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핍박받는 자들을 도우며 순교의 영성을 배우다, 폴리 현숙 VOMK 대표

4대째 신앙 집안 태어나 ‘선교사’ 꿈궜지만...두 번의 결혼 실패와 연단의 시기 거쳐
꿈으로 북한 사역 알려 준 하나님...“한국에 핍박받는 기독교인들 알리기 시작했죠”
20년간 은밀하게 해 오며 2년전 풍선 사역으로 처음 알려져...“코로나도 방해 못해”
동역자 38명 순교 아픔도 겪어...“그분들 못다한 것들 다 해야 하는 것이 저의 의무”
“핍박받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순교의 영성’ 배워...‘구름같은 허다한 증인들’ 만났죠”
“‘증인’되라는 것은 ‘순교자’되라는 것...교회 한 몸으로 ‘갇힌 자’들을 항상 생각해야”

지난 28일 오후 VOMK 사무실에서 자유일보와 인터뷰 중인 폴리 현숙 대표. /곽성규 기자
지난 28일 오후 VOMK 사무실에서 자유일보와 인터뷰 중인 폴리 현숙 대표. /곽성규 기자

“저는 누가복음 17장 7-10절에 나오는 종입니다. 자격도 없는 무익한 종에게 하나님이 사역하는 특권을 주셨고, 하나님이 제 인생에서 이루시고 싶은 선한 목적을 이루는 것이 영광입니다. 그리고 그 길이 사망의 골짜기를 다니는 것이어도, 제가 순교자들에게 빚진 삶을 사는 것에 대한 감사 이외에 더 할 말이 있겠습니까.”

지난 28일 오후 서울 성북구에 위치한 한국 순교자의소리(Voice of the Martyrs Korea, VOMK) 사무실에서 만난 폴리 현숙 VOMK 대표는 하나님 앞에서의 자신에 대해 누가복음 17장에 나오는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스스로 해야 할 일을 했다고 여기며 무익하다고 일컫는 종’이라고 표현했다. 

4대째 기독교인 집안에 태어나 어렸을 적부터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믿고 선교사를 꿈꿨던 그녀였지만, 두 번의 결혼 실패 등 인생의 굴곡도 많이 겪었다. 하지만 그 모든 연단 과정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더 분명하게 알 수 있었고, 지금의 VOMK 사역을 통해 전세계 핍박받는 그리스도인들을 도우며 주님앞에 충성된 종으로써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선한 뜻을 이뤄가고 있다. 자유일보가 폴리 현숙 대표를 만나 그녀의 신앙과 VOMK와 함께한 여정에 대해 물었다.

◇4대째 신앙 집안 태어나 ‘선교사’ 꿈꾸던 청년, 두 번의 결혼 실패와 연단의 시기를 거치다

-예수님을 언제 처음 만나셨나요.

“4대째 기독교인입니다. 엄마가 할머니 손 잡고 개성에서 교회를 다니셨고, 부모님은 1948년교회에서 만나 결혼식도 교회에서 하셨어요. 모태신앙으로 집, 학교, 교회만 다녔습니다. 어렸을때부터 하나님이 당연히 살아계신다고 믿어 중학교 때 세례도 받았구요. 대학시절엔 집이 부유해서 예쁘고 화려하게 차려입고 다녔지만 연애도 하지 않았고 수련회에서 하나님께 선교사가 되겠다고 서원했습니다. 그 기쁨이 너무 커서 나눴다가 친구들이 저를 ‘선교사’라고 놀리기도 했어요.

