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서울 락스퍼 국제영화제 개막작 ‘시대혁명’(周冠威Kiwi Chow 감독).
제2회 락스퍼국제영화제 폐막작 ‘잠입’(마즈 브뤼거 감독, 2020). 북한 잠입을 위해 10년간의 임무를 수행하는 평범한 두 남자의 스릴러로, 덴마크 영화제 베스트 다큐멘터리상을 수상한 바 있다.

24~29일 제2회 서울 락스퍼 국제영화제(Seoul Larkspur International Film Festival, SLIFF)가 열린다(세종문화회관·CGV피카디리·서울시청 광장). 자유일보는 공식 후원사의 하나다. 자유·인권을 내세운 ‘인권영화제’(2021년 6월4~6일)로 출범해, 올해 국제영화제로 승격됐다.

락스퍼(참제비꽃)란 ‘자유·정의’를 꽃말로 하는 향초 이름이다. 개막작은 ‘시대혁명’(周冠威 Kiwi Chow 감독), 즉 2019년 홍콩 시위 당시 평범한 시민들의 영웅적 투쟁을 그린 장장 2시간 30분짜리 다큐멘터리다. 2021년 타이완(臺灣)의 유명 영화상(제 58회 금마장)을 수상했다. 시사회 상영 중 흐느낌과 탄식이 속출했다고 전해진다. 우리나라 관객들은 이 영화를 얼마나 자기나라 일로 받아들일지 주목된다.

2019년 6월 ‘범죄자 인도법’ 개정으로 촉발된 홍콩 시위는 10개월간 격렬하게 이어졌다. ‘하나의 중국’ 원칙에 반하는 성격이었기에 당국으로부터 무자비하게 진압당했다. 중국의 권위주의·전체주의적 경향이 강화되는 가운데, ‘범죄자 인도법 개정’과 ‘국가안전법’은 ‘자유·민주 홍콩’을 파괴할 결정타로 받아들여졌다. 당국의 판단에 의해 언제 어디서든 실종되거나 반인권적 상황에 직면할 수 있는 시대가 됐음을 실감한 것이다. 국외로 도피한 범죄자의 인도는 정당한 요구 같지만, ‘정치적 사안’에 악용될 수 있다. 역사적 체제적 신뢰를 쌓은 나라들끼리만 ‘범죄자 인도’ 조약이 맺어지는 이유다.

이번 SLIFF 개막작 선정의 의미가 크다. 비공식 상영에 그쳤던 ‘시대혁명’을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지난 3년, 홍콩문제에 침묵하고 ‘시대혁명’을 외면한 것은 중국의 눈치를 살폈기 때문이다. 우리사회 주류에 ‘반미·반일’의 ‘민족해방론’자들이 많다는 게 실은 더 근본적이다. ‘민족’이 지고의 가치인 사람들에게 ‘하나의 중국’ 원칙은 논리적으로 넘어서기 힘들다. 한자문화권에서 ‘내이션’(Nation) ‘내셔널리즘’이 ‘민족’ ‘민족주의’로 번역되면서 다분히 혈연적 개념으로 자리잡았다는 배경이 있다. ‘내이션’은 ‘근대적 가치(자유·민주)공통체’로 재정의 돼야 마땅하다. 서구의 중세질서가 해체될 때 근대국가(Nation State)의 성립을 이끈 집단이 대체로 혈연·언어 공동체와 겹쳤을 뿐, 그게 본질은 아니었다. 스위스·벨기에 역시 하나의 ‘내이션’이지만 혈연·언어는 단일하지 않다.

아편전쟁(1840) 전후 처리 과정에서 영국에 할양된 작은 어촌 홍콩은 세계적인 무역항이자 금융도시로 발전했다. 1970~80년대엔 헐리우드와 아시아시장을 양분할 정도의 영화산업을 자랑하기도 했다. 영국 통치 하에서 물질적 풍요와 정치적 권익을 누리던 ‘동양의 진주 홍콩’은 이제 옛말이다. 자유를 지키려는 시위엔 700만 인구 중 200만 명이 직접 참여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 과정을 영화적 기법의 다큐멘터리로 담아 낸 ‘시대혁명’은 조직도 지도자도 없는 운동’의 기록이다. 감독 이외의 모든 출연자들이 엔딩 크레딧에 ‘홍콩인들’로 표기됐을 뿐 익명·가면 상태다. 그들 중 일부는 촬영 이후 연락이 닿지 않는다고 한다.

Kiwi Chow(周冠威) 감독.
Kiwi Chow(周冠威) 감독.

한편, 이번 SLIFF 일반 상영작들 또한 영화제의 취지를 보여준다(자세한 소개는 내일부터). ◇트루 노스(True North) ◇태양의 소녀들(The Girls of the Sun) ◇‘카틴 숲 대학살(Katyn) ◇챈스 일병의 귀환(Taking Chance) ◇오노다-정글에서 보낸 1만 일 ◇다키스트 아워(Darkest Hour) ◇블라인드 마운틴(Blind Mountain). 야외 상영으로 남다른 감동을 선사할 추억의 명화 두 편도 기대를 모은다. 1965년 개봉된 ‘닥터 지바고’와 ‘더 사운드 오브 뮤직’이다(금토 27~28일, 서울시청 광장,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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