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희
김은희

지난 주 시작된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에 이어 많은 의대 졸업생이 인턴 임용을 포기하고 있다고 한다. 왜 이들이 집단적으로 의사가 되기 위한 수련과정을 거부하는 것일까? 설 연휴에 만난 친척 의사는 파업이라는 말에 일그러진 표정을 지었다.

파업은, 마치 불이 나고 있는데 소방관이 불을 끄지 않고 현장을 떠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그는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도 의사들이 아예 사직서를 제출한다는 것은 그만큼 그들이 느끼는 분노와 좌절이 막대하기 때문은 아닐까?

친척과의 대화에서 느낀 것이지만, 그런 분노의 핵심에는 명예 손상이라는 문제가 있는 듯하다. 정부와 많은 국민은 우리나라 산부인과·소아과·외과 등의 필수의료가 붕괴하는 이유는 의료계의 ‘이기주의’ 때문이라고 본다. 생명보다 돈을 중시하므로 필수의료가 붕괴하고 피부과나 성형외과, 그리고 안과 등 돈이 잘 벌리는 의료만 전공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의사 숫자를 대대적으로 늘려야 인기과로의 진입 경쟁에서 밀려난 인력이 ‘낙수효과’를 통해 필수의료 쪽으로 흘러 들어올 것이라고 정부 관계자들은 설명한다. 그런데 이 ‘낙수효과’ 이론은 필수의료과 전공의들의 자부심을 산산이 부셔버린다. 전문가로서 그들이 하는 일은 사명감으로 하는 일이 아니라 실력이 없어 어쩔 수 없이 하게 된 ‘낙수과’일이기 때문이다.

외국은 어떨까? 필자는 재작년 가을에 미국에 유학중인 딸을 보러 갔다가 깜짝 놀랐다. 그곳 교구 대성당에 주일 미사를 보러 갔더니 마침 그날은 의료인들을 위해 바치는 ‘화이트 미사’(white mass)가 있는 날이었다. 병을 고치고 생명을 구하는 일에 종사하는 의사·간호사·영양사·간병인·실험실 기술자 등이 모두 의료인에 포함되는데, 이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하고 이들을 축복하기 위한 미사를 올리는 것이었다.

화이트 미사는 미국인들이 병을 치료하고 생명을 구하는 행위 자체를 숭고한 일로 생각하고 그 일에 종사하는 전문가들을 특별히 존경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문화에서 병을 치료하는 행위에 대해 난이도에 따라 물질적 보상을 달리 하는 것은 지극히 합당하다. 반면에 한국에서 의료인들을 위해 기도하거나 미사를 바치는 것을 필자는 아직 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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