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복 글씨체로 쓰인 국가정보원 원훈석. /국정원 제공

국가정보원(국정원)이 간첩 혐의로 복역했던 고(故) 신영복(1941~2016) 성공회대 교수 서체로 된 원훈석(院訓石) 교체와 새로운 원훈 선정을 정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으로 22일 알려졌다. 현재 국정원의 원훈은 ‘국가와 국민을 위한 한없는 충성과 헌신’으로, 국정원이 창설 60주년을 맞은 지난해 6월 역대 5번째 원훈으로 선정한 바 있다.

국정원은 이런 방향으로 가닥을 잡고 직원들을 대상으로 의견수렴 절차를 거친 뒤 교체 여부를 최종 결정할 예정이다. 국정원이 1년 만에 원훈석 교체를 추진하는 것은 원훈석 글씨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20년간 복역한 고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의 손글씨를 본뜬 ‘신영복체’로 쓰였다는 점에서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안팎에서 제기됐기 때문이다.

신 교수는 문재인 전 대통령 등이 평소 존경하는 사상가로 알려져 있다. 그의 글씨체인 ‘신영복체’는 신 교수의 사후인 2018년 국민대학교와 민간 폰트개발 전문업체를 통해 글씨체로 개발됐고 이를 ‘신영복체’ 또는 ‘어깨동무체’로 명명하고 문화체육관광부에 기증돼 무료 배포됐다. 이후 문재인 정부 기간 동안 정부부처 곳곳에 사용됐다.

하지만 이에 대해 국정원 내부에서는 "간첩 혐의로 복역했던 신 교수의 생전 글씨를 본떠 만든 서체를 활용해 대북 정보 활동을 주로 하는 국정원 원훈을 새긴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국정원 전직 직원 모임인 양지회 등은 윤석열 정부의 대통령직인수위 시절부터 원훈석 교체를 요구해 왔고, 일부 시민단체도 원훈석 철거를 요구하는 집회와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김규현 국정원장도 지난달 25일 국회 정보위 비공개 인사청문회에서 신 교수의 친북 성향과 복역 전력을 지적하는 여당 의원에게 공감을 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원훈석을 교체하면서 새로운 원훈을 정할 가능성도 높아졌다. 국정원은 전신인 중앙정보부가 1961년 창설된 이후 37년간 초대 중앙정보부장인 김종필 전 총리가 지은 ‘우리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를 원훈으로 사용했다.

이어 김대중 정부 출범 직후인 1998년 ‘정보는 국력이다’로 원훈을 바꿨다. 이후 이명박정부 때인 2008년에는 ‘자유와 진리를 향한 무명(無名)의 헌신’을 사용했고, 박근혜정부 때인 2016년에는 ‘소리 없는 헌신, 오직 대한민국 수호와 영광을 위하여’로 원훈을 변경한 바 있다.

아울러 대통령실은 문재인 정부 당시 경찰 등 공공 기관에서 두루 쓰인 어깨동무체를 더 이상 쓰지 않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청와대 사무실마다 걸려 있는 ‘춘풍추상(春風秋霜)’ 액자를 떼어내는 방안도 거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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