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약품그룹은 창업자 고(故) 임성기 회장의 아내 송영숙 회장과 장녀 임주현 사장, 그리고 임종윤·종훈 형제 간 치열한 경영권 다툼을 벌이고 있다. 왼쪽부터 한미약품그룹 사옥과 OCI그룹 사옥. /한미약품그룹
한미약품그룹은 창업자 고(故) 임성기 회장의 아내 송영숙 회장과 장녀 임주현 사장, 그리고 임종윤·종훈 형제 간 치열한 경영권 다툼을 벌이고 있다. 왼쪽부터 한미약품그룹 사옥과 OCI그룹 사옥. /한미약품그룹

국내 기업사에서 찾아보기 힘든 ‘이종 결합’으로 관심을 끈 제약·바이오 기업 한미약품그룹과 소재·에너지 전문 OCI그룹 간 통합이 미궁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그동안 지분싸움에서 밀리던 장남 임종윤 한미약품 사장과 차남 임종훈 사장 형제가 OCI그룹과의 통합을 좌우할 ‘키맨’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의 마음을 사로잡으면서 통합파 송영숙 한미약품그룹 회장·임주현 사장 모녀의 지분율을 앞지른 것이다.

한미약품그룹은 창업자 고(故) 임성기 회장의 아내 송 회장과 장녀 임 사장, 그리고 임종윤·종훈 형제 간 치열한 경영권 다툼을 벌이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신 회장이 형제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이에 따라 한미약품그룹의 경영권 향방은 물론 OCI그룹과의 통합은 이번 주 열릴 지주사 한미사이언스 주주총회에서 국민연금공단과 소액주주들의 선택에 달리게 됐다.

25일 제약·바이오업계에 따르면 오는 28일 열릴 한미사이언스 정기 주주총회에서는 송 회장·임 사장 모녀 등 현 경영진과 이를 반대하는 장·차남 측이 각각 내세운 새 이사진 후보를 놓고 표 대결이 펼쳐진다. 현 경영진이 추천한 임 사장과 통합 파트너 이우현 OCI홀딩스 회장 등 6명이 이사로 선임될 경우 한미약품그룹과 OCI그룹 간 통합은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하지만 형제 측이 내세운 후보 5명이 이사로 선임되면 형제의 경영 복귀와 함께 OCI그룹과의 통합은 사실상 무산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한미사이이언스 주총에서는 양측이 낸 11명의 후보자 선임안을 일괄 상정, 다득표순으로 최대 6명의 이사가 선임될 예정이다. 현 이사진이 송 회장을 포함한 4명인 만큼 형제 측이 제안한 후보들이 모두 선임된다면 이사회의 과반수를 차지해 OCI그룹과의 통합 결정을 물릴 공산이 크다.

이번 한미약품그룹 경영권 다툼에서 어느 한쪽의 우위를 예단하기는 어려웠다. 양측의 한미사이언스 지분율 차이가 고작 1.39%포인트밖에 나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이들이 소유한 한미사이언스 지분은 모녀 21.86%(송 회장 11.66%·장녀 10.20%), 형제의 지분은 20.47%(장남 9.91%·차남 10.56%)다.

하지만 지난 22일 한미약품그룹 경영권 분쟁의 ‘캐스팅보터’로 주목받던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지분율 12.15%)이 형제 편에 서겠다는 입장을 내면서 한미약품그룹의 경영권 향방은 형제 측에 더욱 가까워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신 회장은 임 창업자의 고향 후배이자 막역한 사이로 한미사이언스 2대 주주에 자리하고 있다.

신 회장은 입장문을 통해 장·차남의 주주 제안에 표를 던지겠다는 의사를 확고히 했다. 신 회장은 "상속세와 주식담보대출 등 대주주들이 개인적인 사유를 해결하는 데 집중하는 동안 회사 경영에 대한 적시 투자활동이 지체되고 기업과 주주가치는 심각하게 훼손됐다고 판단했다"면서 "임종윤·종훈 형제가 새 이사회를 구성해 회사를 빠르게 안정시키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신 회장이 형제 측의 손을 들어 주면서 한미약품그룹과 OCI그룹의 통합 작업도 ‘빨간불’이 켜졌다. 주주명부 폐쇄일 기준 형제 측이 확보한 지분율은 40.57%에 달한다. 반면 모녀 측이 우호 세력인 가현문화재단(4.9%)과 임성기재단(3%) 등을 모두 끌어들여도 지분율은 고작 35%다.

하지만 모녀 측에도 기회는 남아있다. 소액주주(16.77%)와 국민연금(7.66%)이 어느 쪽의 손을 들어줄지 예상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미사이언스 소액주주와 국민연금의 표심을 얻는 측이 회사 경영권을 차지하는 만큼 모녀 측은 소액주주와 국민연금을 설득하기 위해 막판 스퍼트를 올리고 있다.

임주현 사장은 지난 24일 형제 측에 그룹 지주사인 한미사이언스 주요 대주주 주식을 3년간 처분할 수 없도록 하는 ‘보호예수’를 제안했다. 임 사장은 "형제 측은 지분에 경영권 프리미엄을 더해 매각할 생각만 하고 있다"면서 "이는 한미약품그룹과 일반주주의 권익 침해로 직결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무담보로 임종훈 사장에게 빌려줬던 266억 원을 즉시 상환할 것을 요청했다.

임종윤·종훈 형제 측도 즉각 반박 입장을 내놓았다. 이들은 "선대 회장이 평생 이룩한 한미약품그룹을 한 번도 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면서 "지난 1월 주주들 몰래 50년 전통의 한미약품그룹 경영권을 OCI에 통째로 넘기고, 상속세 해결을 위한 합병이었다고 일부 인정한 상황에서 이런 맥락 없는 제안을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전했다.

한편 한미약품그룹은 25일 그룹 인사 발령을 통해 임종윤 사장과 임종훈 사장을 각각 한미사이언스·한미약품에서 해임하는 초강수를 뒀다. 한미약품그룹은 보도자료를 통해 "임종윤·종훈 사장이 이사회 중요 결의 사항에 대해 분쟁을 초래하고, 회사에 돌이킬 수 없는 손해를 야기했다"며 "회사의 명예나 신용을 손상시키는 행위를 지속해 해임했다"고 밝혔다. 다만 두 형제가 등기이사를 맡고 있는 계열사에서의 직은 유지된다. 현재 임종윤 사장은 한미약품에서, 임종훈 사장은 한미정밀화학에서 등기이사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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