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조세 원리 맞게 세제 개편” 큰줄기...상속세 수술대 오를까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당선 일성으로 통합과 협치를 강조했다. 대선에서 승리한 국민의힘은 여당이 됐지만 의석수가 적다. 재보궐선거에서 확보한 4석을 더하더라도 110석에 불과하다. 여소야대 정국에서 172석의 더불어민주당 협조 없이는 ‘가시밭 길’을 걸어갈 공산이 크다.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위해서는 야당과의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것이 불가피한데, 윤 당선인과 국민의힘이 풀어야 할 과제는 산적해 있다.

지금 한국경제는 고물가·고금리·고환율 등 3고(高)에 더해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한 스태그플레이션의 어두운 그림자까지 드리우고 있다. 특히 국제유가가 배럴당 150달러를 넘어 오일쇼크 수준이 되면 세계경제가 침체 국면에 들어서고, 이는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경제에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다. 설상가상(雪上加霜)의 상황에서 한국경제의 성장엔진을 되살리려면 세제, 재정, 금융 분야의 과제 해결이 필수적이다. 상·중·하 3차례에 걸쳐 윤석열노믹스가 해결해야 할 한국경제의 과제를 알아본다. [편집자註]

윤석열 제20대 대통령 당선인이 10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 마련된 '국민의힘 제 20대 대통령선거 개표상황실'에서 당선 소감을 밝히고 있다. /연합
윤석열 제20대 대통령 당선인이 10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 마련된 '국민의힘 제 20대 대통령선거 개표상황실'에서 당선 소감을 밝히고 있다. /연합

"세금은 경제 활동에 들어가는 비용인데, 비용이 많아지면 경제 활동은 위축되기 마련이다.", "걷어서 나눠줄 거면 안 걷는 게 좋다." 이는 윤 당선인의 세금에 대한 인식인데, 윤 당선인의 말처럼 과도한 세 부담은 경제의 발목을 잡게 마련이다.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조세부담률이 높지는 않다. 조세재정연구원에 따르면 2019 기준 한국의 조세부담률은 20.1%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 회원국의 평균 조세부담률 24.9%보다 4.8%포인트 낮다. 문제는 조세 부담이 늘어나는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것이다.

조세부담률은 정부의 조세 수입을 국내총생산(GDP)으로 나눈 비율이다. 조세부담률이 높다는 것은 국민들이 벌어들인 소득에서 세금으로 납부하는 비중이 높다는 얘기다. 조세부담률은 지난해 20.2%에서 올해는 20.7%로 늘어날 전망이다. 문재인 정부 첫해인 2017년 조세부담률이 18.8%였던 점을 감안하면 뜀박질을 한 셈이다.

세금에 각종 사회보장기여금까지 더해 GDP로 나눈 국민부담률도 지난해 27.9%에서 올해 28.6%로 오른 후 매년 높아져 2025년에는 29.2%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문 정부가 펼쳤던 확장 재정의 청구서가 국민의 세 부담 증가로 돌아오는 모양새다.

누진세 과세체계상 세금은 고소득자, 고소득 법인일수록 많이 낸다. 이는 소득 불평등을 완화하는 효과가 있으며, 시중에 풀린 돈을 회수해 인플레이션 부담을 낮추는 역할도 한다. 복지 수요 등을 감안하면 어느 정도 세 부담이 늘어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고소득자, 자산가, 대기업 등 특정 계층에 대한 징벌적 성격의 과세는 민간의 활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된다. 실제 지난 2020년 기준 상위 10%의 대기업이 전체 법인세의 97%, 10%의 근로자가 소득세의 72%를 부담하고 있다.

지난해 서울 종로구 경실련에서 열린 '문재인 정부 임기중 서울 아파트 11만5천 세대 시세변동 분석결과 발표'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부동산 정책을 비판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
지난해 서울 종로구 경실련에서 열린 '문재인 정부 임기중 서울 아파트 11만5천 세대 시세변동 분석결과 발표'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부동산 정책을 비판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

문 정부 들어 3배 가까이 치솟은 종합부동산세는 위헌 논란에 휩싸일 정도다. 2017년 0.5~2.0%이던 종부세율은 지난해부터 1.2~6.0%로 올랐다. 농어촌특별세를 포함한 실효세율은 최고 7.2%에 이른다. 10년만 지나면 해당 부동산 가치의 90%를 잠식해 국가가 사유재산을 몰수하는 효과가 나타난다는 말도 나온다. 더구나 부동산 보유세를 재산세와 종부세로 이중 납부하는 나라는 주요국 가운데 한국밖에 없다.

4%이던 취득세 최고세율은 12%까지 뛰었고, 48%였던 양도소득세 최고세율은 75%까지 급증했다. 서울의 3주택자가 집을 팔면 지방세까지 포함해 양도차익의 82.5%를 세금으로 내야 한다.

직장인도 과도한 세금은 피해가지 못한다. 한국의 소득세는 8개 구간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OECD 35개국 가운데 우리나라보다 과표구간이 많은 국가는 멕시코, 스위스, 룩셈부르크 등 3개국에 불과하다.

지난 2016년까지 우리나라 소득세의 과표구간은 5개였지만 문 정부 출범 이후 8개로 늘었다. 기존 1억5000만원 초과 구간을 4개로 쪼개고, 각각의 구간에 더 높은 세율을 적용했다. 이 같은 과표구간 쪼개기는 고소득자를 겨냥한 ‘핀셋 증세’가 목적이다.

더욱 큰 문제는 대부분의 직장인 근로소득이 해당하는 과표구간은 그대로 둠으로써 사실상 정부가 증세 효과를 거두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1200만원 이하(세율 6%) △4600만원 이하(15%) △8800만원 이하(24%)는 지난 2008년 이후 15년째 변화가 없다.

이렇게 장기간 과표구간이 고정돼 있으면 소득 증가에 비해 소득세 증가분이 훨씬 커지는 ‘누진세 효과’가 발생한다. 물가 상승을 감안하면 실제로 더 벌어들인 돈은 많지 않지만 납세자 소득이 더 높은 과표구간으로 밀려 올라가면서 세 부담이 커지는 것이다.

한국은 상속세율도 OECD 회원국 가운데 선두를 달리고 있다. 최고세율이 50%로 일본의 55%보다 낮아 2위지만 최대주주가 기업 지분을 물려주는 경우에는 최대주주 할증평가 과세로 10%포인트 늘어난 60%의 상속세율이 적용된다. 최근 별세한 김정주 넥슨 창업자의 유가족이 6조원 이상의 상속세를 내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나치게 높은 상속세율은 장수기업의 탄생을 가로막는다. 개인에게 부과되는 상속세가 너무 높다보니 상속세를 내기 위해 기업 지분을 매각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세제를 시장통제 목적으로 활용하지 않고 조세 원리에 맞게 개편하겠다는 윤 당선인의 행보가 주목받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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