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8억짜리 걸작 '거미' 만든 '설치미술 선구자'부르주아

'아트바젤'서 지난 14일 팔려, 여성 조각가로서 최고 기록
유년시절 마음의 상처를 작품활동으로 치유하며 살아
페미니즘작가 인정하면서도 특정 '이즘'에 묶이는 건 반대

이번 아트바젤에서 하우저앤워스 갤러리가 한 개인소장가에게 517억원에 판매한 루이즈 부르주아의 설치작품 ‘거미’(높이 3.35m). /하우저앤워스
서울 삼성미술관(리움)에 설치된 부르주아 연작의 하나 ‘거미’(높이 9m 지금10m 이상). /리움

추상미술가 루이즈 부르주아(Louise Bourgeois, 1911~2010)의 걸작, 철제 조각품 ‘거미’ 시리즈의 하나(1996년 버전)가 4000만 달러(약 518억원)에 팔렸다.

세계적 아트페어 스위스의 ‘아트바젤 2022’(14~19일) 개막 첫 날 한 개인소장가가 사들였다고 전해진다. 그녀 작품 중 최고가, 여성 조각가로선 아트바젤 최고 기록이기도 하다. 2019년 크리스티 경매에선 높이 3.35m, 지름 6.7m의 청동 ‘거미’가 3200만 달러에 판매된 바 있다.

부르주아는 유년시절의 상처를 작품활동으로 치유하며 살았다. 감정적이고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외도, 그로 인한 어머니의 고통과 끝내 모든 것을 이겨낸 모성이 ‘거미’에 담겼다. ‘거미’의 원 제목은 ‘마망’(maman), 불어로 ‘어머니’를 뜻한다.

섬세한 거미줄을 자아 내 해충을 잡아주고 따스한 그물옷도 선사하는 존재, 동시에 바스러지기 쉬운 연약한 거미에 어머니를 향한 연민과 보편적 모성을 본 것이다. 부르주아는 ‘답이 있는 세계’라는 점에 이끌려 수학(기하학)을 전공했지만, 40대에 미술계에 입문한다. 그림을 그리다 조각가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복수심·증오로 가득했던 소녀가 미술가로서 세상의 어머니·딸들을 어루만지는 존재가 된다. "아는 것에 관해서만 얘기할 뿐이다. 여자이기 때문에 여자 이야기를 한다." 부르주아는 페미니즘 작가 호칭을 인정하면서도 특정 ‘이즘’에 묶이는 것엔 반대했다. 인간으로서, 특히 여성이 얼마나 깨지기 쉽고 외로운 존재인지 자각하며 치유를 추구했다. 그녀의 예술을 이우신 미술평론가는 "자신의 조각난 마음을 해소하는 일종의 심리적 치료와 같은 것"이라고 표현한다.

부르주아는 1982년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여성 작가로서 최초의 회고전, 1999년 베니스비엔날레에서 최고 영예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자전적 소재를 바탕으로 한 작품세계가 내용·형식의 파격을 보여주면서 다양한 장르의 후배 미술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만 99세로 별세하기 직전까지 작업을 했고, 그 두달 전 국제갤러리가 부르주아 특별전 ‘Les Fleurs’전을 개최한 바 있다(2011년 2월 24일~3월 31일).

부르주아는 ‘설치미술’의 선구자다. 남성들의 전유물로 통하던 거대한 돌과 쇠 등을 이용해 작품활동을 했다. 이 평론가에 따르면 "부르주아가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작품의 형식을 파격적으로 가져갈 수 있었던 것은 작업이 예술적인 행위를 넘어선 감정의 정화작용"이었기 때문이다. "인간의 무의식과 내면 세계를 끊임없이 탐구하면서 욕망·고통, 사랑·고통 등의 감정을 격정적으로 표출한, 어두운 과거와 타고 난 심미적 에너지를 자신의 의지대로 조절해 낸 작가"였다.

1938년 부르주아는 미국인 미술사학자인 로버트 골드워터(Robert Goldwater)와 결혼해 뉴욕으로 이주, 1940년대 말부터 기하학 영향이 엿보이는 조각을 제작한다. 1949년 뉴욕의 페리도 화랑에서 첫 번째 개인전을 가진 이래, 50년대와 60년대를 거치며 재료가 다양해지고 주제 또한 과감해졌다. 70년대엔 페미니즘 열풍과 함께 더욱 강렬하며 파격적인 인상을 띠게 된다. 70년대 말부터 본격적인 주목을 받았고, 국제적 명성을 쌓았다.

부르주아의 작품은 세계 유수 미술관들 및 주요 컬렉션들이 소장 중이다. 국내 삼성미술관(리움)과 신세계 갤러리에도 대표작 청동 거미 상이 설치 돼 있다. 작년 12월 부르주아의 개인전 ‘유칼립투스의 향기’(서울 종로구 국제갤러리)를 통해, ‘내면으로’ 연작이 한국 최초로 공개됐다. 작품들 모두 ‘내 작업은 고통과 상처를 정화하고 치유를 위해 존재한다’던 작가 자신의 말을 되새기게 했다.

루이스 부르주아의 ‘내면으로 #4’. /국제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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