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범찬
이범찬

자유일보에 ‘국가정보기관 어디로 가야 하나’를 기획 연재하면서 필자는 간첩 신영복의 글씨체로 된 원훈석을 당장 교체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지금이라도 원훈석 교체를 추진한다니 반갑고 다행스런 일이다.

‘윤석열 정부의 역사적 책무는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거대한 변화 속에서 안보를 굳건히 하면서 대한민국 구석구석에 퍼져있는 비정상을 정상화해 ‘정체성이 바로 선 반듯한 대한민국, 안보 걱정이 없는 대한민국, 그리고 다 함께 잘 사는 대한민국’을 만드는 것이라고 감히 주장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가 전체를 정상화하는 대장정을 윤석열 정부는 시작해야 한다. 여기에 국가정보기관도 예외일 수 없다. 힘들고 험난한 길이지만 급변하는 정보 및 안보환경 변화에 대응하고, 조직이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를 털어내는 위대한 리셋을 할 때 국민의 신뢰와 사랑받는 지속 가능한 조직으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박지원은 작년 6월 국정원 창설 60주년을 맞아 원장 주도로 문재인 대통령을 초청했다. 그리고 ‘국가와 국민을 위한 한없는 충성과 헌신’이란 원훈과 신영복 글씨체로 원훈석 교체행사를 했다. 신영복은 자유대한민국 체제를 전복하기 위해 북한과 연계해 지하당을 구축하려다가 적발된 사람이다.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무기징역을 언도받고 20년간 복역 중 전향서를 쓰고 석방된 간첩이다. 문재인이 신영복한테는 ‘사람의 향기가 난다. 그를 존경한다’고 하니 원장이 임명권자한테 아부하기 위해 국정원의 중심에 신영복 글자체 원훈석을 세웠다. 이는 간첩 잡는 국가정보기관을 우롱한 처사이며, 조직과 조직원에 대한 모독이다. 국가정보기관의 정체성을 부인하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일도 국정원 조직과 직원의 입장에서 보면 원장의 리스크인 것이다. 제대로 된 국가관과 역사인식을 갖지 못한 사람을 원장으로 중용함으로써 생긴 중대한 실책이다. 아니 의도적인 실책이 아닌지 모르겠다. 문재인 대통령이 5년 내내 친북을 넘어 종북적 행태를 보인 것을 보면 그런 의심이 간다. 인간의 행태는 종종 신념의 발로라 하지 않는가?

국가정보기관의 모토가 60년 만에 4번이나 바뀌는 것은 그 유래를 찾기 어렵다. 이제 국정원은 이스라엘 모사드나 미국의 CIA처럼 정권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을 원훈을 가져야 한다. 정보수집, 암살·납치·역정보 공작을 전문으로 하는 정보공작기관 모사드는 ‘지략이 없으면 백성이 망하여도 지략이 많으면 평안을 누리느니’라는 구약성서 잠언 구절을 업무의 모토로 삼고 있다. 1947년 창설된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국가의 일, 정보의 중심’이라는 공식 모토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한복음)라는 비공식 모토를 줄곧 쓰고 있다. 1909년 설립된 영국 비밀정보국(MI6)도 초창기부터 ‘언제나 비밀’을 모토로 써왔다. 잦은 모토 변경은 최고통수권자들의 국가정보기관에 대한 이해 부족에 기인한다. 역대 대통령은 국정원장에 정보전문가가 아닌 심복을 임명했고, 원장은 정권을 위해 뭔가를 해야한다는 의무감에 일을 저지르고 조직의 모토도 바꾸고자 했다.

어떤 기관의 모토는 조직의 역할과 임무 그리고 조직원들의 염원이나 업무 자세를 집약적으로 담는 것이다. 정보환경이 많이 바뀌었다 하나 기존의 ‘정보는 국력이다’를 공식 모토로 하고, 조직원의 업무 태도로 ‘국민의 안전과 국익을 수호하는 침묵의 구원자’를 비공식 모토로 제안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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