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대결 신냉전 시대] 대한민국의 선택(하)

◇미·중 대결, 신냉전 시대

2016년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라는 기치로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미·중 갈등은 가시화됐다. 트럼프는 중국의 고도성장이 미국의 양극화와 중산층 위기에 기반한다는 측면을 강조했다. 저임금을 찾아 제조업이 대거 미국 땅을 떠나면서 중산층·서민 일자리가 대폭 줄었다. 미·중 밀월시대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큰 부를 거머쥔 소수 엘리트와 이들 보통 미국인들의 사정은 전혀 다르다. 트럼프 대통령의 MAGA(Make America Great Again)는 ‘중산층·서민 살리기 프로젝트’의 의미가 크다. 중국에 대한 그의 경제적 군사적 봉쇄 노력 역시 이 연장선에 있었다.총체적으로는 중국 패권에 대한 방어책이었다고 볼 수 있다.

2019년 오묘한 표정의 두 정상, 트럼프 미국 대통령(좌)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우). 양국의 대결구도는 돌이킬 수 없는 수준으로 심각해졌다.

2010년대 들어 남중국해 문제, 미·중 무역전쟁, 미·중 과학기술 경쟁 등 여러 분야에서 양국이 충돌하고 피차의 국민감정도 악화 일로다. 나름의 효율성을 지녔던 집단지도체제가 무너지며 시진핑 독재가 본격화했다. 내부적 문제 돌파를 위해 ‘외부의 적’을 만드는 경향 또한 심화될 전망이다. 한때 공통의 적을 견제하기 위해 연대한 미·중은 상호의존성을 키워왔으나 중국의 부상이 무역전쟁, 기술패권경쟁, 인권·환경 문제 등으로 이어졌다. 이 같은 국제정치의 역학구도는 한반도 정세에 그대로 직결된다. 미·중 대결의 신냉전 속 외교적 선택이 대한민국의 존망을 가를 것이다.

공산화 이전 중국인들은 미국에게 별 반감이 없었다. 중국을 침탈한 것은 영국·프랑스·독일 등 주로 유럽 열강과 일본이었다. 냉전시대는 물론 탈냉전시대에도 미·중은 이해가 일치했다. 개혁개방 이래 중국 경제의 최대 협조자는 미국이었다. 그러나 중국몽을 반성적으로 재구성하지 않는 한, 건곤일척(乾坤一擲)의 미·중 충돌은 불가피하다.

◇동북아에 집중될 미국의 힘

지난 8월 미군의 아프간 철군으로 20년 전쟁이 끝났다. 철군 자체는 예정된 것이었으나 쫓기듯 빠져나간 모양새가 세계의 우려와 비웃음을 샀다. 이 상황이 가장 불편한 나라는 중국일 수밖에 없다. 미국이 중국봉쇄에 집중하겠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 이래 신장 위구르족 인권탄압이 ‘대학살(genocide)’로 정의됐다. 이어 미 국무부 등 6개 부처는 신장의 강제노동 및 인권유린과 관련된 기업에 대해 투자 및 교역 금지령을 내렸다. 미국은 인권문제를 양국 갈등 현안과 관련지어 제재의 명분으로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 견제·봉쇄’는 미국의 초당적 공감대다. 미·중 수교 이래 ‘포용(engagement)’정책을 견지한 것은 경제적 풍요가 중국의 자유화를 이끌어낼 것이란 기대에서였다. 미국이 만성적 대중 무역적자를 감내해온 이유다. 그러나 2013년 시진핑 집권 이후 미국은 비로소 꿈에서 깨어났다. 미국 시장의 개방성과 관용이 이용만 당했다는 결론에 이른 것이다. 트럼프 정부가 미국의 지적재산권·첨단과학기술 탈취를 문제 삼기 시작했다. 코로나19 기원과 그 후속 조치에 대한 중국의 책임 또한 얼버무릴 일이 아니다.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므로 국제사회의 지속적인 압박이 필요하다.