폴리 현숙 대표는 "대학시절 하나님께 선교사가 되겠다고 서원하고 그 기쁨이 너무 커서 친구들에게 나눴다가 ‘선교사’라고 놀림받기도 했다"며 웃었다. /곽성규 기자
폴리 현숙 대표는 "대학시절 하나님께 선교사가 되겠다고 서원하고 그 기쁨이 너무 커서 친구들에게 나눴다가 ‘선교사’라고 놀림받기도 했다"며 웃었다. /곽성규 기자

그렇지만 예수님을 진짜 깊이 만나 제 삶을 주님께 헌신하게 된 것은 남편인 에릭 폴리 목사님을 만나기 1년 전이었습니다. 당시 하나님께 더 이상 세상적으로 살지 않겠다고 약속했고,  하나님의 도구로 저를 사용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어요.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선교를 하려면 여자 혼자의 몸으로는 어렵다고 생각해 남편을 위한 기도를 시작했고, 몇 달 후 하나님이 목사님을 남편으로 보내주셔서 지금 20년 넘게 귀한 사역의 특권을 누리고 있습니다.”

-젊어서부터 하나님을 잘 믿으셨을 것 같은데, 인생의 힘든 일은 없으셨나요.

“제가 미국에 1985년도에 갔고 미국에서 30년 살았어요. 에릭 폴리 목사님과는 재혼인데, 그 이전의 두 번의 결혼생활의 아픔이 있습니다. 첫 결혼은 재미동포와 중매로 결혼했는데 사기결혼을 당해 1달만에 서류상으로 등록도 못한 채 끝났습니다. 부모님께 효도하고 싶어서 그전까지 데이트도 안 하고 첫 중매로 시집을 갔지만 하나님이 제 결혼을 실패하게 했다고 생각해 하나님께로부터 도망가려고 했어요. 

그래서 두번째 결혼은 비기독교인과 결혼했다가 1남 1녀를 데리고 결국 이혼했습니다. 제 인생에 대해 하나님께 무릎을 꿇었고, 하나님이 이혼을 원치 않으신다는 것을 알기에 성경에 나와 있는대로 노력했지만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마음이 편합니다. 이후 하나님 미국 생활 15년째에 에릭 폴리 목사님을 켈리포니아에서 만나 미국에서 한국을 오가며 사역을 하다가 남편이 지하사역으로 한국 기독교를 도울 수 있다고 해서 2016년에 한국으로 들어왔죠.”

-에릭 폴리 목사님을 만난 것이 놀라운 기도 응답이셨다구요.

“두 번의 이혼 후 사실 결혼은 정말 하고 싶지 않았지만, 선교를 하기에 여자 혼자 몸으로 아이들을 데리고는 어렵겠다고 생각해 미래 남편에 대한 기도를 시작했습어요. 저의 조건은 4가지 였는데,  첫 번째는 목사(1순위는 목사, 2순위는 선교사, 3순위는 장로)였는데, 하나님이 목사나 선교사 아내로 제가 부적합하다면 장로님이라도 주시면 남은 인생을 하나님께 봉사하면서 살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폴리 현숙 대표는 "남편 에릭 폴리 목사를 만나기전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했다"고 했다. /곽성규 기자
폴리 현숙 대표는 "남편 에릭 폴리 목사를 만나기전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했다"고 했다. /곽성규 기자

두 번째로 미국인인데, 미국인들이 남의 아이들을 잘 키운다고 들었기 때문입니다. 세번째는 잘 생기고 키는 180미터인 사람이었습니다. 제가 원래 잘 생긴 사람을 좋아하지만, 못 생기면 외도를 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경험상 아니었기 때문에 이왕이면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을 만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네 번째는 아이가 있는 싱글인데, 저도 아이들이 있기 때문에 양심상 총각을 원하지는 못했어요. 그리고 더 구체적으로 이전 아내가 악녀라서 이혼한 사람을 달라고 기도했는데, 이혼이란 서로의 갈등을 해결하지 못한 결함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돼, 차라리 아내가 악녀라는 이유로 이혼한 사람이 더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놀랍게도 하나님은 저의 이 기도제목에 100% 응답하셨습니다. 사실 남편 목사님은 저를 만나기도 전에 ‘이 여인을 선물로 받으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확신하고 나오셨습니다. 우리는 서로 1남 1녀의 비슷한 연령의 자녀가 합쳤고, 지난 20년동안 한번도 아이들이 싸운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배우자와 성경적인 결혼생활을 경험했습니다.”

