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희
김은희

2021년 발표된 미국 퓨 리서치 센터의 국제 설문조사에 따르면, 조사대상국 중 한국인들만 삶의 의미의 원천으로 물질적 풍요를 가장 중요시했다. 다른 국가들은 모두 가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이 조사 결과는 많은 한국인들에게 충격적이었다. ‘개인주의’ 사회라고 생각했던 소위 서구의 ‘선진국’들은 모두 친구나 지역사회의 이웃과 같은 공동체에서 삶의 의미를 찾고자 했다. 반면에 효를 중시했던 한국사회에서 이제 사람들은 가족보다 물질적 풍요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사회에서 가족은 중요하지 않은가? 또 한국인들은 왜 그리도 물질주의적인가?

사실 한국인이 가족이나 이웃과의 관계가 소원한 것은 서구의 ‘개인주의’ 문화가 한국 사회에 정착됐기 때문이 아니다. 이것은 가족의 의미가 서구와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대를 이어 존속하는 한국의 ‘집’은 전근대사회 제도로서의 가족, 즉 ‘가문’에 가깝고, 서구사회에서 가족은 부부 간의 낭만적 애정에 기반한 ‘가정’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 문화에서 ‘집’ 혹은 ‘집안’은 가족 간의 감정적 유대가 중요한 사적인 영역이 아니었다. 1960년대 이래 한국사회가 본격적으로 도시화되고 산업화되면서 전통 가족도 핵가족화 됐지만, 도시의 핵가족은 물질적인 생산 활동이 이루어지는 공적인 영역의 일부로서 존재해왔다. 즉 물질주의와 가족의 가치가 분리되지 않았다. 안과 밖으로 분리된 전통적 남녀 역할에 기초하여 가정은 밖에서 일하는 남편이 돌아가 잠만 자는 휴식처로서의 역할이 강조됐다. 남편의 성공과 아내의 내조가 부부간의 낭만적 사랑보다 더욱 중요시됐다. ‘직원은 한 식구’라는 공동체의식이 강조되며, 가족과 친구, 이웃 등과 감정적 유대 관계를 유지할 시간은 그만큼 줄어들었다고도 할 수 있다.

반면 서구의 개인주의 문화에서 가족은 부부 간 낭만적 사랑에 기반한다. 가족은 감정적 유대가 중요한 사적 영역으로 인식되고, 감정이 배제되고 이성과 합리성의 원칙에 따라 경제활동이 이루어지는 공적인 영역과 엄격히 구분된다. 사랑과 우정이 표현되는 사적 영역은 공적 생산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경쟁과 냉정한 계약관계로부터의 피난처(haven)로서 소중하게 인식된다. 당연히 서구 ‘선진국’에서는 가족과 친구, 이웃은 삶의 의미의 중요한 원천이 된다. 성공과 물질적 번영이 무엇보다 강조되는 한국사회의 명절 스트레스와 대조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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