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에게 초점을 맞춘 Z세대 가수들의 노래가 K팝 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왼쪽부터 악동뮤지션의 이찬혁, (여자)아이들, 르세라핌. /연합

‘나 자신’에게 초점을 맞춘 Z세대 가수들의 노래가 K팝 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Z세대’, 1990년대 말~21세기 초 태어난 세대라 해서 알파벳 마지막 글자 Z로 지칭된다. 20대 중반~10대 초중반 인구를 말한다. 악동뮤지션 멤버로 활동해 온 싱어송라이터 이찬혁에겐 Z세대 특유의 감성이 가득하다. 자기자신을 찾으려는 뚜렷한 욕망과 그것을 향한 여정이 음악적으로 표현됐다. 활동한 지 8년, 지난달 낸 그의 첫 솔로 음반 ‘에러’(ERROR)에 호평이 쏟아지고 있다.

"아무도 모르게 꿈꿔왔네 거대한 성을. 나조차 스스로도 모르게 남몰래 견고하게 쌓아 올렸네 꿈의 성을" "늘 겸손하라 했지만 난 왕이 되고팠던 거야. 욕심이 없다 했지만 난 정복을 원했던 거야" "내 꿈의 성, 먼 훗날 그곳을 위해서라면 나 외로워서 메말라버려도 좋아" "옳지 옳지 착하지, 그것을 난 벗어야 했네, 날 강하게 가둔 액자에서." 이찬혁 신곡 ‘내 꿈의 성’ 가사엔 Z세대의 꿈과 그것을 대하는 태도가 잘 드러난다. 특이한 퍼포먼스 또한 눈길을 끈다. 이찬혁은 지난달 엠넷 음악방송 ‘엠카운트다운’에서 객석을 등지고 노래하는가 하면, SBS의 ‘인기가요’ 출연 시엔 무대 위에서 머리를 짧게 밀어버리기도 했다.

‘진정한 자기찾기’와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기’는 불가분의 관계다. (여자)아이들의 새 음반 ‘아이 러브’(I Love)에도 드러난다. 1998년생 전소연 작사·작곡의 ‘누드’(Nxde), 제목부터 예사롭지 않다. ‘You’(너·당신)의 줄임말 ‘u’ 대신, ‘의문’ ‘미지수’를 뜻하는 ‘x’를 썼다. 걸그룹 르세라핌은 미니 2집 수록곡 ‘노 셀레셜’(No Celestial)의 가사로 세상 소음으로부터 자기색깔을 지키고픈 이들 세대의 마음을 표현했다. "멋대로 던져대는 시끄러운 얘기들, 건질 게 없네 한 귀로 흘려, 소란한 세상 속에 내 목소린 볼륨 업."

전통적으로 대중음악이 추구하는 것은 ‘보편성’이지 ‘자아’가 아니었다. 10년 전 국내 음원차트 최상위권을 차지했던 아이돌 노래와 비교하면 더욱 두드러진다. 2012년 최고 흥행곡 중 하나인 씨스타의 ‘나혼자’ ‘러빙유’(Loving U), 2NE1의 ‘아이 러브 유’ 등은 모두 ‘사랑’ ‘연애’가 중심에 있다. 가장 보편적 소재였던 것이다. 누군가로 인한 설렘·외로움·슬픔, 개인적 체험에 기반한 노래라 해도 일반정서와 맞닿아 있어야 했다. 현재의 보편성은 ‘나’, ‘누가 뭐라든 나’인 셈이다.

전문가들 분석도 특별할 게 없다. "직접 음반 제작에 나선 아이돌그룹이 자신들 색깔에 맞춰 구체적 직설적으로 본인들만의 음악을 표현한다"(김도헌 대중음악평론가). "연애·결혼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자아실현이나 꿈, 내면의 안정을 추구하는 게 요즘 젊은이들의 경향"이며, "이런 흐름 속에 Z세대 아티스트들 역시 자신의 솔직하고 다양한 이야기에 집중하게 됐다"(정민재 대중음악평론가).

K팝의 새 트렌드에 팬들 반응은 고무적이다. 지난달 17일 음반 발매 일주일 만에 67만8천여장이 팔린 ‘아이 러브’가 현재까지 국내 음원차트 최상위권에 있다. 르세라핌의 미니 2집은 미국 빌보드 메인 앨범차트 ‘빌보드 200’ 14위를 기록했다. K팝 걸그룹 역사상 데뷔 후 가장 빠른 차트 진입이다. "자기 정체성을 드러낸 작품이 많아져 더 찾아 듣게 되는 듯하다"(24세 장미선), "오랜 걸그룹 팬이다. 요즘 노래는 무의식중에 파워워킹을 하게 만든다. 능동적인 삶을 살아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된다"(23세 서태란).

김도헌 평론가는 "창작자 제작자까지 겸한 아이돌이 존재하는 한 당연히 지속될 경향"이라고 내다본다. ‘스타 자신의 이야기가 작품에 반영되지 않는다’는 점이 그간 K팝 비판으로 제기돼곤 했다. ‘나’에 주목한 새로운 경향은 이어질 전망이다. K팝에 하나의 돌파구를 마련한 것일 수 있다. 얼마나 다채롭고 매력적으로 표현될 것인지가 과제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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