폴리 현숙 대표와 남편 에릭 폴리 목사의 결혼식 직후 모습. /폴리 현숙 대표 제공
폴리 현숙 대표와 남편 에릭 폴리 목사의 결혼식 직후 모습. /폴리 현숙 대표 제공

◇남편 꿈으로 북한 사역 알려 준 하나님...“한국에 핍박받는 기독교인들 알리기 시작했죠”

-VOMK는 처음에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한국 순교자의소리는 폴리 목사님와 제가 결혼하면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남편은 결혼 당시 미국 기독교 사회에서 기금모금과 마케팅으로 유명했기 때문에 저의 역할은 폴리 목사님이 더 큰 일을 할 수 있도록 뒤에서 기도와 요리로 지원하라고 결혼한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결혼하고 2달 후 남편에게 꿈으로 우리 부부가 모든 것을 헌신하고 북한 지하교인을 섬길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셨어요.

당시 폴리 목사님은 ‘닫힌 나라에 성경보내기’ 프로젝트를 만들었는데, 미국 순교자의소리에서 이 프로젝트를 계약하기 위에 저희쪽에 회의를 하러 왔다가 한국인인 저를 보고 북한사역을 해 달라고 요청하면서 저희 부부의 북한사역이 시작됐어요. 

미국 순교자의소리는 북한에 풍선을 날려 성경을 보내는 사역 등을 15년 이상 지원하고 있었는데, 북한 사역자료가 모두 한국어로 돼 있어서 누군가 한국어를 아는 사람이 절실했던 것이죠. 그 때 순교자의소리의 북한사역은 북한 내부와 국경에 나온 북한 지하교인을 대상으로만 했습니다. 남편과 저는 2000년 중반부터 북한 사역을 전 세계에 퍼져있는 북한 사람들(남한의 탈북민, 전 세계에 퍼져있는 북한 노동자, 중국에 팔린 북한여성 등)까지 포함해서 했습니다.”

 폴리 부부와 VOMK 동역자들의 모습. 사진 맨 왼쪽의 중국 기독교인 리바이광 변호사는 핍박받는 그리스도인들을 돕다가 결국 순교자가 됐다. /VOMK 제공
 폴리 부부와 VOMK 동역자들의 모습. 사진 맨 왼쪽의 중국 기독교인 리바이광 변호사는 핍박받는 그리스도인들을 돕다가 결국 순교자가 됐다. /VOMK 제공

-‘순교자의소리’라는 단체는 미국을 포함해 전 세계에 설립 돼 있나요.

“순교자의소리는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15개 국가에 설립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선교사를 파송하는 단체가 아니라 기독교를 핍박하는 70개 국가의 현지 기독교인들과 직접 동역하는 단체에요. 인도주의적 사역, 인권 사역, 구출 사역이 아니라 전도와 양육에 집중된 복음 사역만 하기 때문에 예산을 사용할 때도 ‘전도하는가? 양육인가?’에 답할 수 있어야 예산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VOMK는 어떤 사역에 주력해 오셨나요.

“미국에 살면서 미국과 한국에 사무실을 가지고 사역하다가 한국으로 이사 온 2016년부터는 한국 성도들에게 핍박받는 기독교인들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현재는 우크라이나 기독교인들이 전쟁 속에서도 복음을 전하고 순교하는 신실한 증인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어요. 이를 통해 우크라이나 기독교인들이 목숨을 걸고 복음을 전하려는데 필요한 도구(성경이나 복음자료)를 한국 성도들이 지원하도록 다리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많은 교회와 성도들에게 VOMK가 큰 도움을 주게 됐습니다. 한국 성도들이 온라인 무료 상영하고 있는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 영화를 통해 핍박에 대한 준비를 생각하게 되었고, 영화 ‘사비나’를 통해 기독교의 용서에 대해 큰 교훈을 배웠고, ‘지하교회 시리즈’ 책을 통해 핍박을 준비하는 실천적인 준비를 할 수 있었고, ‘마르크스와 사탄’이라는 책을 통해 마르크스를 사상가가 아닌 영적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해요.”

