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주의 시대 낡은 단어 무책임하게 남용...자극적 보도
한국언론 뿌리 깊은 나쁜 버릇...좌파언론 야권 편향성도

유력 정치인들을 대권 '잠룡'으로 표현한 경향신문·중앙일보 등의 보도 지면과 인터넷판. /신문 지면 PDF·인터넷 화면 캡처
유력 정치인들을 대권 '잠룡'으로 표현한 경향신문·중앙일보 등의 보도 지면과 인터넷판. /신문 지면 PDF·인터넷 화면 캡처

지방선거가 끝나자마자 언론에 ‘잠룡’이란 단어가 수두룩 나온다. 언론의 오래된 버릇이 그대로 드러난다. 언론은 아직 봉건군주시대 살고 있다. 신문이나 방송이나 마찬가지다. 그 시대 용어를 수십 년째 아무 생각 없이 쓴다. 새 대통령이 취임한지 겨우 한 달. 벌써 ‘잠룡’ 타령이다. 자극과 흥미만을 위한 정치선정주의에 매달리는 탓이다.

경향신문: "김동연 ‘민주당 잠룡’ 급부상..." (3일 2면 머리기사 제목). "‘여권 잠룡’ 증명한 안철수..." (3일 제목). "‘야권 잠룡’ 주목받은 김동연...‘포스트 이재명’ 될까?" (6일 제목).

중앙일보: "대선 잠룡 성적표는…오세훈·김동연 떴고, 안철수 무난, 이재명 낙제" (3일 제목). "날개 단 여당 잠룡 셋…‘尹 후계자 누구냐’..." (6일 제목).

매일경제: "단숨에 野 잠룡된 김동연…이재명과 거리두기..." (3일 제목). "진정한 대권 잠룡의 반열에 올라섰다...인식을 키워야 ‘잠룡’ 이상의 반열...(6일 기사)

YTN: "‘꽃길 vs 가시밭길’ 갈린 잠룡들의 운명..." (6일 대담 제목).

연합뉴스 TV: "대권가도...차기 잠룡들의 성적표" (5일 뉴스 제목).

‘용’은 제왕으로 상징되는 상상의 동물. ‘잠룡’은 "아직 하늘에 오르지 않고 물속에 숨어 있는 용"이며 "왕위를 잠시 피해 있는 임금이나 기회를 아직 얻지 못하고 묻혀 있는 영웅"이라고 한다.

언론은 왜 대통령을 용에다 비유하는가? 대통령을 꿈꾸는 사람들이 무슨 임금이거나 영웅인가? 현대 민주주의에서 선거로 뽑히는 대통령은 어떤 경우라도 제왕이 될 수 없다. 대권후보도 그저 정치인일 따름이다. 아무리 비유라지만 분에 넘친다. 어마어마한 시대착오다.

군주시대 단어를 수십 년 동안 그대로 쓰는 것은 언론이 그만큼 아무 생각이 없거나 오만하기 때문일 것이다. 기자들은 그런 낡은 단어를 계속 쓰는 것이 질리지 않은가? 아직도 누가 홀로 대통령을 만나면 ‘독대’라는 단어를 쓰는 것도 고리타분하기는 마찬가지다. 그것은 권위주의 시대 기자들의 잘못된 습관이다. 권위주의라면 질색이라는 21세기 기자들이 그대로 따르는 것은 위선이다. 온 세상에 대고 "이것 고쳐라 저것 고쳐라"고 외치는 기자들이 자신들의 잘못은 왜 못 고치는가? 언론이 한국정치에 대한 국민 의식을 까마득한 옛날로 묶어두고 있다. 언론은 바른 언어생활의 길잡이가 되어야 한다.

언론은 정치선정주의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다음 대선은 거의 5년 뒤다. 벌써 ‘잠룡’들을 보도하는 것이 적절한가? 국민들이 아무리 정치에 관심이 많다 할지라도 "다음 대통령이 누가 되느냐?"는 기사는 너무 이르다. 아직 누구도 ‘대권’을 말하지 않는다. 그 사이 정치판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결국 기사는 실체도 없이 상상력으로 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사람 저 사람 마구 우려먹는다. 이른바 ‘소설’ 쓰는 것이다.

그것은 오락에 가까운 내용으로 오로지 독자 흥미만 끌려는 기사다. 국민들의 끄트머리 감정을 자극하려는 정치선정주의다. 국민들에게 정치혼란만 일으킨다. 정치 수준을 떨어뜨린다. 이 또한 너무 오랫동안 한국언론에 뿌리박힌 버릇이다. 적어도 신문·방송은 선정주의에 매달리는 마구잡이 인터넷매체나 옛날 주간지와 달라져야 한다.

‘잠룡’ 사용에도 신문의 정치편향이 보인다. 경향신문은 김동연·안철수 두 당선자 이외에는 다른 당선자들을 ‘잠룡’으로 다루지 않았다. 2일 인터넷판에는 몇 시간마다 제목을 바꿔가며 김 당선자의 떠오름을 유달리 강조했다. 야권을 위해 경향이 애쓴다는 오해를 받을 만하다. 여야에 다른 후보들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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