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근
황근

이쯤 되면 집단병리 현상이라 해야 할 것 같다. KBS 사장이 신년사에서 1년간 치적을 자화자찬하더니, 이번에는 MBC 박성제 사장이 연임 출사표를 던지면서 똑같은 말을 한다. "한국인이 즐겨 보는 채널 1위, 신뢰하는 뉴스 1위를 했고, 유튜브 조회수는 전세계 뉴스 채널 중 1위라는 놀라운 성과를 기록했다"는 것이다. 또 시사 프로그램 영향력도 급상승했고, 채널 신뢰도에서 1위에 복귀했다고도 한다.

최근 발표된 몇 개 조사에서 나온 결과를 근거로 말한 것 같다. 하지만 지난 몇 년간 MBC 시청률과 신뢰도는 창사 이래 가장 낮은 수준이었다고 말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듯싶다. 심지어 종편채널은 물론 온라인 매체들보다 낮을 때도 있었다. 그러니 어쩌다 한번 좋은 점수가 나왔다고 우등생이라고 할 수 없다. 솔직히 처음 들어보는 조사업체의 결과를 그대로 믿기 어려운 것도 있다.

시청률이나 신뢰도 같은 통계수치 때문만은 아니다. 자칭 MBC가 표방하고 있는 공영방송으로서 역할을 제대로 했는가가 더 중요하다. 공영방송 역할을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정치적·경제적 압력으로부터 독립해 공정하고 객관적인 정보와 유익한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 관점에서 지난 5년간 MBC가 보인 행태들은 공영방송과 아주 거리가 멀었다. 정치권력에 밀착한 언론노조가 MBC를 정치적 도구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끝없이 이어졌던 문재인 정권을 둘러싼 비리와 의혹들에 대해 침묵을 넘어 옹호하기 바빴다. 선거 때는 온갖 가짜뉴스로 편파방송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생태탕, 쥴리를 가지고 교통방송과 함께 정권 호위 쌍두마차 역할을 했다.

그렇게 정권친화적이었던 MBC가 교체된 정권과는 사사건건 첨예하게 부딪히고 있다. 언론 본연의 권력 감시행위라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기자가 슬리퍼 끌고 등 뒤에서 고함치는 모습은 감시라기보다 시비로 보이는 게 사실이다. 한때 유행했던 ‘그때그때 달라요’가 생각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180도 표변한 것이 정치적 신념 때문이라면 차라리 나을 수 있다. 결국 사장 연임을 위한 것이었다고 생각하면 서글퍼지기까지 한다.

현재 지난 정권이 견고하게 장악한 공영방송 지배구조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그러니 지난 정권에 충성했던 것보다 더 매몰차게 윤석열 정권을 공격하고 흠집내야 연임할 수 있을 것이다. 공영방송 거버넌스 개선을 표방하고, 야당이 추진하고 있는 방송법 개정안에 MBC는 제외하고 KBS만 대상으로 한 이유를 알 듯하다. 역시 ‘그때그때 달라요’인 셈이다.

MBC 사장 연임에 나서며 박성제는 ‘한국인이 가장 사랑했던 방송’을 ‘가장 사랑하는 방송’으로 다시 만들었다고도 했다. MBC가 ‘한국인이 가장 사랑했던 방송’인 것은 맞다. ‘뉴스데스크’ ‘대장금’ ‘무한도전’은 절대 강자 MBC 위용을 보여줬던 대표적 프로그램들이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MBC 뉴스 시청률은 한 자리 숫자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킬러 콘텐츠들도 경영 압박으로 자취를 감췄다. 한마디로 ‘가장 사랑하는 방송’은 절대 아니다.

이처럼 한국을 대표하는 방송이 정치적 수렁에 빠져 경쟁력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국가적으로 큰 손해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정작 사장이라는 사람은 감축 경영으로 몇 년 만에 흑자를 기록했다고 자랑하고 있다. 그것이 MBC 미래를 어둡게 만드는 수치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 같다.

지난 5년간 MBC는 정치권력과 결탁해 생명줄을 유지하는 괴물로 변해 버렸다. 그 괴물을 만드는데 앞장섰던 사장이 연임한다는 것은, 괴물에서 더 퇴화해 특정 정파에 기생해 연명하는 좀비가 될 수 있다. 진정 MBC를 사랑하는 마음이라면 스스로 물러나, MBC가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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