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희
김인희

바야흐로 선거의 해다. 3월엔 대통령 선거, 6월엔 지방선거다. 대선과 지선이 같은 해 열리는 일은 20년만에 한 번 찾아오는 것이니 2022년은 선거의 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만큼 요즘 필자에게도 부쩍 지방자치단체장들 명의로 문자와 전화가 자주 온다. 대부분 지난 4년간의 지자체장 생활을 회고하는 책을 내고 출판기념회를 연다는 것이다. 이미 그 지자체장들은 필자의 기자생활동안 인터뷰나 행정현장 방문을 통해 낯익은 사람들이기도 하다.

행정가이자 정치인이기도 한 지자체장들이 선거를 앞두고 여론을 움직일 수 있는 언론인들에게 연락하는 것을 딱히 탓할 일은 아니다. 일을 잘 하건 못 했건 상관없이 재선을 노리는 것은 정치인의 본능일 것이고 ‘일한 티’를 내야만 재선에 유리하다는 것은 정치판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그런 ‘일한 티’를 천편일률적인 출판기념회로 내려 하는 것은 기존 정치인들과 하등 다를 바가 없다.

필자는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지자체장들의 취임 기념 인터뷰, 취임 1주년 기념 인터뷰, 임기 반환점 기념 인터뷰 때 했던 말들은 한결같이 이런 말로 마무리됐다. "당선 초기의 초심을 잃지 않고 끝까지 지역구민들을 생각하겠습니다." "기존 정치판에 얽매이지 않고 소신대로 행정을 해 나가겠습니다."

그런데 지금 출판기념회에 와 달라, 책 홍보를 해 달라는 지자체장들은 과연 그 초심이 남아 있는 것인가. 초심을 잃고 재선에만 매달리는 구태 정치인들의 모습을 답습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유권자들은 정치인들의 생각만큼 멍청하지 않다. 좀 더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유권자는 결코 ‘개돼지’가 아니다. 지역 주민들의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사익 추구를 삼갔다면 당연히 행정의 결과로 지역 생활과 환경에 드러난다. 매일 내가 걷는 거리의 보행·청소환경, 내가 이용하는 관공서 공무원들의 업무 숙련도, 내가 받을 수 있는 지역 혜택은 지역 행정가가 얼마나 열심히 일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필자가 지난 2018년 지방선거를 마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인접 자치구로 이사했다. 필자는 이사 전 거주하던 곳에서 당선된 구청장에게 내 표를 주지는 않았다. 전임 구청장이 한심한 행태를 보인 끝에 공천을 받지 못했고, 생소한 인물이 새롭게 후보로 나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새로 당선된 구청장이 초선 구청장임에도 불구하고 과감하고도 혁신적인 행정으로 지역구민들의 생활을 많이 향상시켰다는 것을 인접 구민으로서 직접 느끼기 때문이다. 전임 구청장의 한심한 행정은 내가 이사한 이유의 아주 사소한 부분에 불과했다. 그런데 현 구청장이 취임 초기부터 말기까지 꾸준하게 본인의 행정 철학을 실천하는 것을 보면, 지금은 이사하지 않는 게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만약 내가 이사를 하지 않았다면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기꺼이 현 구청장의 재선을 위해 내 표를 줄 것이다. 지자체장의 초심과 행정철학이 그 지자체를 ‘살고싶은 동네’로 만들 수도 있고 ‘떠나야 할 동네’로 만들 수도 있다.

지자체장의 예를 들었지만 이것은 대통령이든 국회의원이든 지자체장이든 모든 선출직들에게 다 마찬가지다. 선출직은 국민의 권한을 위임받은 ‘국민의 일꾼’이어야 한다.

지난 임기동안 최선을 다했다면 얄팍한 책 한권에 기대지 말자. 대한민국의 지방자치와 민주주의는 이제 성숙기에 접어들었다. 처음 당선될 당시의 ‘초심’을 다시 생각해 봐야 할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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