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명신
임명신

돈 맥클린(77)의 ‘아메리칸 파이’가 윤석열 대통령 애창곡이었다니 신선한 충격이다. 지난달 27일 백악관 만찬석상에서 선보인 영어노래 한 소절로 여러 가지를 알 수 있었다. 우선 대통령의 예상 외로 유려한 발음과 음악성의 관계를 느꼈다. 영어 관련 특수 이력이 없는 한, 그것은 ‘음악의 힘’이다. 플라치도 도밍고가 내한공연 때 ‘그리운 금강산’을 깔끔한 우리말로 불러냈듯, 음악성은 낯선 발음의 직관적 습득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 반응 또한 인상적이었다. 바이든 대통령와 초대가수들을 포함해 좌중 모두가 진심 깜짝 놀라 열광적 경탄을 표출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하고많은 영미팝 가운데 왜 하필 이 노래였을까. 맥클린의 히트곡으로 흔히 ‘빈센트’(일명 ‘스태리 스태리 나이트’)를 먼저 떠올릴 법하다. 미국 팝역사에 길이 남을 ‘아메리칸 파이’라지만, 이 엄청나게 길고 난해한 가사의 노래가 한국에서 ‘추억의 팝송’ 순위에 오른 것을 본 적이 없다. 100위 안에도 못든다. 기독교적 보수주의와 고전적 자유주의가 서유럽 68세대의 세계관·가치관에 밀려난 시대, 그것을 보는 착잡한 시선 등 배경지식 없이 친해지기 어려운 노래다.

윤 대통령이 이 곡의 역사적 문맥을 잘 알고 있었는지 확인된 바 없으나, 그날 그자리로선 절묘한 선곡이었다. ‘함께 춤추게 만드는’ 미국적 록음악 완성자 버디 홀리의 죽음을 추모하며 가사가 시작된다. 록 밴드 일행 4명의 비행기 추락사 기사를 접한 그날(1959년 2월 4일)을 맥클린은 "음악이 죽은 날"로 회상한다. 1971년 시점에서 영국 비틀즈에 압도된 미국 현실의 진단이었다. 반기독교·반자본주의 정서의 비틀즈, 그것은 히피문화와 맞물린 이른바 68혁명과 통했다.

‘노동자들의 도시’ 리버풀 출신인 비틀즈 멤버들에겐 사회주의나 아나키즘 요소가 뚜렷하다. 이른바 ‘선(禪)마르크시스트’ 존 레논 작사·작곡의 ‘이매진’를 보자. 레논은 나른한 선율로 "천국이 없다고 상상해보라" 운을 뗀 다음, ‘무신론적 세상’ ‘국가·종교·소유물 없는 삶’이 평화를 만든다고 읊조린다. ‘워킹클래스 히로’(노동계급의 영웅) 가사도 노골적이다. 그런 세계관의 확장을 바라보는 착잡함이 크리스천인 맥클린의 ‘아메리칸 파이’에 담겼다. ‘아메리칸 파이’란 ‘건강한 미국적 보수주의’의 은유로 해석할 수 있다. 윤 대통령이 그것을 일깨운 셈이다. 그의 미 의회연설 속 키워드 ‘자유’ 역시 고전적 자유주의에 가까운 개념으로 해석하게 된다.

재작년 12월 영국 리버풀에서 열린 G7 외무·개발 장관회의 때 일이다. 만찬장소인 ‘비틀즈스토리’ 뮤지엄에서 일본의 하야시 요시마사 외무장관이 피아노로 ‘이매진’을 즉석 연주했다. 보도된 사진에 따르면, 반색하며 박수치는 사람들 제일 앞쪽에 문재인 정부의 정의용 장관이 크게 나와 있다. 애청곡이었나? 그 연배의 동경대 법대 출신 정치인이 피아노를 다루는 게 신기했을까? 만찬장에서 두 외무장관이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고 일본언론은 전했다. ‘피아노 외교’ 표현까지 나왔다. 한일관계 최악 국면에서 돌발 성사된 양국 최고위급 접촉이었다.

윤 대통령의 백악관 만찬장 퍼포먼스가 국내외에 화제를 뿌린 가운데, 맥클린이 트위터로 듀엣 소망을 밝혔다. 이미 통기타 선물도 전달된 상태고, 방송에 출연해 윤 대통령 노래에 대한 감명을 드러내기도 했다. 인사치레로 지나칠 게 아니라 적절한 명분을 만들어 적극 두 사람의 무대를 추진해 볼 일이다. 내년 총선 앞두고 ‘맥클린-윤 대통령 듀엣’이 실현된다면 더할 나위 없다. 2018년 ‘평화쇼’보다는 훨씬 평화를 위한 행사가 될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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