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근
박석근

여기, 호남이 고향인 한 젊은이가 있다. 1980년대 생인 그는 집안의 기대를 한 몸에 안고 서울 소재 유수의 대학에 입학했다. 대학에 입학한 후 그동안 억눌렸던 사회의식에 눈뜨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호남을 기반으로 한 정당을 지지했고, 좌파동아리 대학생진보연합에 가입했다. 선배들은 기회 있을 때마다 5·18과 세월호 침몰 영상을 보여주며 사회적 분노를 자극했다. 영상이 끝난 뒤에는 이 더러운 세상을 정화하는 데 기꺼이 함께하자고 말했다. 선배들은 김정은 연구 모임을 만들었고 반미시위를 주도했으며 주한미국대사관저와 용산 미군기지에 난입하는가 하면 자유를 찾아 귀순한 외교관 태영호 체포결사대를 만들었다.

그는 스스로 반골기질의 피가 흐른다고 생각했다. 언제부턴지 모르게 막연히 보수정당을 증오했다. 돌이켜보면 그것은 윗세대에 의해 세습된 감정이었다. 어려서부터 어른들로부터 보수정권을 혐오하는 말과 욕을 들으며 성장했고, 학교에서도 선생과 학생 할 것 없이 보수정권을 향한 쌍욕이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선과 악, 흑과 백의 이분법적 세계관이 형성됐다. 보수정당은 부자들과 강자를, 진보정당은 가난한 사람들과 약자를 대변한다고 믿었다.

그런 그가 이제 더 이상 좌파진보정당을 지지하지 않는다. 그동안 열심히 활동했던 동아리도 탈퇴했다. 그의 생각이 서서히 바뀌게 된 것은 다국적 햄버거 체인에서 알바를 하면서부터였다. 이 다국적 기업은 미제의 앞잡이이며 노동자를 착취하는 악덕기업이고 부르주아의 상징이라고 여겼지만 당장 알바자리가 필요했고, 무엇보다 햄버거로 끼니를 해결할 수 있었다.

알바를 하는 동안 그의 의식에 지진이 일어났다. 노동착취를 당할 거라는 예상과 달리 회사는 휴식시간, 주휴수당, 추가근무수당을 칼같이 챙겨주었다. 근무 스케줄도 근로자 입장을 충분히 반영해 짜주었다. 알바들을 존중해주고 시스템도 민주적이었다. 직원을 기계부품처럼 착취하고 소모한 뒤 버린다는 말은 헛소문이었다. 알바를 잘 가르쳐 장차 회사를 책임질 인재로 성장시키겠다는 기업의 의지를 엿보았고, 노동의 효율성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그곳에서 그는 치열하게 사는 직원들을 보며 좌파운동가들이 제대로 된 노동 경험 없이 입으로만 노동 어젠다를 나불거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무렵 조국사태가 터졌다. 그가 보기에 조국의 딸 조민의 의대 입학은 부모 찬스와 입시모순, 문서위조가 결합된 명백한 입시비리였다. 그는 조국을 옹호하는 사람들을 보며 분노를 느꼈다. 그들은 운동권이 아니라 비리를 옹호하는 기득권세력이었다. 세습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자유를 억압하고 재판 절차도 없이 정적을 처형하는 김정은에 대해 한 마디 비판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김정은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문재인 정권에서 일하는 걸 보며 나라가 위험에 빠질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좌우이념 문제로 정치인들이 다투는 거라면 걱정할 게 없었다. 그가 목격한 것은 좌우이념의 대립이 아니라 북한세습정권과 남한정권의 헤게모니 투쟁이었다.

그는 맥도날드에서의 알바 경험을 스스로 높이 산다. 필요한 돈을 번 것도 좋았지만 거기서 의식의 대전환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그는 과거 한때 이런 생각을 했다. 어차피 한민족인데 평화와 평등이 실현된다면 북한정권이 남한을 통치한들 어떠랴. 그러나 지금은 그 생각이 얼마나 치기어리고 어리석었는지를 잘 안다. 비록 한때였지만 그런 생각을 한 게 한없이 부끄러워진다. 개인의 행복은 자유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정상국가 국민이 누리는 것이며, 개인의 영육(靈肉)이 성장하듯 국가 또한 성장해야 한다. 성장을 멈춘 국가는 결국 세계사의 무대에서 사라지며 국민을 불행에 빠뜨린다는 사실도 이제는 잘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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