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석
조우석

전업작가 복거일은 이른바 잘 나가는 작가가 아니다. 놀라우리만치 다작(多作)이지만, 대중적 성공을 거둔 건 <경성, 쇼우와 62년-비명을 찾아서> 정도가 유일했다. 아시는가? 그게 87년작인데, 그럼 이후 30년이 훌쩍 넘는 세월을 그는 어떻게 버텼다는 얘기일까? 그리고 이 지독한 ‘시대와의 불화’는 뭣 때문일까? 세상이 진짜배기를 몰라보는 것이지 대체 뭐란 말인가?

실은 복거일을 두고 비웃는 말도 많다. 친미주의자·수구꼴통·재벌 옹호론자…모두 터무니없다. 그는 20년이 넘도록 서울 수색의 월세 아파트에 산다. 강남좌파로 넘쳐나는 나라에서 이런 아이러니가 없다. 더 쉽게 구조를 말하면, 복거일의 불운은 1980년대 이후 기울어진 운동장 탓이다.

이 나라는 민중주의 그룹의 수괴인 평론가 백낙청, 주사파 대하소설 <태백산맥>의 조정래, 종북주의자 제1호인 리영희 등 좌파 문화권력이 꽉 쥐고 있다. 복거일은 대척점에 서있다. 그럼에도 독립적 지식인으로서 위엄을 내내 잃지 않았던 그가 새 소식을 알려왔다. 건국대통령 이승만을 다룬 대하소설 <물로 쓰여진 이름>(전5권)을 발표한 것이다. 보기 드문 대작이다.

3부작 중 제1부가 이 정도 분량이다. 완간까지는 앞으로 10년 걸릴 것이다. 읽으실 엄두가 채 안 난다고? 아니다. 요즘 폭염에 이걸 읽는 재미에 푹 빠졌다. 고백하지만 오래 잊고 있었던 지적 호기심과 즐거움을 만끽하는 중이다. 이승만과 그의 시대를 훑어내리는 썩 특별한 독서경험이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2023년 여름 지금이라는 시대적 의미도 있다.

박근혜 사기탄핵이 한창이던 7년 전 정치학자 양동안 교수가 <벼랑 끝에 선 한국의 자유민주주의>를 펴냈을 때 필자는 외쳤다. "이 책 10만 권 팔리면 죽었던 대한민국 벌떡 일어선다." 지난해 말 멋진 단행본 <문재인의 정체>(장삼 지음)가 출간됐을 때도 같은 말을 전한 바 있다. 복거일의 대하소설 <물로 쓰여진 이름>도 같은 반열이거나, 그 이상이다.

1980년대 이후 조정래 <태백산맥>의 총판매량이 700만 권이란다. 가히 폭력적 수치다. 그게 끼친 해악은 하늘에 닿을 정도인데, 그렇다면 자유우파의 훌륭한 책들은 그 이상 읽혀야 옳다. 그래야 지금의 주사파 천국을 만들어낸 지식사회의 대혼란을 바로잡을 수 있다. 복거일과 시대와의 불화는 이제 끝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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