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첨단전쟁은 전선(戰線)이 없다. 전후방(前後方)이 따로 없다. 주요 정부기관 해킹 등 사이버전·심리전·선전전·첩보전·국지 테러 등이 뒤섞인 입체전이다. ‘하이브리드 전쟁’(Hybrid Warfare)이라고 한다. 지금 우크라이나 사태가 그렇다. 러시아가 10만 병력으로 우크라이나를 3면에서 포위하고 있지만 재래식 전쟁의 신호탄인 포성이 없다. 전쟁 개시 선언도 없다. 하지만 사실상 전쟁은 이미 시작됐다.

러시아 하원 두마가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 친러 반군이 세운 도네츠크인민공화국·루간스크인민공화국의 독립을 승인해줄 것을 요청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고 지난 15일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그동안 "만약 러시아 정부가 반군의 요청을 승인할 경우, 러시아가 민스크 협정에서 탈퇴하는 것으로 간주하겠다"고 주장해왔다. 민스크 협정은 돈바스 지역의 무력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2015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유럽안보협력기구(OSCF)의 중재 아래 체결한 평화협정이다. 로이터 통신 보도가 정확하다면 15일 자로 ‘민스크 평화협정’은 깨진 것이다. 때를 맞춰 18일 루간스크주의 드루즈바 가스관에서 큰 폭발이 일어났다. 이 가스관은 러시아에서 출발하여 동·중부 유럽으로 이어진다. 가스관 폭발을 둘러싸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정부는 서로 상대방이 벌인 테러라며 공방을 벌이고 있다. 이 때문에 러시아·우크라이나의 국민은 진짜 전쟁이 시작됐는지 피부로 느끼지 못한다. 하이브리드 전쟁은 공격과 수비, 침략과 방어의 주체를 분간하기 어렵다.

푸틴은 우크라이나를 총공격하여 무력으로 점령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다. 우크라이나를 ‘실패 국가’(Failed State)로 만드는 것이 목적(본지 사설 2월4일자 사설)이다. 정치불안·내전·난민·경제파탄·사회분열 등으로 실패 국가’로 만든 다음, 우크라이나를 나토(NATO)와 러시아 사이의 ‘충격완화지대’로 만들려는 의도다.

미국이 개입할 경우 제2 베트남 전쟁처럼 수렁에 빠지게 된다. 푸틴이 노리는 게 바로 이것이다. 이 때문에 우크라이나 사태는 향후 중국·북한이 우리에 대한 전략전술과 관련하여 시사하는 점이 많다. 우크라이나 사태에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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