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숙 버킷리스트의 진실> 남정호, 진명출판사, 2022년 3월. /교보문고

<김정숙 버킷리스트의 진실>은 2019년 6월 칼럼 ‘김정숙 여사의 버킷리스트?’(중앙일보 2019년 6월 11일자)가 게재된 뒤 2년간 벌어진 청와대와 해당 언론사 사이의 법정 소송 및 필자의 투쟁 기록이다. 청와대로 상징되는 권력이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 어떤 거짓말과 술수를 동원했는지 고스란히 담겼다. 청와대를 두둔하는 입장의 매체들은 있었으나, 소송의 추이와 결과가 제대로 기록되지 못했다.

사건은 거의 잊혀졌지만, 반드시 따지고 기억해야 할 내용이 있다. 청와대가 거짓말을 동원해 언론의 정당한 행위를 압박했다는 게 사태의 엄중한 핵심이다. 영부인에 대한 의견 제시의 글(일간지 칼럼)에 청와대가 나섰다는 것부터 법률적으로나 상식적으로나 부적절하다.

해당 칼럼에 대해 청와대는 "잘못된 정보를 옳지 않은 시선에서 나열한 사실 왜곡"이라며 정정보도 청구에 이어 소송을 걸었다. 그렇게 시작된 법정 공방의 과정과 결과를 정리한 게 이 책 <김정숙 버킷리스트의 진실>이다. 재판 내용을 따라가다 보면, ‘버킷리스트’의 진실에 한 걸음 더 다가서게 된다. 청와대가 법정에 제출한 자료를 통해 새로운 사실이 밝혀진 덕택이다.

책 말미에 전·현직 영부인 4명의 해외 순방 일정을 비교한 도표가 실려 있다. 남편의 순방에 동행한 영부인이 현지에서 무엇을 했는지 한눈에 볼 수 있다. 이 책의 저자는 해당 칼럼의 필자, 남정호 중앙일보 논설위원이다. 2019년 문 대통령 내외가 노르웨이 방문 때 하루를 ‘베르겐’에서 보냈다는 보도를 접하고 칼럼을 집필했다. 대통령 내외의 ‘외유’성 해외방문 행보가 이미 몇 차례 지적된 바 있지만, 그냥 묻힐 수 있는 사안이었다.

그러나 ‘베르겐’이 북유럽의 손꼽히는 절경이자 ‘솔베이지의 노래’로 유명한 노르웨이 국민작곡가 에드바르 그리그의 기념관이 있다는 것, 단 이틀간의 국빈방문 일정에서 수도 이외의 도시를 찾는 게 매우 이례적인 일임을 알고 있는 언론인이었기에 저자는 남다른 의문을 품을 수 있었다. 결국 노르웨이가 자랑하는 해양연구소 시찰 대신, ‘청와대의 요구로’ 대통령 내외의 베르겐 여행이 성사됐음을 밝혀냈다.

법정 공방 과정에서 저자는 대통령의 해외순방 일정에 영부인의 취향과 바람이 반영됐다고 볼 만한 추가 증거들을 만난다. 해외순방 원칙(=국익 극대화)과 동떨어진 일정이 짜였다는 구체적 정황들이다. 1)청와대는 노르웨이의 관례에 따라 ‘베르겐’에 갔다고 주장했으나, 거짓이었다.

당시 문 대통령의 일정대로라면 수도 오슬로에 머무는 게 맞다. 2)‘그리그의 집’ 방문 역시 노르웨이 측의 간곡한 권유 때문이었다는 청와대 주장 역시, 물증에 따르면 거짓일 가능성이 높다. 3)해외방문 시 현지 공관이나 교민들 격려에 힘썼던 전임 영부인들과 달리, 김 여사는 주로 미술관·박물관을 찾았음을 보여주는 구체적인 자료가 나왔다.

청와대는 대통령 내외 해외순방에 관한 언론의 비판을 겸허히 수용하기는 커녕 교묘하게 왜곡된 정보로 진실을 호도했다. ‘장문의 청와대 변명을 게재’하는 방식으로 타협하지 않고 끝까지 소송에 맞선 게 저자의 결기였다.

"이 책을 통해 내가 발견한 진실의 몇 조각을 세상에 알리려 한다. 문재인 대통령 내외가 어떻게 해외를 돌아다녔는지, 그리고 이를 제대로 보도하려 한 언론을 어떻게 핍박했는지, 국민이 온전히 깨닫기를 바란다." 머리말에서 저자가 하는 말이다.

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의 해외방문과 관련된 비정상적 행태가 누구의 지시였는지 알 수 없다. 문 대통령 부부일 수도, 이들의 환심을 사고자 한 측근 또는 관계자들일 수도 있다. 다만 어떤 편법과 비리가 저질러졌는지 밝히고 마땅히 그에 따른 책임을 물어야 한다. 결코 가혹한 태도가 아니다. 국민으로서 한결 같은 마음이자 정당한 권리다.

2018년 11월초 대통령 전용기(공군 2호기)를 혼자 타고 간 김정숙 여사의 인도행도 빼놓을 수 없다. ‘퍼스트레이디 외교’를 자임했으나, ‘인도 정부의 간곡한 요청’이라는 명분은 사실이 아니었다. 허황옥 기념공원 착공식과 힌두교 축제 ‘디왈리’ 개막식 참석이 공무였고, 인도 정부가 당초 기대한 것은 외무부장관 혹은 문화체육부 장관이었다는 게 나중에 알려졌다.

어찌됐든 영부인은 그 몇달 전 방문 때 갈 기회를 놓친 인도의 대표 명소 ‘타지마할’ 관광을 할 수 있었다. 전용기 한번 뜨려면 막대한 혈세가 든다. 미국은 전용기에 공무 외 대통령 가족이 탈 경우 1등석 해당 비행기 삯을 내게 한다.

김정숙 여사의 패션 또한 지나치기 어렵다. 역대 영부인들에 비해 과도한 비용이 지출된 것으로 짐작되는 부분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영부인의 패션은 그 자체가 국격이다. 고급스러우면서 본인에게 잘 어울리고 때와 장소에 맞는 차림새여야 하는데, 김 여사의 경우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취임하면 일상용품 비용까지 자기 돈으로 하겠다던 문 대통령이었으나, 청와대는 ‘여사님 패션’ 관련 내역을 공개하라는 법원의 명령을 거부했다. 19대 영부인 김정숙 여사가 보여 온 자세는 남편이 쌓아 온 이미지, 그에 기반한 국민의 기대와 크게 동떨어져 있다.

지난달 서울 행정법원은 납세자연맹이 대통령 비서실장을 상대로 낸 정보공개 거부처분 취소소송 1심 판결에서, 청와대 비서실의 2018년 7월 정보 비공개 결정 처분을 취소시켰다(정상규 부장판사). 아울러 특활비 지출결의서와 집행지침, 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 의전 비용 관련 예산 편성 금액과 일자별 지출 내용 등을 납세자연맹에 공개하도록 하는 한편, 소송비용을 비서실이 부담하도록 했다.

"특활비 관련 정보가 비공개 대상 정보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공개를 거부한 처분은 위법하다.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해하거나 공정한 업무 수행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보이지 않는다"는 게 판결문의 요지다. 청와대는 이에 불복, 항소했다. 퇴임 후라도 결과를 지켜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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