둔촌주공 재건축사업이 중단된지 석달이 가까워지고 있다. 공사가 중단된 채 방치돼 있는 재건축 현장. /연합
둔촌주공 재건축사업이 중단된지 석달이 가까워지고 있다. 공사가 중단된 채 방치돼 있는 재건축 현장. /연합

단군 이래 최대 규모라는 둔촌주공 재건축사업이 ‘공사중단’의 늪에서 빠져나올 조짐을 보이고 있다. 조합과 시공사업단이 핵심 쟁점 다수에 합의하는 등 갈등을 봉합하는 수순을 밟고 있기 때문이다.

둔촌주공 재건축사업은 낡은 아파트 5930가구를 헐고, 새로 1만2032가구를 짓는 것으로 현대건설·HDC현대산업개발·대우건설·롯데건설 등 대형 건설사 네 곳이 참여하고 있다.

둔촌주공 재건축사업의 당초 공사비는 2조6708억원이었다. 하지만 기존 설계보다 가구 수가 늘어나고, 원자재 가격이 상승하면서 조합과 시공사업단은 공사비를 3조2294억원으로 5586억원 증액하기로 재계약했다. 이것이 공사중단의 단초가 됐다. 공사비 증액에 대한 조합원들의 반발로 이 계약을 체결한 조합장은 해임됐고, 새로 선임된 조합 집행부가 변경계약 무효 소송에 나서면서 사태가 악화된 것이다.

6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조합과 시공사업단은 최근 핵심 쟁점 다수에 대한 합의를 도출했다. 조합이 증액된 공사비를 인정하고, 이에 대한 검증을 한국부동산원에 의뢰하기로 한 것이다. 조합은 애초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서울시 중재안을 수용했었지만 이를 시공사업단과 합의문 형태를 통해 공식화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조합은 시공사업단을 상대로 동부지법에 제기한 변경계약 무효 소송을 합의일로부터 15일 이내에 취하하는 것은 물론 향후 동일한 내용의 소송을 제기하지 않기로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양측은 일반분양 일정 지연, 실착공 이후 마감재 및 설계변경, 자재승인 지연 등으로 시공사업단이 입은 금융비용 손실을 공사비에 반영하기로 했다. 아울러 공사기간 연장, 공사재개에 따른 손실보상도 재산정해 반영한다는 방침이다. 사실상 조합의 ‘백기투항’으로 볼 수 있다. ‘소(訴) 취하 없으면 합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온 시공사업단 역시 조합의 태도 변화로 공사중단을 이어갈 명분이 줄어들었다.

조합과 시공사업단은 공사재개 합의 후 2달 이내에 강동구 분양가심의위원회에 분양가 심의를 신청하고, 심의 결과가 나오면 2달 이내 일반분양 절차를 밟는 것에도 의견을 모았다. 둔촌주공 재건축사업이 추진되고 있는 강동구는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지역으로 택지비·건축비·가산비를 더해 분양가가 정해진다.

택지비와 건축비는 일정 부분 정부의 입김이 작용하는 만큼 마감재를 고급화해 가산비를 높이고, 이를 통해 분양 수입을 늘리겠다는 것이 조합의 일관된 계획이다. 이 경우 설계변경에 따른 공사기간 연장이 불가피한데, 이에 대한 책임 여부도 한국부동산원 검증 의뢰를 통해 해결하겠다는 것이 양측의 합의점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난제는 남아 있다. 무엇보다 공사재개 요건에 대한 입장 차이가 크다. 조합은 소 취하 및 총회 의결 절차가 마무리되는 대로 시공사업단이 공사를 재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시공사업단은 최종 설계변경안이 담긴 ‘실시설계도서’를 받아야 공사를 재개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실시설계도서는 기본설계에 입각해 세부적으로 작성한 설계도면과 관계서류를 말하는데, 자칫 공사재개 후 조합이 또다시 설계변경을 요구할 경우 제2의 공사중단이 발생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상가 분쟁 역시 해결되지 못한 채 남아 있다. 일각에서는 공사중단의 핵심 쟁점이 공사비 증액보다는 상가 분쟁에 있다는 관측도 내놓고 있다.

현 조합은 지난해 7월 정관 변경을 통해 기존 상가 조합원 단체인 상가재건축위원회의 자격을 박탈하고 통합상가위원회를 새로 만들어 위원장도 교체했다. 그해 12월에는 통합상가위원회가 기존 상가재건축사업관리사(PM)인 리츠인홀딩스에 계약 해지를 통보하면서 PM과의 갈등이 가시화됐다. 리츠인홀딩스는 현재 주상복합 상가동에 대한 유치권을 행사 중이다.

시공사업단은 조합이 상가 분쟁을 해결하고, 확정된 설계변경안을 줘야 공사를 재개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주상복합 상가동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상가 위로 아파트를 지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합은 상가 분쟁의 해결을 합의문 내용에서 제외한 상태다.

조합원 사이의 내홍도 걸림돌이다. 이른바 ‘둔촌주공 조합 정상화위원회’가 8월 중 현 조합 집행부를 해임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해임 발의 요건, 즉 전체 조합원 10분의 1인 620여명이 동의했다는 게 정상화위원회의 주장이다. 공사재개가 될듯 말듯한 상황에 놓여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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