폴리 현숙 대표의 해외 방문 사역 모습. /VOMK 제공
폴리 현숙 대표의 해외 방문 사역 모습. /VOMK 제공

◇20년간 은밀하게 해 왔던 사역, 2년전 풍선 사역으로 처음 알려져...“코로나도 방해 못했죠”

-특별히 북한 지하교회를 돕는 사역은 보안 등의 문제 때문에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지난 20년 간의 북한 사역은 전 세계 기독교인들의 헌금으로 조용히 은밀하게 보안 속에서 해 왔습니다. 2년 전 성경을 북한에 풍선으로 보내는 풍선사역 때문에 남한 기독교인들에게 처음으로 VOMK가 알려지게 됐지만, 사실 전 세계에서 복음 사역으로 가장 큰 북한 사역을 하는 곳이 저희 순교자의소리에요.

저는 하나님이 우리 부부에게 북한사역을 하게 하신 것은 결국 한국기독교를 위함이라고 생각합니다. 북한 지하교회를 정확히 이해해야 한국기독교의 정체성과 방향을 이해할 수 있거든요. 저희가 이야기하는 북한 지하교인은 북한 내부의 다른 북한 사람에게 전도를 받아서 예수님을 믿게 된 사람들인데, 이 사람들을 전도한 사람을 계속 거꾸로 추적하다 보면 존로스 성경으로 가장 처음 복음을 알게 된 첫번째 세대 기독교인이 나옵니다. 순교자의소리는 북한 지하교인을 말할 때, 이 부류를 말합니다.

조선은 선교사가 도착하기도 전에 성경 하나만으로, 하나님 말씀 하나만으로 복음을 전해진 나라였어요. 현재의 한국 교회는 그런 성경의 능력을 잃어버린 것 같아요. 하나님은 그분의 말씀에 온전히 거하시기 때문에 성경 하나를 줘도 하나님이 성경을 받은 사람을 변화시키시고 그 사람을 통해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역이 다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어야 합니다.”

폴리 현숙 대표는 "하나님이 성경을 받은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곽성규 기자
폴리 현숙 대표는 "하나님이 성경을 받은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곽성규 기자

-그렇지만 선교에 물질도 필요하지 않습니까.

“돈과 자유는 좋을 수도 있지만, 그것 때문에 하나님을 덜 신뢰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북한 사역의 현장에서 일하면서 너무도 많은 선교사들이 돈으로 북한 사역을 한 것을 눈으로 똑똑히 봤어요. 그러다보니 북한 사람들은 한국교회를 하나님을 가르쳐주는 곳으로 생각하지 않고, 자신이 필요한 돈과 교육과 물품들을 도와주는 곳 쯤으로 생각합니다. 슬픈 일입니다. 

탈북민 목회자들과 대형교회가 협력해 ‘북한에 1000개의 교회 세우기’ 같은 프로젝트를 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에 집중한 결과에요. 한국 기독교는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까지 성경 번역에 참여시켜 그 과정에서 기독교인을 만든 존로스 선교 전략으로 정체성을 다시 찾아야 합니다. 조선의 기독교인들은 하나님 말씀의 초석 위에 세워진 성경의 사람들(Bible people)이었어요.”

-코로나 사태 이후 북한 사역이 어려워졌을 것 같은데요.

“사실 코로나는 방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물론 풍선사역 때문에 겉으로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사실 현장 사역은 하나님의 나라가 더 확장되는 기회였어요. 이번일로 제가 깨달은 것은 우리는 중단하더라도 하나님은 절대로 중단하지 않으시기에 핍박과 어려움이 와도 하나님이 있으라는 자리에 있으면 하나님이 도구로 사용하신다는 것과, 사역은 제가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코로나 같은 외부 요인보다 오히려 사역을 할 때 가장 큰 방해가 되는 것은 내 안에 있는 것들입니다. 어려움이 올 때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두려워하는 마음, 세상의 주인인 사탄의 조정을 받는 원수를 사랑하지 못하는 마음 등입니다. 이런 것들과 싸워야 했어요. 로마서 8장 28절처럼 하나님이 그러한 어려움들도 모두 사용하셔서 선한 목적으로 인도하신다고 약속하셨는데, 자꾸 의심하고 두려워하고 후회하는 마음이 문제에요. 이런 방해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말씀 안에 우리를 향한 모든 약속을 적어놓으셨어요.”

