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웅
전경웅

서울중앙지방법원이 지난 7일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이 현지 민간인을 학살했다며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판결을 전해 듣고서 떠오른 생각은 "대체 정신이 있나"였다.

이 재판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 2020년 4월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응우옌티탄 씨의 법률대리인을 맡으면서 시작됐다. 해병 청룡부대 제2여단 제1중대가 응우옌티탄의 마을에 와서 주민들을 한 곳에 모아놓고 학살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서울중앙지법은 이 주장을 받아들여 한국 정부가 그에게 3000만100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판결 후 민변의 담당 변호사는 "이번 판결로 한국 사법부가 베트남전 당시 이런 불법행위가 있었고, 대한민국 정부가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점을 최초로 확인했다는 점에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내용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런 일도 있었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1999년부터 시작된 지루한 싸움을 아는 사람에게는 걱정이 앞서는 일이다. 당시 한겨레21을 필두로 좌파 매체들은 베트남전에서 한국군이 베트남 양민들을 무차별 학살했다는 주장을 폈다. 이때 나왔던 주장들이 "한국군이 B-52 폭격기를 동원해 무차별 폭격을 했다"거나 "승려들을 한 곳에 모아놓고 남녀 구분 없이 학살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실 한국군은 당시 미군 폭격기를 부를 수 없었고, 승려들을 무차별 학살한 자들은 베트콩이었다. 사실이 밝혀지자 좌파 진영은 다시 베트남전 당시 벌어진 이런저런 양민학살이 한국군 소행인양 떠들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거의 대부분이 베트콩에 의한 것이었고, 미군에 의한 학살이 몇 건 더 있었을 뿐이었다. 때문에 1999년과 2000년 떠들썩했던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의 양민학살 주장은 ‘헛소리’로 치부돼 사라졌다.

그런 주장이 20년 만에 다시 등장한 것이다. 문제가 재점화되고 일부 매체가 분위기를 띄우자, 지난해 8월 KBS는 ‘시사멘터리 추적’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응우옌티안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방송했다. 베트남전참전유공자회나 베트남전참전전우회로부터 자문을 받았는지 의문스러웠다.

부친이 베트남전 참전 군인인 박민식 보훈처장은 지난해 9월 페이스북을 통해 "참전용사들은 학살자가 아닙니다"라며 "KBS가 한 시사 프로그램을 통해 월남전 참전용사 모두를 학살자인양 매도하는 편파적인 방송을 했다"고 비판했다. 박민식 처장은 이어 "KBS가 32만5000명의 월남전 참전 유공자와 그 가족을 모두 욕보였다"며 정중한 사과를 요구했다.

한겨레의 주장으로 논란이 일었던 20년 전 몇몇 사람들은 직접 베트남을 찾아 한국군 학살의 증거를 찾으려 시도했다. 그러나 그들이 찾은 것은 베트콩과 남베트남군 특수부대가 저지른 양민학살뿐이었다. "한국군이 당시 양민 수백 명을 죽였다"는 일부 마을의 주장은, 알고 보니 베트남 공산당의 선전인 것으로 드러났다. 즉 베트남 공산당이 말하는 한국군의 양민학살 주장은 6·25전쟁 당시인 1950년 10~12월 유엔군이 황해도 신천군 주민 3만~4만 명을 죽였다는 북한의 주장과 거의 비슷하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판결을 두고 "이상주의적 판결"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베트남 정부가 한국에게 사과나 책임을 요구하지 않은 상태에서 법원이 손해배상 책임을 요구했다"는 지적도 있다. 베트남 정부는 1992년 우리나라와 수교를 하면서 베트남전과 관련한 책임은 묻지 않겠다고 밝혔다. 또한 국가배상법으로 보면, 베트남 국민이 우리 정부에게 배상 받으려면 베트남 정부도 우리 국민에게 배상을 하는 제도가 있어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국군의 베트남전 당시 양민학살에 대해 정부가 보상하라"고 한 서울중앙지법은 이런 부분까지 제대로 파악한 뒤 판결을 내렸는지 궁금하다. 법리적 해석에 앞서 사실부터 먼저 파악하는 게 사법부의 의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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