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희
김인희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4일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하자 야당의 비난이 끓어오르고 있다.

이 법안은 쌀 초과생산량이 일정량을 넘어설 경우 초과분을 정부가 모두 의무적으로 매입하게 해 쌀값 폭락을 막자는 내용이다. 하지만 매년 예상되는 매입 비용이 1조원이 넘고, 정부가 추구하는 작물 다양화 정책에 역행하는 법안이라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다.

더불어민주당은 "농민들의 쌀 생산 의욕을 꺾어 식량 주권을 포기하는 행위"라며 윤 대통령을 비난하고 있지만 야당이 추진한 이 법안이야말로 농업 경쟁력을 후퇴시키고 농민들을 돈으로 매수하겠다는 악법이다.

이미 우리나라는 쌀 자급률 100%를 넘어선 지 오래다. 영농과학이 발전하며 과거보다 같은 면적에서 더 많은 쌀을 생산할 수 있게 됐고, 국민 식습관의 변화로 과거만큼 쌀을 많이 소비하지도 않는다.

영양부족이던 과거 호화로운 식생활을 뜻하던 ‘쌀밥에 고깃국’은 영양과잉인 요즘에 와서는 오히려 비만을 부르는 나쁜 식습관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한다. 과거 한 끼 배부르게 먹는 것이 소원이었던 시절에는 쌀이 부족했지만, 경제수준 향상으로 육류·수산물·채소·과일의 소비가 늘어났으니 이젠 쌀이 남아도는 시대가 됐다.

그럼에도 농민들은 쌀 생산을 줄이려 하지 않는다. 농사 자체가 쉬운 일은 아니지만 주력 작물로서 쌀이 차지하는 위상이 높다보니 영농과학이 가장 발전한 분야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쌀은 다른 작물을 재배하는 것보다 농민들이 훨씬 손쉽게 적은 비용과 노동력으로 재배할 수 있다.

영농기계도 많이 발전해서 요즘 농촌에서는 몇 천 평에 달하는 논에서 한 사람이 벼농사를 짓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반면 과일은 여름 땡볕에 일일이 가지치기와 종이포장을 해야 하고, 채소는 솎아내기를 하면서 알차게 자란 것을 선별해야 한다. 쌀에 비해 종자도 비싼데다가 품이 많이 들어 인건비가 많이 들 수밖에 없다. 그래서 과일과 채소는 쌀에 비해 훨씬 비싸게 팔린다. 비싸게 팔아도 사는 수요가 있으니 그 가격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생산하는 파프리카, 배, 복숭아 등은 뛰어난 품질을 해외에서도 높게 평가받아 제 값을 충분히 받으며 수출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반면 쌀은 점점 소비량이 줄어들다보니 가격이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것이 바로 기본적인 시장 원리다. 쌀이 아직 우리 식생활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주력 작물이라고 해서 그 시장원리의 역행을 인정해준다면 이는 오히려 더 높은 경쟁력을 가진 작물을 재배할 기회를 포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쌀 대신 다른 작물을 재배하면 정부에서 지원금은 물론 각종 혜택도 준다. 더 높은 소득을 올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겠다는데도 그동안의 관성에만 의존에 벼농사를 포기할 수 없다는 농민들은 보호해야 할 가치가 없다.

이 법이 시행되지 않는다고 해서 식량주권을 포기하는 것도 아니다. 다자간 무역협상인 우루과이 라운드를 거치며 우리나라의 농산물 수입 시장이 완전 개방됐고, 농업강국인 칠레와의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고도 식량을 무기삼아 우리나라를 위협하는 나라는 없다. 글로벌 시장경제 시대에 식량의 무기화가 가능한 국가가 있다고 가정하는 것 자체가 무리수인 셈이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왜 양곡관리법을 밀어붙이는가. 이는 민주당의 텃밭인 호남지역이 국내 최대의 쌀 생산지역이기 때문이다. 호남에서 생산되는 쌀을 시장 수요와 상관없이 정부가 어떻게든 매입하게 하겠다는 사실상의 매표(買票) 행위다. 이것이 장기적으로 호남에 도움이 되냐면 그것도 아니다. 호남의 쌀 재배 면적이 줄지 않으면 호남에 미래산업을 위한 투자를 하는데도 방해가 된다. 양곡관리법이 호남을 영원히 낙후된 지역으로 묶어놓게 되는 것이다.

저작권자 © 자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