폴리 현숙 대표가 성북구 VOMK 사무실 벽면에 붙어있는 순교자와 관련된 성경 요한계시록 말씀을 가리키고 있다. /곽성규 기자 
폴리 현숙 대표가 성북구 VOMK 사무실 벽면에 붙어있는 순교자와 관련된 성경 요한계시록 말씀을 가리키고 있다. /곽성규 기자 

◇동역자 38명의 순교 아픔도 겪어...“그분들이 못다한 것들 다 해야 하는 것이 저의 의무”

-그간 VOMK를 이끌어 오면서 어떤 점이 가장 힘드셨나요. 

“가장 힘들었을 때는 함께 동역한 분들이 순교했을 때입니다. 2007년 첫 번째 순교자들 30명이 북한 내부에서 진행한 사진관 프로젝트 중 전부 잡혀서 처형당했습니다. 그 때 북한 정부가 전 세계에 내보낸 기자회견을 보고 엉엉 울었습니다. 그 후 다른 프로젝트에서 8명의 순교자가 더 나왔어요. 이젠 저도 두렵지 않습니다. 동역자들이 순교했는데 저도 그리스도를 위해 죽을 수 있다면 영광입니다. 저는 먼저 간 동역자들에게 빚진 자이며, 그분들이 못다한 것들을 다 해야 하는 것이 저의 의무라고 생각해요.”

VOMK 동역자 중 순교한 조선족 한충렬 목사(왼쪽)와 VOMK 사무실 벽면 순교자 연대 기록에서 2007년 VOMK 첫 순교자들 기록을 가르키고 있는 폴리 현숙 대표. 사진의 맨 오른쪽 초상화는 VOMK 동역자 중 순교한 중국 기독교인 리바이광 변호사다. /VOMK 제공
VOMK 동역자 중 순교한 조선족 한충렬 목사(왼쪽)와 VOMK 사무실 벽면 순교자 연대 기록에서 2007년 VOMK 첫 순교자들 기록을 가르키고 있는 폴리 현숙 대표. 사진의 맨 오른쪽 초상화는 VOMK 동역자 중 순교한 중국 기독교인 리바이광 변호사다. /VOMK 제공

-공부를 열심히 하셔서 학위도 많이 받으셨습니다. 원래 학자가 꿈이셨던 건가요.

“제가 석사 3개와 박사학위를 얻기는 했는데, 하나님의 사역을 잘 해보려고 공부했었어요. 폴리 목사님을 만나 사모님이 되니 미국 여성들이 저에게 와서 상담을 하려 할 때 당황했습니다. 당시 저도 제 자신의 인생에 대한 해석도 잘 안 되는 상황이라 학교에 가서 상담학 석사 과정을 공부하며 다른 사람들을 도우려고 했어요. 이후 단체의 대표를 맡게 되면서 또 능력이 안 된다고 생각하니까 리더십으로 박사 공부를 했어요. 

저의 학위 목적은 전부 사역을 잘 감당하기 위한 거였어요. 그런데 하나님은 제 상담 공부를 이용하셔서 핍박받는 기독교인들에게 ‘트라우마 극복 치료법’을 강의로 돕게 하셨습니다. 이번 6월에 예정인 우크라이나 난민들을 위한 강의도 지금 준비하고 있어요. 하나님의 계획은 저의 계획과 다른 것 같습니다. 우리가 최선을 다해서 주어진 일들을 준비하면 하나님이 언젠가는 사용하시는 것 같아요.”

