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타나베 미카
와타나베 미카

일본은 어디를 가더라도 그 장소 특유의 속도와 행동 방식이 있다. 구성원들이 그것을 따라가지 못하면, 관리자로부터 ‘손이 가는’ 특별 관리 대상자로 취급받는다. 필자처럼 오래 외국에서 살다가 가끔 귀국하게 되면, 바로 적응이 안 돼 관리 대상자가 되어 며칠 고생한다. 적응하기 위해 열심히 앞사람을 따르고 있으면, 마치 공장에서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각 과정을 통과하는 기계가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인간의 기계화가 그렇게 진행되고 있는 것 같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 이후 그런 현상은 갈수록 가속화되고 있다. 이러다가 인간다운 인간은 한 명도 남지 않고, 모두가 거대한 기계의 하나의 톱니바퀴가 되어 버리는 것 아닌가 하는 공포심마저 든다.

일본의 서비스업 종사자는 모두 매뉴얼대로 훈련받은 인간 기계공장 관리자다. 같은 표현양식·음성·억양를 비롯해 실내온도·습도·고요함 등, 최적으로 설정된 환경을 제공한다. 이 환경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스스로 통제된 사회 환경 시스템을 쾌적하게 느껴 버린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기계화이자 인간 약화 방식이다. 마치 트랜스휴머니즘의 현실판 같다.

일본에는 트랜스휴머니스트협회가 있다. 협회측은 "일본은 무신론자·무종교자가 많으므로 트랜스휴머니즘과 궁합이 좋다. 기독교 풍토가 강한 미국을 넘어서 세계 일등의 트랜스휴머니즘 국가가 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트랜스휴머니즘(transhumanism)은 1960년대 미국의 미래학자들에 의해 등장했다. 이후 1990년대 영국 미래학자 맥스 모어로 인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트랜스휴머니즘은 과학기술을 이용해 사람의 정신적·육체적 성질과 능력을 개선하려는 운동이다. 장애·고통·질병·노화·죽음과 같은 인간의 조건들을 바람직하지 않고 불필요한 것으로 규정한다.

트랜스휴머니스트 선언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있다. ①노화·병·부상 등 뜻대로 안 되는 고통을 극복하도록 노력한다. ②모든 맹신적 신앙을 그만두고, 중립적인 임장을 유의하면서 순수한 지적 탐구를 하고, 진리를 지향한다. ③스스로 향상과 성장을 약속하고 사회 변화에 대응함으로써 종의 진화를 지향한다. ④강제와 억압은 절망·분노·복수·혁명에 이어짐을 이해하고 사람들의 자발성을 존중한다.

그러나 이 운동을 ‘인간의 정체성 상실’로 이해하고 거부하는 이들도 많다. 세계적 정치경제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우리의 포스트휴먼 미래 Our Posthuman Future>(2002)에서 "인간성의 근본적 변화는 자유민주주의·평등주의 사상을 해치는 가능성이 있다. 트랜스휴머니즘은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사상"이라고 했다.

필자는 얼마후 일 때문에 일본에 간다. 고국이지만 30년 이상 한국에서 살았기 때문에 낯설 때도 있다. 귀국해 며칠 고생할 생각을 하니 문득 트랜스휴머니즘이 떠올랐다. 그 생각 아래에는 세계적 화제가 되고 있는 인공지능 챗봇GPT 영향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기술이 발달해도 인간은 스스로 강해져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지 않으면 인간이 아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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