◇중국공산당의 전방위 침투

『조용한 침공』『중국은 괴물이다』『판다의 발톱』은 각각 호주·미국·캐나다에 대한 중국공산당의 전방위적 침투를 자세하게 파헤친 최근 역작들이다. 이들 세 나라는 중국의 패권 전략에 결정적 내지 핵심적 의미를 가진다. 해당국의 학자·전문가가 팩트 중심으로 현 사태의 심각성을 자세히 전하고 있다. 신냉전의 중심, 그 핵심고리인 대한민국이 멀쩡하리라 기대하는 게 오히려 비현실적이다. 중국은 상호존중 원칙과 각자도생 선택의 존중을 말하면서 미국적 가치와 주장의 보편성을 거부한다. 현 상황을 미·중 국력의 격차가 줄어 미국이 두려워하고(fear) 질투하기(envy) 때문으로 본다. 바이든 취임 이후 11개월, 시진핑 장기 독재의 길은 뚜렷해졌다. 두 나라 모두 장기전에 대비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분명해졌다.

대리전의 의미를 띤 국지전이나 대결 상황이 발생할 지 모른다. 실제 대만해협을 비롯한 남지나해 지역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대한민국과 대만의 운명은 미·중 대결의 향방에 달렸다.대만이 신냉전시대 자유세계의 최전선임을 국제사회에 천명하며 반도체 등 전략물자의 글로벌 공급망 역할분담을 자임하고 나섰다. 생존·번영의 길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는 뜻이다.이렇게 가면, 조만간 대만과 대한민국의 국력·위상이뒤바뀌는 것은 시간문제다.

호주에 대한 중국공산당의 전방위적 침투를 파헤친 클라이브 해밀턴 저 ‘중국의 조용한 침공’
미국에 대한 중국공산당의 전방위적 침투를 파헤친 로버트 스팔딩 저 ‘중국은 괴물이다.’ 원제는 The Stealty War(조용한 전쟁)
미국에 대한 중국공산당의 전방위적 침투를 파헤친 로버트 스팔딩 저 ‘중국은 괴물이다.’ 원제는 The Stealty War(조용한 전쟁)

 

캐나다에 대한 중국공산당의 전방위적 침투를 파헤진 조너선 맨소프 저 ‘판다의 발톱’
캐나다에 대한 중국공산당의 전방위적 침투를 파헤진 조너선 맨소프 저 ‘판다의 발톱’

◇신냉전시대 대한민국의 선택은?

대한민국은 미·소 대결 냉전시대엔 반공의 최전선이자 글로벌 공급체계내 역할 분담으로 산업화의 기틀을 닦았다. 아무리 유능하고 부지런한 국민이라도 미국으로 대표되는 자유세계의 기술이전과 시장개방 없이는 불가능했을 일이다. 냉전시대 철저한 ‘반공’을 견지한 게 한반도 지정학에선 최상의 선택이었던 것이다. 현재의 신냉전 상황 역시 이 이치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우리민족끼리’ ‘자주’를 앞세운 통일론은 현 정부 들어 ‘평화 프로세스’ ‘종전선언’의 이름으로 재생산되고 있다. 2차 대전 직후 동구권 국가들의 중도·좌우합작은 그저 공산화의 전 단계였음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중도나 좌우합작을 대한민국이 시도했다간 결국 중국·북한 쪽으로 끌려가게 돼 있다. 그게 한반도의 지정학이고 역사의 물리적 이치이자 관성이다.

◇신냉전 시대에 환기되는 구한말의 역사 교훈

한일합병 이전에 조선왕조는 이미 망해 있었다. 오랜 후진적 농업경제와 체제 모순이 극에 달했고, 세계사의 흐름에 지나치게 무지했다. 부동항을 찾아 남하하는 러시아, 이를 저지하려는 영국의 물러설 수 없는 대결 ‘그레이트 게임’이 벌어지고 있었다. 고종이 을미사변 후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가 장기체류(아관파천)한 것은 망해가는 제정러시아와 한 편임을 만천하에 드러낸 일이었다.

1884년부터 조선 선교사로 활동하다 주한 미국공사직에 오른 호러스 알렌이 1905년 을사조약 전후 상황에 관한 몇몇 문서를 남기고 있다. 이에 따르면 1903년 경 미국은 조선을 포기한 상태였다. 고종의 절대적 신임을 받던 알렌이 미·일의 친교를 안타까워하면서도 조선의 망국에 대해 "스스로 자초한 결과"라며 그 무능·부패를 증언하고 있다. "위대한 문명은 내부에서 스스로 붕괴하기 전까진 외부의 힘으로 무너지지 않는다." 세계적인 문명사가(史家) 윌 듀란트의 명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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