폴리 현숙 대표의 해외 방문 사역 중 핍박받는 성도를 위한 트라우마 치유 강의 모습. /VOMK 제공
폴리 현숙 대표의 해외 방문 사역 중 핍박받는 성도를 위한 트라우마 치유 강의 모습. /VOMK 제공

-특히 전략적 리더십 박사 학위를 받으셨는데요. 대표님이 가진 리더십은 어떤 것인가요.

“저는 목자의 리더십만 있습니다. 사랑은 희생이 따르는 것입니다. 요즘 한국교회를 보면 교회가 예수님의 진정한 사랑을 세상에 가르쳐야 하는데, 세상이 교회로 들어와 겉모습에 치중하는 사랑을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의 리더십은 사람의 마음에 집중합니다. 마음의 방향이 하나님께 잘 맞춰져 있으면 그 다음은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또한 진정한 기독교 공동체를 가르쳐 주려 노력합니다. 요즈음에는 이혼한 부모의 자녀들도 많고, 혼밥도 유행하고, 독립적인 문화가그리스도의 한 몸에 대한 이해를 흐리는 것 같아요. 죽어도 함께 죽고 살아도 함께 사는 기독교 공동체를 가르쳐주고 실천하게 한다면, 하나님이 전 세계의 기독교인들을 한 몸으로 이루시어 하시려는 목적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핍박받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순교의 영성’ 배워...‘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 만났죠”

-VOMK를 운영해 오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은 간증 하나만 해 주신다면.

“사람들은 제가 현장에 다니면서 사람들에게 강의하고 가르치러 다닌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한 몸이란 서로 주고 받는 거에요. 핍박받는 기독교인들은 교리나 트라우마 극복치료법 같은 것은 우리에게 배우지만, 순교의 영성은 오히려 그들에게 저희가 배웁니다. 그들은 우리가 범접할 수 없는 순교의 영성을 가졌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으로는 정말 가진 것이 너무 없는데 어디서 그렇게 귀한 영성이 나오는지 놀랍습니다. 

몇 년 전 에리트레아 기독교인들의 훈련을 위해 에티오피아 국경에 갔다가 순교자 사모님들 몇 명을 만났었습니다. 남편들이 다 에리트레아에서 순교 당해서 아이들을 위해 에티오피아에 난민으로 오신 분들인데, 생활고에 허덕이는 삶 속에서도 ‘아멘, 할렐루야!’를 힘차게 외치던 그분들은 하나님이 히브리서 12장1절에서 말씀하신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의 모델이셨습니다. 저는 항상 그분들을 생각하면서 저의 정체성을 찾아요.”

폴리 현숙 대표는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의 모델같은 순교자들의 가족들을 생각하면서 저의 정체성을 찾는다"고 했다. 사진은 해외에서 트라우마 치유 상담 중인 폴리 현숙 대표의 모습. /VOMK 제공
폴리 현숙 대표는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의 모델같은 순교자들의 가족들을 생각하면서 저의 정체성을 찾는다"고 했다. 사진은 해외에서 트라우마 치유 상담 중인 폴리 현숙 대표의 모습. /VOMK 제공

-지난해 말 탈북민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웅의 여정’이란 책을 쓰셨습니다.

“탈북민들의 삶 이야기를 들으면 너무 슬프고 고통스러운 희생자들 이야기였어요. 그들은 북한에 있을 때 어려서부터 100개 이상의 김일성 이야기를 외워야 하고, 학교에서도 김일성에 대한 연설만 해야 했고, 잘못을 하면 김일성의 10대 원칙에 의한 ‘생활총화’를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북한에 있는 모든 북한사람들은 김일성 하나만이 영웅입니다. 

탈북민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모두가 똑같이 ‘희생자 이야기’를 말합니다. 그들의 삶 주인공은 자신이 아니라 피해를 준 사람들인 거죠. 성경 말씀대로 하나님은 고통이나 고난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선한 목적을 이룬다는 로마서 8장 28절을 이해시켜주면서, 탈북민들에게 하나님이 영웅의 이야기를 그들에게도 주었다는 것을 믿게 하고 싶어서 이 책을 내게 됐어요.

