자 클린룸 반도체 생산현장. /삼성전자
고금리·고물가·고환율의 3고(高)로 TV·컴퓨터 등 전자제품의 판매가 크게 줄면서 전자제품에 들어가는 반도체 수요가 급감했다. 삼성전자 클린룸 반도체 생산현장. /삼성전자

글로벌 경기침체의 쓰나미가 국내 반도체 업계를 덮쳤다. 고금리·고물가·고환율의 3고(高)로 TV·컴퓨터 등 전자제품의 판매가 크게 줄면서 전자제품에 들어가는 반도체 수요가 급격히 떨어졌기 때문이다.

특히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쌓여만 가는 반도체 재고로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더구나 연말로 갈수록 ‘다운 사이클(장기 하락 추세)’이 본격화될 것이라는 전망까지 더해지면서 반도체 업계는 전전긍긍하고 있다. 3~4년 주기로 호황과 불황을 반복하는 반도체 시장에 혹독한 겨울이 찾아온 것이다.

실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재고 규모는 역대 최고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 6월 기준 삼성전자의 재고 자산은 21조5079억원이다. 지난해 말보다 30% 증가한 것이다. SK하이닉스의 재고 자산도 지난해 8조9166억원보다 33% 가까이 늘었다.

국내 반도체 업계의 발목을 잡고 있는 재고 문제는 지난 2020년 코로나19 사태 이후 노트북, 태블릿 등 비대면용 전자제품 수요가 폭발하자 반도체 업체들이 앞다퉈 생산을 늘린 탓이다. 더욱이 올해 들어 우크라이나 사태의 장기화와 중국 내 스마트폰 판매량 급감의 여파로 반도체 수요가 급격히 위축되면서 더욱 심화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재고 문제의 해결을 위해 주력 상품인 D램과 낸드플래시 가격을 최대 20~30%까지 낮췄다. 불황기에 재고가 늘면 기업의 현금흐름이 나빠지고 신규 투자가 위축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미지근하다. 지난달 30일 통계청이 발표한 8월 산업활동동향에 따르면 8월 국내 반도체 재고는 지난해보다 67% 증가했다.

반도체 재고가 쌓이면서 당초 시장에서 내놓은 실적 추정치(컨센서스)도 대폭 수정되고 있다. 지난달 30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3분기 매출 컨센서스는 지난 6월 말 82조8280억원보다 4조원가량 낮게 조정된 78조6621억원이다. SK하이닉스의 3분기 매출 컨센서스도 8월 말 추정치인 13조2713억원보다 낮은 12조2513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메모리 반도체 시장 1위를 달리고 있는 삼성전자는 지난달 열린 직원 간담회를 통해 올 하반기 매출 전망을 32% 낮춰 잡았다. 이는 지난 4월 국내 증권사들이 내놓은 전망치인 67조원에 훨씬 못 미치는 46조원에 그치는 것이다.

최근 D램과 낸드플래시의 가격이 급속도로 떨어지는 상황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어깨를 더욱 무겁게 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PC용 D램(DDR4 8Gb)의 가격은 지난달 기준 2.85달러, 낸드플래시(128Gb) 가격은 4.3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7월 대비 각각 30.5%, 10.6% 하락한 것이다.

업계에서는 연말께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크게 떨어질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국내 반도체 업계의 실적은 더욱 부진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대만의 반도체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4분기 D램·낸드플래시 가격이 최대 20%까지 하락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는 3분기 하락률 10~15%보다도 더 큰 것이다.

이처럼 반도체 시장이 다운 사이클에 접어들면서 국내 반도체 수출도 2개월 연속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달 국내 반도체 수출액은 114억9000만 달러를 기록,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7% 떨어졌다. 이는 지난 8월 107억8000만 달러로 -7.8%를 기록한데 이어 2개월 연속 감소한 것이다. 전자제품의 수요가 둔화되고 소비자들의 구매력이 저하된 데다 D램 가격 하락세와 낸드플래시의 공급과잉 현상이 지속된 탓이다.

메모리 반도체 중심의 국내 반도체 업계와는 달리 시스템 반도체에 주력하는 대만의 반도체 업계는 기록적인 호황을 맞으며 희비가 엇갈리는 모양새다. 특히 대만의 시스템 반도체 업체 TSMC는 지난 8월 매출이 70억 달러(약 10조원)에 달했다. 이는 지난해보다 약 60% 급증한 것이다. 주가도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연내 TSMC가 삼성전자와 인텔을 제치고 세계 반도체 시장 1위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국내 반도체 업계가 혹독한 겨울과 함께 시장 점유율에서도 위기를 맞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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