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구영
정구영

우리나라에는 58만개나 되는 제조기업이 있다. 국내총생산(GDP)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도 30%에 육박한다.

이로 인해 간과하기 쉬운 것이 있다. 제조업을 주력 산업으로 영위하는 나라는 세계에서도 몇 안 된다는 사실이 바로 그것이다. 흔히 생각하는 제품, 즉 자동차·선박·전자제품·화학제품 등을 만들고 이를 수출해 국가의 주요 수입원으로 삼는 나라는 10개 이하다.

자동차 기업이 시트부터 바디 제작까지 다 할 수 없는 것처럼 제조업은 특성상 여러 기업이 맞물려 돌아간다. 예를 들면 현대자동차에 직접 부품을 납품하는 1차 협력사는 400여 개 정도다. 또 이같은 1차 협력사의 하청을 받는 2차 협력사는 5000여 개에 달한다. 3차 협력사와 4차 협력사까지 따지면 집계조차 어렵다. 대기업이 성장하면 과실이 중소기업으로 흘러 선순환된다는 낙수효과(落水效果)란 말도 여기서 나온 것이다.

하나의 완성된 제품을 소비자에게 전달하기 위해 제조기업은 광대한 협력의 사슬을 유지하게 된다. 이 때문에 제조업 중심의 산업화가 이루어지면 관련 분야의 성장이 촉진된다. 수출을 통해 또 다른 성장 동력도 갖게 된다.

우리나라는 미국·독일·중국·일본과 함께 세계 5대 제조업 강국으로 꼽힌다. 영국·프랑스 같은 나라도 제조업 비중이 GDP의 10% 안팎에 불과하다. 유엔산업개발기구(UNIDO)가 2020년 7월 발표한 세계 제조업경쟁력지수(CIP)를 보면 우리나라는 152개국 중 독일과 중국에 이어 3위에 랭크돼 있다.

다른 선진국의 경우 산업화가 진행될수록 제조업 비중이 줄어드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다르다. 자원이 빈약하고, 내수시장도 협소한 수출 중심의 경제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경쟁력 있는 제품을 만들어 내다 팔아야 한다. 약점이 오히려 경쟁력을 키우는 동인이 되고 있는 셈이다.

우리나라는 산업화 원년으로 평가되는 1974년과 비교해 GDP는 85배, 수출은 153배 이상 늘었다. 경제 규모 세계 10위에 30-50 클럽에도 세계 7번째로 가입했다.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이상에 인구 5000만 명을 넘는 조건을 만족하는 나라를 의미하는 30-50 클럽은 선진국의 ‘다른 이름’이다. 한국 경제의 발전 역사가 세계 경제학 교과서에 기록될 만큼 드라마틱한 이유다.

물론 주역(主役)이 있다. 영웅적 리더십으로 기간산업의 기틀을 마련한 박정희 대통령, 그리고 산업 일꾼의 피와 땀이 기적을 만들어 낸 것이다. 그럼에도 노무현 대통령은 ‘부끄러운 역사’라고 했다. 문재인 정부 때는 제조기업을 경영할 때 제약을 받는 정도를 수치화한 제조업 고통지수가 가장 높았다. 더불어민주당은 지금도 나라에 득(得)이 될 법은 기를 쓰며 발목을 잡고, 독(毒)이 될 만한 법만 밀어붙이고 있다.

세계 각국은 최근 글로벌 공급망 재편을 둘러싸고 자국의 이익 확보를 위해 첨예한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그 중심에는 미래 먹거리와 관련한 ‘제조업 허브’ 경쟁이 자리하고 있다. 제조업 강국이 린치핀, 다시 말해 중심축이 되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윤석열 정부가 지난달 국가첨단산업단지 육성전략을 내놓은 것도 첨단산업 패권경쟁에서 주도권을 쥐기 위한 승부수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반도체 클러스터는 핵(核) 보유국과의 동맹을 통해 국가 안전을 보장하는 핵우산처럼 반도체 경쟁력을 통해 안보를 보장하는 ‘실리콘 쉴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초일류 제조업 강국을 위한 담대한 비전을 제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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