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명신
임명신

"재명 아빠, 개딸들이 지켜줄게." 이재명 전 후보(현 민주당 상임고문)를 지지하는 2030 여성층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 그녀들의 ‘막판 결집’은 대선 승패 양상에 영향을 줬다.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7’에 등장한 신조어 ‘개딸’은 ‘성격이 드센 딸’을 뜻한다. 이 상임고문을 적극 두둔하기 위해 ‘개싸움’도 마다 않겠다는 의미도 담겨 있다. 정치공작의 냄새가 물씬 나는 이 워딩의 소구력과 파급력을 만만히 봐선 안 된다.

그나저나 여성 팬덤에 유리할 ‘오빠’ 대신 왜 ‘아빠’일까. 대선 직전 이 후보가 ‘힙합 댄스 가수’ 차림으로 등장해 춤동작을 따라하기도 했으나 ‘썰렁’하게 끝난 바 있다. ‘좋은 그림’이 나왔던 문재인 대통령과 대비된다. 문 대통령의 경우, 군 복무 시절의 몇몇 ‘짤’(인상적인 사진)이 ‘달달한 마스크의 오빠’와 ‘상남자’ 이미지를 아우르고 있어 광범위한 호감을 이끌어냈다. "이니 하고 싶은 거 다해~" "꽃길만 걸으세요~" 여성 지지자들의 환호는 연예인 팬덤 수준이었다. 요컨대 "재명 오빠"가 "재명 아빠"로 대체된 것은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2030 여성 타깃’의 전략성도 분명해졌다.

대선 며칠 전 2030 여성 7400여 명이 이 후보 지지선언, 대선 바로 다음날 개설된 네이버 카페 ‘재명이네 마을’은 가입자가 14만명에 육박한다(게시글 14만개 이상). "우리 개딸님들, 진심으로 고마워요. 사랑합니다." 적극적인 화답이 이어졌다. 대선 직후 1주일내 신규 권리당원 11만7700명이 가입했으며 상당수는 2030 여성이었다고 민주당 비대위가 밝혔다. 입당 사유는 "민주당을 바꾸기 위해서"란다. 우리가 알던 ‘자유주의 중도 정당 민주당’은 이미 없다. 80~90년대 운동권 출신들에게 장악된 현재의 민주당이 있을 뿐이다. 그런 민주당을 이제 ‘페미’가 접수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다.

요즘 ‘페미’를 휴머니즘으로서의 페미니즘으로 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생물학적 성별 자체를 부정하는 ‘N젠더’가 거기 끼어 있다. 양성평등을 추구하던 페미니즘은 인간의 보편 가치를 확대해가는 과정이었다. ‘백인 중산층 여성’ 대상이라는 한계 역시 차차 극복되는 방향으로 진전했다. 용감한 선구자들의 헌신과 희생이 있었고, 그 혜택을 우리가 누린다. 남자형제들을 위해 고등교육의 기회를 포기해야 했던 5060 여성들의 상처와 박탈감은 이해하지만, 차별없이 성장한 고학력 젊은 여성들까지 ‘개딸’에 동참한다니 난감하다.

우리의 현실이다. 그녀들의 보편정서를 ‘도시 빈민’으로 표현하는 견해가 있다. 여유롭게 자랐어도 사회 현실 속 무력감 박탈감이 강하다는 것이다. ‘연애’와 ‘결혼’은 점점 힘들어진다. ‘페미’이슈를 정치투쟁에 이용하는 것은 젊은 남녀들을 더욱 더 갈라놓는 일이다. 2030 남녀는 자유롭게 만나 연애하고 티격태격하고 다시 화해하며 인생의 동반자로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남성은 추근댈 자유, 여성은 거절할 자유가 있는 세상’이어야 한다.

‘페미’들이 총공세를 벌일 ‘여성가족부’ 문제와 관련해서,‘ 철저한 감사(監査)’를 먼저 주장했어야 하지 않을까 싶은 아쉬움은 있다. 여가부 20여 년에 대한 ‘감사’가 선행된다면 여론이 자연스레 ‘폐지’ 쪽으로 움직였을 것이다. 여가부와 관련 시민단체들과 일부 학계 전문가들 사이에 어떤 식의 카르텔이 유지돼 왔는지, 국민혈세가 어떤 ‘정치운동’에 쓰였는지 드러날 터이기 때문이다. 여가부 존폐문제를 둘러싸고 조만간 발발할 ‘제2의 광우병 시위’를 우려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평화’ ‘환경’을 외치는 ‘민노총’ ‘전교조’ 화력까지 대거 동원될 것이다. 마음을 다지며 실질적인 대비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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