지금 남한 내 탈북민들의 자살률이 16%에 이릅니다. 그들을 살리려면, 탈북민 각자가 자신의 삶 속에서 하나님이 계획하신 영웅의 이야기를 발견하도록 코칭으로 돕고, 그렇게 살도록 인도해줘야 합니다. 어려움이 와도 자신에게 주신 하나님의 계획과 자신의 영웅 이야기를 생각하면서 이길 수 있는 힘이 길러지도록 해줘야 해요.”

◇“‘증인’되라 하신 것은 ‘순교자’되라 하신 것...교회 한 몸으로 ‘갇힌 자’들 항상 생각해야”

-대표님에게 ‘순교’란 어떤 의미인가요.

“‘순교자’의 헬라어 원어는 ‘증인’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사도행전 1장 8절에서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명령하신 것은 우리에게 모두 증인, 즉 ‘순교자’가 되라고 명령하신 거에요. 

초대 기독교 역사에서는 순교자를 빨간색, 녹색, 초록색, 세 가지 색으로 표현했습니다. 빨간색 순교자는 신앙 때문에 폭력적인 죽음을 당한 기독교인이고, 녹색 순교자는 나 자신에게 죽고 내가 원하는 목적과 꿈과 가치에 죽은 기독교인이고, 흰색 순교자는 세상이 나를 위해서 세워놓은 가치와 문화(돈, 세상적인 유행 등)에 죽는 기독교인을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선택해야만 가능한 빨간색 순교자로 부름받지 않았다면, 모두가 녹색 순교자와 흰색 순교자로 살아야 합니다. 이 세상 살 동안 매일 매 순간 나에게 죽고 세상에 죽어야, 죽음을 통해 십자가를 통과할 수 있습니다. 교회만 간다고 기독교인이 아니라 내가 생각하고 결정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에 대해 죽어야, 내 안에 있는 그리스도만 살게 되는 순교자의 삶이 되고 진정한 기독교인이 되는 것이죠.”

성북구 VOMK 사무실 벽면의 누적 순교자 집계 추정치 기록을 가리키고 있는 폴리 현숙 대표. /곽성규 기자
성북구 VOMK 사무실 벽면의 누적 순교자 집계 추정치 기록을 가리키고 있는 폴리 현숙 대표. /곽성규 기자

-마지막으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대한민국 크리스천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전 세계에 현존하는 모든 기독교인들이 모두 합쳐야 그리스도의 한 몸을 이룹니다. 그 얘기는 핍박받는 기독교인들도 우리의 한 형제·자매라는 의미에요. 순교자의 소리는 히브리서 13:3(너희도 함께 갇힌 것 같이 같힌 자를 생각하고 너희도 몸을 가졌은즉 학대 받는 자를 생각하라)의 말씀 위에 세워졌습니다. 여기 말씀의 ‘기억하라(re-member)’에서 ‘member’란 우리 몸이 어디와 연관이 있는지, 그 몸과 그리스도의 한 몸을 이루라는 의미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 가족이 학대받고 감옥에 가면 우리가 잠도 못 자고 밥도 못 먹는 것 같이 학대받는 자와 감옥에 갇힌 자를 생각하라는 뜻인거죠.

그래서 VOMK는 한국 성도들이 히브리서 13장 3절을 잘 실천해 마태복음 25장의 마지막 심판을 준비하도록 돕습니다. 예수님은 ‘너희 형제자매 중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나에게 한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면서 우리를 양과 염소로 나누셨습니다. 우리 한국 성도들은 마지막 심판 때 예수님의 이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해요. 그래서 VOMK는 매달 전 세계 핍박받는 기독교인들의 이야기와 기도제목을 무료 소식지를 보내는 것으로 한국 성도들을 돕고 있어요.

한국 성도들이 소식지를 통해 핍박받는 기독교인들의 ‘구름에 둘러쌓인 허다한 증인들’(히브리서12:1)의 신실한 증인 이야기로 자신들의 삶에 큰 도전과 배움을 얻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독교인이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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