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욱
남정욱

지금 같이 사는 여자와 데이트를 할 때의 일이다. 한국인이 연평균 1인당 62병의 소주를 마신다는 기사를 보고 둘 다 놀랐다. 여자는 대체 어떤 사람들이 술이 저렇게 많이 마시는 거냐며 놀랐고 나는, 그렇다면 대체 나는 몇 사람 몫을 하는 것일까 놀랐다. 일당백은 아니지만 일당십은 하는 것 같아 뿌듯했다. 주종은 다르지만 지금은 여자도 거의 매일 마신다. 그래서 닮아간다고들 하는 모양이다. 바람직한 것이 서로 비슷해졌으면 더 좋았겠지만 세상일은 대부분 나쁜 쪽으로 흐르기 마련이니 그러려니 한다.

호모 사피엔스 최고의 디바 휘트니 휴스턴은 마약은 했지만 술은 안 마셨다. 남편인 바비 브라운은 술은 마셨지만 약은 안 했다. 결혼하더니 서로 배워서 둘 다 한 끝에 휘트니 휴스턴은 하늘나라로 갔다. 그보다 나쁘지만 않으면 된다 생각하며 산다.

필자가 한국인 평균을 끌어올린 종목이 하나 더 있다. 당당하게 OECD 꼴찌를 차지한 연평균 독서량이다. 한국인의 1인당 단행본 독서량은 월평균 0.8권이다. 그래도 0.8권이나 읽네? 하시면 안 된다. 통계수치가 매우 허구적이라는 사실은 다들 아실 것이다. 양쪽 맨끝 그룹이 숫자를 주고받은 끝에 중간 구간이 그렇게 나오는 것이다. 읽는 사람은 읽고 안 읽는 사람은 아예 안 읽는다. 0.8이라는 수치는 읽는 사람이 보태준 것으로 그러니까 실제 0.8권을 읽는 사람은 없다. 그냥, 전혀 안 읽는 것이다. 한국인이 읽지 않는 것은 굳이 통계씩이나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그것은 말이다.

한국인의 한국어 구사 실력은 세대별로 다채롭게 절망적이다. 10대는 필자 차원에서 외계인이라 넘어가고 2030부터 보자. 헐, 대박, 미쳤다, 찢는다, 나 소름 돋았어, 이 다섯 마디로 상황의 대부분을 해결한다. 여기에는 배우고 덜 배우고 똑똑하고 띨띨하고의 차이도 없다. OTT에서 찾아볼 수 있는 시리즈물을 예를 들자. 몸을 주로 쓰는 사람들이 참가한 프로그램이나 속칭 브레인들이 모여 경쟁을 벌인 프로그램이나 둘의 언어는 같았다.

물론 당연히 몸 비하 아니다. 요새는 잘 가꾼 몸도 권력이니까. 타깃은 브레인이다. 저게 브레인이라고? 모국어 구사도 서툴러서 절절매는 게 브레인? 타깃이기는 하나 비난할 의도로 이러는 건 아니다. 세태가 통째로 그 지경이니까 이해한다는 얘기다. 왜 한국인의 한국어 구사 실력은 이렇게 파탄이 났을까. 그것은 한국인이 읽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하나 더 들자. 이태원 참사가 났을 때다. 뉴스에 나오는 목격자들의 증언이 입을 맞춘 것처럼 똑같았다. 옮기자면 "누구 하나 죽어도 하나도 안 이상한 상황이었어요"인데 이유는 간단하다. 어떤 상황을 목격했다. 그러나 상황을 묘사할 언어력이 없다. 이때 누군가 그럴듯한 소감을 말했다. 그래서 외워뒀다가 그대로 따라한 것이다. 이런 프로세스가 작동한 끝에 목격자들의 소감이 비슷해진 것이다. 아마도 유사한 일을 또 겪으면 역시 같은 표현으로 상황을 설명할 것이다. 아는 표현이 그것뿐이니까. 이것이 읽지 않은 것의 총체적 후과다. 상황이나 심정을 표현할 다양한 문장이 머릿속에 저장되지 않은 결과 발생한 참극이다.

읽지 않는 것이 한국인의 말을 망쳤다. 말이 글이고 글이 말이다. 읽은 글을 입으로 내면 말이고 입에서 나가는 것을 종이에 옮기면 글이다. 말을 글로 배워야 하는데 한국인은 말을 말로 배운다. 말은 돌면서 망가지고 헤지고 둔탁해지고 줄어들고 저렴해진다. 헐, 대박, 미쳤다 등 5대(大) 형용사, 부사로 표현이 모아진 이유다. 한 짝짓기 프로그램에 나온 예쁘고 상냥한 여성이 인터뷰에서 이러신다. "내가 마음에 들어하는 이성이 나올까?" 무슨 뜻인지는 알겠다. 자기에게 호감을 느끼는 이성이 없을지 몰라 불안하다는 얘기인데 이렇게 유추해서 해석하는 동안 여성의 얼굴이 처음과 달리 보였다. 프로그램도 짝짓기가 아니라 동물농장으로 바뀌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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